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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비전 제자대학 졸업여행을 다녀와서....나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자는 하늘에 별과같이 빛나리니...
2009-12-23 12:28:59
김민호
조회수 330
오늘밤엔 유난히도 하늘에 별이 반짝이며 나를 바라본다 겨울 바람에 코끝이 쌩 하지만 그래도 날이 밝아서 내 마음 또한 맑아 지는듯하다 내일이면 그 동안 사명감을 가지고 훈련 받았던 제자대학의 모든 과정을 끝맺음을 하는 졸업 여행을 가는 날 이라서인지 왠지 마음이 설래 인다 집 너머 에서는 오늘도 붉은 십자가가 선명하게 내 시야에 들어온다 마치 내일을 기대하라는 것처럼 말이다………….
교회로 발걸음을 재촉하며 걷는다 많은 생각이 차가운 겨울 날씨마냥 낯설게 다가오는 상념들을 뒤로 남긴 채 같이 훈련 받은 동기들과 어울려 목사님의 기도 속으로 우리는 하나가 되어 새로운 사명자가 되기 위해 길을 나섰다 버스는 도심을 지나 검푸른 한강을 건너 용인에 소재한 한국 기독교 순교자 기념관에서 우리를 토해 내듯 내려 놓았다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라는 강한 메시지에 나의 가슴은 먹먹해지고 말았다 그리고 이 땅에서 주님의 사명을 붙잡고 증거하며, 전파하며, 싸워서 승리한 수 많은 순교자들의 얼을 만나보게 된다 동 기념관은 한국교회의 밑거름이 되었던 순교자들의 순교정신을 계승하기 위하여 세워진 것으로서 순교 사료 보존과 앞서간 믿음의 선진들에 존영과 유품이 시대 적으로 잘 정리하여 전시하고 있었으며 역사적 배경의 부연 설명으로 우리는 사실감 있는 현장감을 느끼며 그 시대적인 아픔과 그에 따른 그들의 헌신에 마음이 뜨거워졌다 그리고 순교자들의 얼굴을 차례 차례 보다가 거울 속에 비친 내 자신의 모습을 보며 주님의 말씀을 생각한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그 말씀을 가지고 예배당에서 그때에도 목청 것 불러 하나님을 찬양했을 찬양을 우리가 부르며 그 숭고한 영성을 이어받고자 우리는 또다시 하나가 되어 간절히 기도 드리며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아 병천 매 봉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매 봉 교회는 유관순 열사의 부친인 유중권씨와 친구 조인원이 함께 세운 교회로서 유관순 열사의 신앙에서 나타난 나라와 민족의 사랑을 고무시키는 바탕이 된 성전으로서 그 옆에 생가가 복원되어 있다 그 믿음의 기상을 나타내듯 메타세콰이어 나무 두 그루가 생가 앞에서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뻗어 아직도 그 기상을 숙이지 않고 있으며, 여전히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며 매 봉산에서의 3일간에 기도응답으로 일제에 맞서 잃은 나라를 찾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하며 태극기를 흔드는 모습을 대변하는 것 같다
안타깝게도 이 나라의 독립을 지켜보지 못하고 옥사를 하였지만 그 굴하지 않는 정신은 아직도 우리 민족의 자긍심으로 전해지는 것을 생각하며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이어 가야 할 것을 다짐하며 그 기계(氣系)를 내 마음에 새겨두었다
이어 우리가 도착한 곳은 전북 김제지역 선교의 모 교회라 할 수 잇는 금산교회이다 당시 시대적 유교문화 배경을 잘 설명 해주듯 ‘ㄱ’ 자 형으로 남,여 자리를 구분하여 지여져 있었다
당시 테이트 선교사도의전도 사역으로 이 마을 유지인 조덕삼를 통하여 세워진 교회로서 교회 상량에는 고전3장16~17절 말씀이 새겨져 거룩하게 이어오고 있다 특히 이 지역은 갖은 종교적인 성지로서 많은 이교도가 미신과 우상을 섬기는 지역이었다고 하는데 이곳을 통하여 교회가 부흥하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보면 순종의 역사가 아닌가 싶다 조덕삼씨는 그 집안에서 마부로서 일하던 이자익을 세워 목사로 섬기며 하나님 안에서 만인 평등의 실천과 그리고 자기의 기득권을 하나님 앞에서 내려놓는 순종의 참 모습을 우리에게 반증하고 있다 복음의 말씀과 권능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지를 그리고 그에 따른 하나님의 섭리에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나 큰 자가 되려거든 작은 자를 먼저 섬기라 라는 주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여수 애 양원을 향해 어둠을 가르며 한하운님의 시처럼 가도가도 끝없는 유난히도 붉은 전라도 땅을 달리고 달렸다
여수 앞바다에 달이 뜨고 멀리서 날아오는 염분 냄새에 하루 여정을 마치는 우리의 이야기는 깊이깊이 절어간다 입안에서 아싹 하게 씹혀 코끝을 쏘는 돌산 갓 김치 맛처럼 잊혀지지 않을 하루였다
이른 아침 전혀 새로운 QT시간을 갖고 오늘 우리에게 주실 은혜를 기대하며’ 사랑의 원자탄’으로 유명한 산돌 손양원 목사님의 가족 묘 앞에 우리는 섰다 두 자제분을 앞에 두고 목사님 내외분이 주변의 소나무와 같이 푸르게 우리를 말없이 맞이 하여 주셨다
흔히들 손양원 목사님을 삼경 목사라고 한다 –대단한 풍채를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다 왜소한 모습에 놀라고, 우렁찬 목소리에 또 한번 놀라고, 능력 있는 설교에 놀라기 때문이라 한다 이 작은 목사님의 행적과 그 영향력을 내가 감히 어찌 평가 하겠는가라는 경외심이 앞선다 작은 거인이라고 해야 맞을까? 그 담을 수 없는 신념과 사랑 그리고 감사함을 아는 실천적인 믿음의 표상이라 해야 하나? 나의 작음에 부끄러움이 무덤 앞 강가에 버려진 패 선과같이 서있다 손목사님은 학창시절부터 기도를 많이 해서 별명이 손붙이 였다고 한다 국가를 위해서, 가족 구원을 위해, 그리고 교회를 위해서 그리고 애 양원 식구를 위해서 말이다
항상 찬송과 말씀으로 주님 만날 준비의 생활을 하시며 몸소 믿음, 소망, 사랑을 실천하신 것이다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주님의 사랑으로 용서하고 양아들을 삼으며 그 영혼을 구원하고, 한센병으로 어려운 환 우들을 거리낌없이 사랑으로 보살피며 주님의 사랑을 알게 하시고 주를 따르는 양 무리와 성전을 지키기 위해 민족의 역사 앞에서 희생이 된 그 용기와 순교를 내가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한단 말인가……큰 숙제를 가슴에 안고 그리고 가슴 벅찬 그 사랑을 나눠 주심에 감사를 드린다 돌아 나오는 길에”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라는 말씀을 다시 한번 올려다 보며 눈을 감았다
영광 염산 교회를 향하는 길은 유난히도 멀게만 느껴진다 하늘은 곧 눈이라도 내릴듯하다 이어서 염전이 차창 밖으로 보이고 멀리 교회 십자가가 우리를 반긴다
전 교인 중 77명이 민족 전쟁의 희생양이 되어 순교한 학살의 현장이다 전시실에 그려진 한편의 그림이 모든걸 말해 주는듯하다 울부짖는 황소의 달구지에 실린 사체를 따라 죽음에 줄을 서서 따르는 사람들의 표정이 수묵화처럼 무겁게 보인다 그 절박한 순간에도 믿음을 버리지 않고 말없이 죽음을 선택하며 지켜낸 믿음의 열매를 보니 희생자라고 표현 하기보다는 거룩한 순교자의 승리라고 말을 하고 싶다 그리고 우리의 존재이유가 참 가치인 진리를 찾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순교한 분들이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기를 기도 드린다
우리는 다시 강을 거슬러 위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전라도 지역의 강가에는 돌들이 없다는 것이 특이했다 여느 지방 강가를 지나다 보면 강가에 잔돌들과 큰 바위들이 물길을 접어 두는데 말이다 그런 강에도 어김없이 어둠이 내리고 우리는 세심천이라는 숙소에서 여독을 풀며 모두 알몸으로 서로의 마음을 씻어 주었다 특히 윤집사의 등에서는 소 때가 많이 나온다 그리고 목사님은 박열완 집사의 등을 청소 하느라고 비지땀을 흘리신다 결국 박집사 등 껍데기가 벚 겨져서 숙소에서 피부를 달래주었다 역시 목사님은 힘도 좋으시다 어째든 우리들의 마음 때가 말끔히 씻어졌기를 바란다
이튿날 우리는 해미 생매장 순교 성지로 이동하였다
해미 성지는 그 어느 순 교지보다 더 참혹한 천주교 박해 현장이다 천주교 신도들을 교수형, 참수 형, 몰매 질로, 석 형으로, 자리개질등 심지어는 해 미천에 구덩이를 파고 산채로 집어넣어 생매장을 한 아비규환의 현장이다 죽음을 앞둔 성도들은 성 물을 밞고 배교하면 살려 준다는 유혹을 이기고 죽음으로서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 죽는 순간까지도 예수마리아를 찾으며 기도하는 소리로 인하여 여숫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러나 해미 성안은 역설적으로 고즈녁하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성도들을 매달아 놓았던 호야 나무는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에게 말없이 묻는듯하다 너의 믿음은 어떠하냐고 말이다 - 소리 없이 찬양을 불러본다
우리는 무거운 마음을 앞세워 또다시 순교 성지를 찾아 도착한 곳은 발안에 소재한 제암 교회였다 순 흥 안씨들이 대대로 모여 살아온 농촌마을에 안종후라는 청년이 서울에서 아펜설러 선교사를 만나 복음이 전해진 곳이다 기미년 3.1운동을 계기로 마을이 일제의 무력 하에 쟂덤이로 변해버리고 교회당은 그들의 무덤이 되고야 말았다 이 천인 공노할 현장에 와보니 멀고 도 가까운 일본을 용서 할 수 없다는 분노가 일어났다 그리고 나라 잃은 그들의 슬픔과 무력한 우리 역사에 화가 치밀어 올라온다 또 다시는 이런 일이 우리에게 없어야겠다 그리고 이모든 현장을 수습하여’꺼버릴 수 없는 불’이란 소책자를 써서 일제의 만행을 각국에 알리며 절규한 스코필드 선교사에게 감사를 국민의 한 사람으로 드리고 싶다
오늘 날씨는 올 겨울 들어 제일 춥다고 한다 그리고 하늘은 곧 눈이 내릴 것만 같다
이어서 우리 버스는 일정의 마지막 종착지인 양화진 외국인 묘지 공원으로 향해 다시 한강을 건너 왔다 강변이라 바람이 많이 불어 우리의 몸과 마음도 날씨만큼 얼어버리는 것 같다
양화진 공원에는 의료 선교사로 내한해 고종의 주치의가 된 헤론 선교사를 시작으로 이 땅에서 복음과 함께 역동적으로 살다간 많은 주님의 제자들이 잠들어 있다 그 역사적인 배경과 인물들의 세세한 내역을 다 표기를 하지 못하지만은 무엇보다도 내 가슴에 남은 것은 이 땅의 열악한 환경에서 선교사들의 희생과 그 어린 자녀들이 각종 병마로 인하여 치료도 못 받고 죽었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녀들이 자라 대를 이어서 복음의 역사를 계속해서 써왔다는 것이다 너희는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되라는 주님의 지상 명령에 절대 순종하며 생명을 바쳐 사명을 이루기 위해 낯선 이 땅에서 우리 민족의 복음화와 계몽을 위해 헌신하며 일하다 마침내 선교 지에서 생을 마감한 모든 이의 그 열정과 열매가 내 가슴에서 자라 내 대를 이어 전해지는 복음의 역사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다시 교회로 돌아 오는 길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내가 받은 이 믿음이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시작으로 수 많은 주님의 제자와 자녀들에 피의 값이라는 생각에 나의 믿음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재정립하며 확고하게 세운다 시대와 환경과 상황에 얷매이지 않고 세대를 뛰어넘어 오직 죽기까지 순종한 믿음의 선진들을 상기하며 앞으로 그들의 신행 일치를 본받아 오직 내가 가야 할 길을 바라보며 실천하며 달려가야 한다 그리고 나도 할 수 있다 것에 감사함을 하나님께 올려드린다
아울러 하나님은 내게 물으신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 하도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 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 거 벚은 것을 알지 못하는 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 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3장15~19절) 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 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20장24절)라고 말씀을 고백하며 다짐한다
끝으로 여수에서 주의 일하시는 목사님(이명철전도사님부친)의 호의에 감사를 드리며,에스더 사모님 부모님의 깊은 정에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드리고 긴 순례의 길을 함께 하시며 안내로 헌신하신 안병철목사님과 안전운전으로 은혜를 더해 주신 장로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모든 시작을 우리와 함께 나누며 비전으로 우리를 제자 삼으시고 헌신하시는 담임 목사님의 끝나지 않은 은혜에 머리 숙여 감사한 마음을 드리며 보다 성숙한 주님의 제자로서 선한 영향력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이어가는 제자로서 성장 할 것을 감사하며 기도 드립니다
그리고 생각한다 앞서서 믿음을 지키며 순교한 모든 이들을, 그리고 감사한다 나에게도 그들과 같은 멘 토가 있다는 것에, 나도 그렇게 성령으로 감화 되어서 죽도록 충성하는 주님의 제자,담임 목사님의 제자가 되어 믿음의 연조를 이어가리라고 말이다 오늘밤에도 올려다본 하늘에는 무수히 많은 별들이 나를 내려다 본다 마치 나의 갈 길을 예견하듯 말이다 바람이 불어서인지 구름도 보이질 않는다 내 심신이 정화된 듯 정신이 맑아 진다 여전히 집 너머에 붉은 십자가는 내 시야를 고정 시킨다 나는 속삭였다 “나도 별과 같이 빛나고 싶다”라고.
-끝-
세계 비전 제자 대학
졸업 여행을 마치며..
기간: 2009.12.14 ~ 16(2박3일)
참석자: 담임 목사님 내외분外
제자대학 수료자 2기, 3기 25명
행선지: 용인 한국기독교 기념관, 병천 매봉교회, 금산교회
여수 애 양원, 영광 염산교회, 발안 제암교회
해미 생매장 순교성지, 양화진 외극인묘지공원
작성자: 김민호집사
교회로 발걸음을 재촉하며 걷는다 많은 생각이 차가운 겨울 날씨마냥 낯설게 다가오는 상념들을 뒤로 남긴 채 같이 훈련 받은 동기들과 어울려 목사님의 기도 속으로 우리는 하나가 되어 새로운 사명자가 되기 위해 길을 나섰다 버스는 도심을 지나 검푸른 한강을 건너 용인에 소재한 한국 기독교 순교자 기념관에서 우리를 토해 내듯 내려 놓았다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라는 강한 메시지에 나의 가슴은 먹먹해지고 말았다 그리고 이 땅에서 주님의 사명을 붙잡고 증거하며, 전파하며, 싸워서 승리한 수 많은 순교자들의 얼을 만나보게 된다 동 기념관은 한국교회의 밑거름이 되었던 순교자들의 순교정신을 계승하기 위하여 세워진 것으로서 순교 사료 보존과 앞서간 믿음의 선진들에 존영과 유품이 시대 적으로 잘 정리하여 전시하고 있었으며 역사적 배경의 부연 설명으로 우리는 사실감 있는 현장감을 느끼며 그 시대적인 아픔과 그에 따른 그들의 헌신에 마음이 뜨거워졌다 그리고 순교자들의 얼굴을 차례 차례 보다가 거울 속에 비친 내 자신의 모습을 보며 주님의 말씀을 생각한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그 말씀을 가지고 예배당에서 그때에도 목청 것 불러 하나님을 찬양했을 찬양을 우리가 부르며 그 숭고한 영성을 이어받고자 우리는 또다시 하나가 되어 간절히 기도 드리며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아 병천 매 봉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매 봉 교회는 유관순 열사의 부친인 유중권씨와 친구 조인원이 함께 세운 교회로서 유관순 열사의 신앙에서 나타난 나라와 민족의 사랑을 고무시키는 바탕이 된 성전으로서 그 옆에 생가가 복원되어 있다 그 믿음의 기상을 나타내듯 메타세콰이어 나무 두 그루가 생가 앞에서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뻗어 아직도 그 기상을 숙이지 않고 있으며, 여전히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며 매 봉산에서의 3일간에 기도응답으로 일제에 맞서 잃은 나라를 찾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하며 태극기를 흔드는 모습을 대변하는 것 같다
안타깝게도 이 나라의 독립을 지켜보지 못하고 옥사를 하였지만 그 굴하지 않는 정신은 아직도 우리 민족의 자긍심으로 전해지는 것을 생각하며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이어 가야 할 것을 다짐하며 그 기계(氣系)를 내 마음에 새겨두었다
이어 우리가 도착한 곳은 전북 김제지역 선교의 모 교회라 할 수 잇는 금산교회이다 당시 시대적 유교문화 배경을 잘 설명 해주듯 ‘ㄱ’ 자 형으로 남,여 자리를 구분하여 지여져 있었다
당시 테이트 선교사도의전도 사역으로 이 마을 유지인 조덕삼를 통하여 세워진 교회로서 교회 상량에는 고전3장16~17절 말씀이 새겨져 거룩하게 이어오고 있다 특히 이 지역은 갖은 종교적인 성지로서 많은 이교도가 미신과 우상을 섬기는 지역이었다고 하는데 이곳을 통하여 교회가 부흥하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보면 순종의 역사가 아닌가 싶다 조덕삼씨는 그 집안에서 마부로서 일하던 이자익을 세워 목사로 섬기며 하나님 안에서 만인 평등의 실천과 그리고 자기의 기득권을 하나님 앞에서 내려놓는 순종의 참 모습을 우리에게 반증하고 있다 복음의 말씀과 권능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지를 그리고 그에 따른 하나님의 섭리에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나 큰 자가 되려거든 작은 자를 먼저 섬기라 라는 주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여수 애 양원을 향해 어둠을 가르며 한하운님의 시처럼 가도가도 끝없는 유난히도 붉은 전라도 땅을 달리고 달렸다
여수 앞바다에 달이 뜨고 멀리서 날아오는 염분 냄새에 하루 여정을 마치는 우리의 이야기는 깊이깊이 절어간다 입안에서 아싹 하게 씹혀 코끝을 쏘는 돌산 갓 김치 맛처럼 잊혀지지 않을 하루였다
이른 아침 전혀 새로운 QT시간을 갖고 오늘 우리에게 주실 은혜를 기대하며’ 사랑의 원자탄’으로 유명한 산돌 손양원 목사님의 가족 묘 앞에 우리는 섰다 두 자제분을 앞에 두고 목사님 내외분이 주변의 소나무와 같이 푸르게 우리를 말없이 맞이 하여 주셨다
흔히들 손양원 목사님을 삼경 목사라고 한다 –대단한 풍채를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다 왜소한 모습에 놀라고, 우렁찬 목소리에 또 한번 놀라고, 능력 있는 설교에 놀라기 때문이라 한다 이 작은 목사님의 행적과 그 영향력을 내가 감히 어찌 평가 하겠는가라는 경외심이 앞선다 작은 거인이라고 해야 맞을까? 그 담을 수 없는 신념과 사랑 그리고 감사함을 아는 실천적인 믿음의 표상이라 해야 하나? 나의 작음에 부끄러움이 무덤 앞 강가에 버려진 패 선과같이 서있다 손목사님은 학창시절부터 기도를 많이 해서 별명이 손붙이 였다고 한다 국가를 위해서, 가족 구원을 위해, 그리고 교회를 위해서 그리고 애 양원 식구를 위해서 말이다
항상 찬송과 말씀으로 주님 만날 준비의 생활을 하시며 몸소 믿음, 소망, 사랑을 실천하신 것이다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주님의 사랑으로 용서하고 양아들을 삼으며 그 영혼을 구원하고, 한센병으로 어려운 환 우들을 거리낌없이 사랑으로 보살피며 주님의 사랑을 알게 하시고 주를 따르는 양 무리와 성전을 지키기 위해 민족의 역사 앞에서 희생이 된 그 용기와 순교를 내가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한단 말인가……큰 숙제를 가슴에 안고 그리고 가슴 벅찬 그 사랑을 나눠 주심에 감사를 드린다 돌아 나오는 길에”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라는 말씀을 다시 한번 올려다 보며 눈을 감았다
영광 염산 교회를 향하는 길은 유난히도 멀게만 느껴진다 하늘은 곧 눈이라도 내릴듯하다 이어서 염전이 차창 밖으로 보이고 멀리 교회 십자가가 우리를 반긴다
전 교인 중 77명이 민족 전쟁의 희생양이 되어 순교한 학살의 현장이다 전시실에 그려진 한편의 그림이 모든걸 말해 주는듯하다 울부짖는 황소의 달구지에 실린 사체를 따라 죽음에 줄을 서서 따르는 사람들의 표정이 수묵화처럼 무겁게 보인다 그 절박한 순간에도 믿음을 버리지 않고 말없이 죽음을 선택하며 지켜낸 믿음의 열매를 보니 희생자라고 표현 하기보다는 거룩한 순교자의 승리라고 말을 하고 싶다 그리고 우리의 존재이유가 참 가치인 진리를 찾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순교한 분들이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기를 기도 드린다
우리는 다시 강을 거슬러 위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전라도 지역의 강가에는 돌들이 없다는 것이 특이했다 여느 지방 강가를 지나다 보면 강가에 잔돌들과 큰 바위들이 물길을 접어 두는데 말이다 그런 강에도 어김없이 어둠이 내리고 우리는 세심천이라는 숙소에서 여독을 풀며 모두 알몸으로 서로의 마음을 씻어 주었다 특히 윤집사의 등에서는 소 때가 많이 나온다 그리고 목사님은 박열완 집사의 등을 청소 하느라고 비지땀을 흘리신다 결국 박집사 등 껍데기가 벚 겨져서 숙소에서 피부를 달래주었다 역시 목사님은 힘도 좋으시다 어째든 우리들의 마음 때가 말끔히 씻어졌기를 바란다
이튿날 우리는 해미 생매장 순교 성지로 이동하였다
해미 성지는 그 어느 순 교지보다 더 참혹한 천주교 박해 현장이다 천주교 신도들을 교수형, 참수 형, 몰매 질로, 석 형으로, 자리개질등 심지어는 해 미천에 구덩이를 파고 산채로 집어넣어 생매장을 한 아비규환의 현장이다 죽음을 앞둔 성도들은 성 물을 밞고 배교하면 살려 준다는 유혹을 이기고 죽음으로서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 죽는 순간까지도 예수마리아를 찾으며 기도하는 소리로 인하여 여숫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러나 해미 성안은 역설적으로 고즈녁하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성도들을 매달아 놓았던 호야 나무는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에게 말없이 묻는듯하다 너의 믿음은 어떠하냐고 말이다 - 소리 없이 찬양을 불러본다
우리는 무거운 마음을 앞세워 또다시 순교 성지를 찾아 도착한 곳은 발안에 소재한 제암 교회였다 순 흥 안씨들이 대대로 모여 살아온 농촌마을에 안종후라는 청년이 서울에서 아펜설러 선교사를 만나 복음이 전해진 곳이다 기미년 3.1운동을 계기로 마을이 일제의 무력 하에 쟂덤이로 변해버리고 교회당은 그들의 무덤이 되고야 말았다 이 천인 공노할 현장에 와보니 멀고 도 가까운 일본을 용서 할 수 없다는 분노가 일어났다 그리고 나라 잃은 그들의 슬픔과 무력한 우리 역사에 화가 치밀어 올라온다 또 다시는 이런 일이 우리에게 없어야겠다 그리고 이모든 현장을 수습하여’꺼버릴 수 없는 불’이란 소책자를 써서 일제의 만행을 각국에 알리며 절규한 스코필드 선교사에게 감사를 국민의 한 사람으로 드리고 싶다
오늘 날씨는 올 겨울 들어 제일 춥다고 한다 그리고 하늘은 곧 눈이 내릴 것만 같다
이어서 우리 버스는 일정의 마지막 종착지인 양화진 외국인 묘지 공원으로 향해 다시 한강을 건너 왔다 강변이라 바람이 많이 불어 우리의 몸과 마음도 날씨만큼 얼어버리는 것 같다
양화진 공원에는 의료 선교사로 내한해 고종의 주치의가 된 헤론 선교사를 시작으로 이 땅에서 복음과 함께 역동적으로 살다간 많은 주님의 제자들이 잠들어 있다 그 역사적인 배경과 인물들의 세세한 내역을 다 표기를 하지 못하지만은 무엇보다도 내 가슴에 남은 것은 이 땅의 열악한 환경에서 선교사들의 희생과 그 어린 자녀들이 각종 병마로 인하여 치료도 못 받고 죽었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녀들이 자라 대를 이어서 복음의 역사를 계속해서 써왔다는 것이다 너희는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되라는 주님의 지상 명령에 절대 순종하며 생명을 바쳐 사명을 이루기 위해 낯선 이 땅에서 우리 민족의 복음화와 계몽을 위해 헌신하며 일하다 마침내 선교 지에서 생을 마감한 모든 이의 그 열정과 열매가 내 가슴에서 자라 내 대를 이어 전해지는 복음의 역사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다시 교회로 돌아 오는 길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내가 받은 이 믿음이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시작으로 수 많은 주님의 제자와 자녀들에 피의 값이라는 생각에 나의 믿음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재정립하며 확고하게 세운다 시대와 환경과 상황에 얷매이지 않고 세대를 뛰어넘어 오직 죽기까지 순종한 믿음의 선진들을 상기하며 앞으로 그들의 신행 일치를 본받아 오직 내가 가야 할 길을 바라보며 실천하며 달려가야 한다 그리고 나도 할 수 있다 것에 감사함을 하나님께 올려드린다
아울러 하나님은 내게 물으신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 하도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 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 거 벚은 것을 알지 못하는 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 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3장15~19절) 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 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20장24절)라고 말씀을 고백하며 다짐한다
끝으로 여수에서 주의 일하시는 목사님(이명철전도사님부친)의 호의에 감사를 드리며,에스더 사모님 부모님의 깊은 정에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드리고 긴 순례의 길을 함께 하시며 안내로 헌신하신 안병철목사님과 안전운전으로 은혜를 더해 주신 장로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모든 시작을 우리와 함께 나누며 비전으로 우리를 제자 삼으시고 헌신하시는 담임 목사님의 끝나지 않은 은혜에 머리 숙여 감사한 마음을 드리며 보다 성숙한 주님의 제자로서 선한 영향력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이어가는 제자로서 성장 할 것을 감사하며 기도 드립니다
그리고 생각한다 앞서서 믿음을 지키며 순교한 모든 이들을, 그리고 감사한다 나에게도 그들과 같은 멘 토가 있다는 것에, 나도 그렇게 성령으로 감화 되어서 죽도록 충성하는 주님의 제자,담임 목사님의 제자가 되어 믿음의 연조를 이어가리라고 말이다 오늘밤에도 올려다본 하늘에는 무수히 많은 별들이 나를 내려다 본다 마치 나의 갈 길을 예견하듯 말이다 바람이 불어서인지 구름도 보이질 않는다 내 심신이 정화된 듯 정신이 맑아 진다 여전히 집 너머에 붉은 십자가는 내 시야를 고정 시킨다 나는 속삭였다 “나도 별과 같이 빛나고 싶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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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비전 제자 대학
졸업 여행을 마치며..
기간: 2009.12.14 ~ 16(2박3일)
참석자: 담임 목사님 내외분外
제자대학 수료자 2기, 3기 25명
행선지: 용인 한국기독교 기념관, 병천 매봉교회, 금산교회
여수 애 양원, 영광 염산교회, 발안 제암교회
해미 생매장 순교성지, 양화진 외극인묘지공원
작성자: 김민호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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