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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뇌염으로 파괴된 뇌를 고쳐 주시다.
나는 2001년 12월 말, 목회를 하던 중 갑자기 쓰러졌다.
경희 의료원으로 실려 갔는데, 신촌 세브란스로 급히 옮겨졌다. 그곳에서 일전에 심장 협심증 수술을 했던 병원 기록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의식 상태로 중환자실에 들어간 나는 절망적인 상태였다. 소생 가능성이 없다는 진단과 만일 만에 하나 운 좋게 살아난다 해도 시각장애를 갖거나 언어장애가 오거나 몸을 쓰지 못하는 지체장애인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었다. M.R.I 촬영 결과, 원인 불명의 바이러스가 뇌에 침투하여 뇌 전체를 파괴하여 못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99.999% 사망선고나 다름 아니었다. 가족이 모였다. 담당 주치의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합니다.”
그때 나의 아내는 주치의 선생님에게 매달리며 이렇게 말했다.
“의사 선생님. 우리 목사님을 살려주십시오. 선생님은 부정적이고 절망적으로 말씀하시지만 나는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나의 머릿속에는 죽음이란 없습니다. 살리는데 목숨 걸고 기도하겠습니다. 최선을 다 해 주십시오. 하나님은 죽은 자도 살리시고, 없는 것도 있는 것처럼 불러내시는 능하신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의 뜻이 계시면 반드시 고쳐서 살려주실 것입니다…….”
이 세상에 기댈 곳이 아무것도 없던 나의 아내는 틈만 나면 연세대 병원에 있는 채플 실에 가서 금식하며 눈물로 기도했다. 하나님 얼굴을 바라보며 자비를 구하는 기도 외에는 나를 위해서 실질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금식하느라 살이 빠져서 얼굴을 못 알아 볼 정도로 간절히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다.
“우리 염 목사님은 뭔가 하나님의 일을 해보려고 애를 많이 썼고, 남다른 고생도 많이 했는데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너무 불쌍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이렇게 죽어 이대로 보내기에는 내 마음이 너무 억울하고 한스럽습니다. 하나님은 자비하시고 능하신 분이시며, 죽은 자도 살리시고 없는 것도 있는 것처럼 불러내시는 능하신 하나님이시오니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한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세상 뭐라 해도 하나님의 뜻이 계시면 나을 줄로 믿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나의 아내에게 의사 선생님의 특별지시가 있었다.
“상태가 너무 안 좋으니, 오늘 밤에 어디 가지 말고 곁을 지키십시오. 자율신경과 교감신경을 비롯한 모든 신경계와 모든 기관들이 하나씩 차례대로 기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호흡마저 인공으로 들숨 날숨을 쉬어 주고 있는데 이제 마지막으로 심장이 멎으면 끝입니다.”
그 날 밤 새벽이었다. 몇 날 며칠이고 의식이 없던 내가 기적적으로 깨어난 것이다. 내가 왜 여기 있는가? 얼른 집에 가 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득하고 몽롱한 기억 같은 것이 생각나는 것이었다. 어떤 노인으로 보여 지는 두, 세 명이 저 멀리서 내게로 와서는 ‘이제 가자!’ 하였다. 나는 직감적으로 '이제 죽어 천국으로 가는 순간이 되었구나.' 생각했고 아무런 반항심도 없었고, 당연히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나의 아내가 나타나더니 안 된다고 주장했고, 아직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항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주여 나의 병든 몸을’(528장)이라는 찬송을 담대히 부르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하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자기가 뭔데 안 된다고 하는가. 천사가 가자면 가는 거지…….”
이와 같은 밑도 끝도 없는 그 어떤 기억이 나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도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잘 모른다.
영적인 그 어떤 하나님 체험 같은 것은 세상 언어의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확실하고 분명한 사실은 그 이후로 급속한 회복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과, 의사 선생님의 말과는 정 반대로 머리털 하나도 상치 않고 온전히 정상 회복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그 누구도 설명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작품이다. 뇌는 파괴되어 한번 망가지면 다시 재생될 수 없다는 것이 의학계의 정설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병든 내 몸을 만져주신 주님의 신유의 손길을 경험한 후, 믿음은 곧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모든 긍정(肯定)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 하시는 일에 대하여 절대 아멘이 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에 대한 절대 신뢰는 하나님의 본질 자체를 믿는 믿음이며, 나의 바라는 소원과 요구사항 그리고 이의 성취 여부와는 별개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어떤 상황,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든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고 소망하면서,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일이다. 하나님 하신 약속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긍정하고 지켜 행하는 일이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불신부정(不信否定)한다면 기대하지 않은 좋은 일이 일어날 확률은 영(0)에 가깝다.
산마루 서신의 이주연 목사님은 ‘긍정의 힘’에서 이렇게 썼다.
【기대하지 않으면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늘 똑같은 수준을 기대하는 사람은
영원히 제자리를 맴돈다.
기대가 삶의 한계를 긋는다.
예수님은 “너희 믿음대로 되리라”(마 9:29)고 말씀하셨다.
“네 믿음이 기대한 만큼 주겠다.”는 뜻이다.
늘 최악의 상황만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너무나 ‘잘 아는’ 그들은
항상 축 쳐진 어깨로 불평불만만 늘어놓는다.
“하나님, 왜 저만 요 모양 요 꼴로 놔두시는 겁니까?
정말 불공평하십니다.”
이들의 미래는 기대한 그대로다.
마음의 거짓 소리에 귀 기울이지 말라.
하나님은 커다란 소망을 품으라고 말씀하신다.
소망이 없는 믿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히 11:1).
소망의 또 다른 이름은 ‘높은 기대’이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해야 한다.
기대는 기회의 문을 열고 사회적 성공을 가져다주며
인생의 난관을 뛰어넘게 해주는 원동력이다. <긍정의 힘>에서】
내가 오랜만에 비틀거리며 걸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자주자주 채플에 가서 이사야41장과 43장을 붙들고 하나님께 기도 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사41:10, 14).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사43:1-3).
나는 두 달 넘게 입원해 있으면서 내 마음이 새롭게 정화되는 것을 느꼈다. 살아도 살지 않은 것처럼, 살지 않아도 산 것처럼,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처럼,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실상은 유명한 자로서, 너그럽고 관용할 줄 아는 넓은 심정으로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생겨났다(고후6:8-10).
퇴원할 무렵 박수철 신경내과 주치의 선생님께서 특별한 말씀을 하셨다. 입원부터 퇴원까지 시차(時差)를 두고 한번에 70만원하는 M.R.I 촬영을 4번이나 했는데, 그 사진을 모두 순차별로 죽 걸어 놓고 직접 보여주시며 설명해주셨다. 초기의 것은 뇌가 모두 파괴되었으나 마지막 사진은 정상으로 바뀌어 있었다.
“목사님의 뇌를 파괴한 바이러스가 어떤 바이러스인지 아직 의학적인 규명이 안 된 정체불명의 바이러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짧은 기간 안에 거의 정상으로 보여 지는 것처럼 변모된다는 것은 의학적으로 설명이 어렵습니다. 그동안 내가 수많은 환자를 다루었지만 목사님 같은 경우는 처음입니다. 목사님은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목사님을 보니 하나님이 계시긴 계신 가 봅니다. 그리고 어떤 바이러스인지 규명이 안 되었으므로 목사님은 몸이 호전된 것은 명백한 사실이지만 아직 병이 진행 중이라고 보아야할 것입니다. 퇴원하시더라도 몸 상태가 조금만 이상하다 싶으면 즉시 달려와야 합니다…….”
* (2001년 세브란스 영상자료 첨부)
나는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사선(死線)을 넘은 후 지금까지 정상으로 활동하고 있다. 퇴원하여 집에서 요양을 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내 생명을 내가 자신할 수 있는 그 어떤 능력도 내게는 없음을 절감했다. 어느 순간 나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저 세상 사람이 될 뻔 했던 경험은 한편으론 살아도 살아 있지 않은 것 같아서 나 자신을 불안하게 했지만, 또 한편으론 '나는 덤으로 사는 인생' 이라는 깨달음을 주었다. 덤으로 사는 것이니 무슨 일을 당해도 참고 견딜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에 집착하고 서로 아옹다옹 하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 어느 누구의 허물이 보일 때, 지적하고 다투는 것보다 가급적이면 넓은 아량으로 덮어주고 말없이 기도하는 것이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감사한 것은 그렇게도 소원하던 성전을 지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동안 나의 아버님께 성전 지을 땅을 주십사 여러 번 간청하고 설득도 해보았었지만 번 번히 거절당했다. 98년도에 심장 협심증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적이 있었는데, 그런 몸으로는 성전을 지을 수 가 없고, 지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 아버님의 움직일 수 없는 고집스러운 생각이었다.
“누구 좋은 일 시키려고 성전을 짓느냐?
너는 앞으로의 운명을 장담할 수 없는 몸이니, 셋방살이 교회 하더라도 그게 네 운명이려니 해라. 솔직히 말해서 나는 내가 평생 피땀 흘려 마련한 땅을 하나님께 바칠만한 믿음이 없다…….” 라고 아버님께서 말씀하셨을 때, 나는 화가 났지만 다시 한 번 설득해 보았다.
“아버지! 그렇게 제 건강이 염려 된다면 성전 지을 땅을 하나님께 드리고 나서 '하나님 제가 성전을 짓도록 이만큼 성의를 보였으니 우리 아들 건강 책임져 주세요.’ 하고 결단을 내려 보시지요. 그게 더 현명한 것 아닌가요?” 이건 아예 설득이 아니라 협박이었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나는 목회를 하면서 떳떳한 성전이 없어서 설움을 많이 받은 편이다. 좋은 건물이 꼭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남 보기에 항상 부끄럽다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내게 성령님의 은혜가 부족했던 것은 반성하지도 않고 말이다. 아무튼 퇴원 후에 성전 지을 땅을 달라고 또 요구했는데, 이번에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소원대로 하거라. 이번에 허락하지 않으면 또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를 텐데 네 원하는 대로 맘대로 하거라.”
퇴원 후 그 이듬해 2003년도에 아내가 지어준 '호산나 교회'라는 예쁜 이름으로 그림처럼 소박하고 아름다운 성전을 지었다.
'호산나'는 '주님! 제발 구원해 주옵소서!' 라는 뜻이다.
나는 성전건축에 얽힌 지난날의 추억을 생각하면 저절로 눈물이 난다.
누가 뭐래도 하나님은 살아계신 영광의 하나님이시다.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긍휼을 베푸시는 사랑의 아버지이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빛내며 사는 하나님의 귀한 자녀들이 된다면 하나님은 가장 크게 기뻐하실 것임에 틀림없다.
하나님이 정녕 우리를 기뻐하시기만 한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그 어떤 것도 넉넉히 주실 하나님이시라는 믿음도 당연한 상식으로 갖게 된다. 할렐루야 아멘! 모든 영광 하나님께 드립니다.
*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가 주님을 사랑하는 자인데,
그는 아버지께 사랑을 입고 예수께서 나타내주신다
(요4:21 요14:15 요일5:3-4).
*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금보다 귀한 것을 얻을 것이다.
하나님을 직접 만나라.
가장 좋은 것 곧 하나님의 성령을 얻을 것이다(눅11:13 약4:7-10).
* 십 팔년 동안을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안수하시매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눅13:11-13).
* 여호와는 나의 힘과 방패시니
내 마음이 저를 의지 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여호와는 저의 힘이시오 구원의 산성이시로다
(시28:7-9.18:1-3.46:1. 출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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