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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을 가장한 필연
이스라엘은 자자손손 순수한 여호와 하나님 신앙의 전통을 이어가는 것을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여겼다.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여인과 결혼을 하면 자연스럽게 이스라엘 신앙이 이방문화와 섞이게 되고, 그들이 섬기던 우상숭배를 끌어들여서 아들들을 꾀이게 되면 결국 하나님을 떠나게 되고 마침내 이스라엘은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의 통혼(通婚)을 금지시켰다. 먼 훗날 이는 이스라엘이 사느냐 죽느냐를 운명 짓는 중요한 갈림길이 될 정도로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여호와께서 일찍이 이 여러 백성에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그들과 서로 통혼하지 말며 그들도 너희와 서로 통혼하게 하지 말라. 그들이 반드시 너희의 마음을 돌려 그들의 신들을 따르게 하리라 하셨으나 솔로몬이 그들을 사랑 하였더라’(왕상11:2).
‘우리가 어찌 다시 주의 계명을 거역하고 이 가증한 백성들과 통혼하오리이까. 그리하면 주께서 어찌 우리를 멸하시고 남아 피할 자가 없도록 진노하시지 아니 하시리이까’(에스라9:14).
창세기 24장에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의 배우자를 얻는 과정을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나이 늙은 아브라함은 종을 불러서 아들 이삭의 짝을 찾도록 하는 중요한 과제를 준다.
‘내가 너에게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내가 거주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이에 종이 그 주인의 낙타 중 열 필을 끌고 떠났는데 곧 그의 주인의 모든 좋은 것을 가지고 떠나 메소보다미아로 가서 나홀의 성에 이르러 그 낙타를 성 밖 우물곁에 꿇렸으니 저녁때라. 여인들이 물을 길으러 나올 때 였더라. 그가 이르되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오늘 나에게 순조롭게 만나게 하사 내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성 중 사람의 딸들이 물 길으러 나오겠사오니 내가 우물곁에 서 있다가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하건대 너는 물동이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말미암아 주께서 내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 말을 마치기도 전에 리브가가 물동이를 어깨에 메고 나오니 그는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아내 밀가의 아들 브두엘의 소생이라. 그 소녀는 보기에 심히 아리땁고 지금까지 남자가 가까이 하지 아니한 처녀더라. 그가 우물로 내려가서 물을 그 물동이에 채워가지고 올라오는지라. 종이 마주 달려가서 이르되 청하건대 네 물동이의 물을 내게 조금 마시게 하라. 그가 이르되 내 주여 마시소서 하며 급히 그 물동이를 손에 내려 마시게 하고 마시게 하기를 다하고 이르되 당신의 낙타를 위하여서도 물을 길어 그것들도 배불리 마시게 하리이다 하고 급히 물동이의 물을 구유에 붓고 다시 길으려고 우물로 달려가서 모든 낙타를 위하여 긷는지라. 그 사람이 그를 묵묵히 주목하며 여호와께서 과연 평탄한 길을 주신 여부를 알고자 하더니 낙타가 마시기를 다하매 그가 반 세겔 무게의 금 코걸이 한 개와 열 세겔 무게의 금 손 목고리 한 쌍을 그에게 주며 이르되 네가 누구의 딸이냐 청하건대 내게 말하라. 네 아버지의 집에 우리가 유숙할 곳이 있느냐. 그 여자가 그에게 이르되 나는 밀가가 나홀에게서 낳은 아들 브두엘의 딸이니이다. 또 이르되 우리에게 짚과 사료가 족하며 유숙할 곳도 있나이다. 이에 그 사람이 머리를 숙여 여호와께 경배하고 이르되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사랑과 성실을 그치지 아니하셨사오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내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하니라.....
라반과 브두엘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 리브가가 당신 앞에 있으니 데리고 가서 여호와의 명령대로 그를 당신의 주인의 아들의 아내가 되게 하라. 아브라함의 종이 그들의 말을 듣고 땅에 엎드려 여호와께 절하고 은금 패물과 의복을 꺼내어 리브가에게 주고 그의 오라버니와 어머니에게도 보물을 주니라 (창24장 요약)
아브라함의 종이 이삭의 아내를 얻는 과정은 실로 잘 짜여 진 연극의 한 장면과도 같다. 어떻게 사람의 자유의지가 기묘한 하나님의 섭리와 아무런 충돌 없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룰 수 있으며, 소위 믿음대로 되어질 수 있는가? 그것은 앞서 행하시면서 주도권을 쥐고 계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아니면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다.
신앙의 세계는 최선을 다하는 인간의 노력과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함께 어우러져서 만들어 내는 그 어떤 비밀스러운 것이다.
리브가는 나그네를 대접하고 낙타 10필에게까지 물과 짚과 먹이를 배불리 먹일 정도로 아량이 넓고 속이 깊은 준비 된 여인이었다.
하나님은 믿음의 바통을 계승할 만한 그릇을 미리 예비하시고 적절한 때에 만나게 하신 것이다.
이스라엘에 아합 이라는 악한 왕이 있었다. 그가 그의 아내 이세벨과 공모하여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고 거짓 증인을 내세워서 나봇을 죽였을 때 하나님은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서 심판을 말씀하셨다.
‘여호와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내려가서 사마리아에 있는 이스라엘의 아합 왕을 만나라. 그가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그리로 내려갔나니 너는 그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고 하셨다 하고 또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하였다 하라’(왕상21:17-19).
드디어 하나님의 때가 되어 길르앗 라못 전투가 벌어졌다.
열왕기상 22장에는 아합이 죽게 되는 과정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왕과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니라. 이스라엘의 왕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나는 변장하고 전쟁터로 들어가려 하노니 당신은 왕복을 입으소서 하고 이스라엘의 왕이 변장하고 전쟁터로 들어가니라. 아람 왕이 그의 병거의 지휘관 삼십이 명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작은 자나 큰 자와 더불어 싸우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왕과 싸우라 한지라. 병거의 지휘관들이 여호사밧을 보고 그들이 이르되 이가 틀림없이 이스라엘의 왕이라 하고 돌이켜 그와 싸우려 한즉 여호사밧이 소리를 지르는지라. 병거의 지휘관들이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 아님을 보고 쫓기를 그치고 돌이켰더라.
한 사람이 무심코 활을 당겨 이스라엘 왕의 갑옷 솔기를 맞힌지라. 왕이 그 병거 모는 자에게 이르되 내가 부상하였으니 네 손을 돌려 내가 전쟁터에서 나가게 하라 하였으나 이 날에 전쟁이 맹렬하였으므로 왕이 병거 가운데에 붙들려 서서 아람 사람을 막다가 저녁에 이르러 죽었는데 상처의 피가 흘러 병거 바닥에 고였더라. 해가 질 녘에 진중에서 외치는 소리가 있어 이르되 각기 성읍으로 또는 각기 본향으로 가라 하더라. 왕이 이미 죽으매 그의 시체를 메어 사마리아에 이르러 왕을 사마리아에 장사하니라. 그 병거를 사마리아 못에서 씻으매 개들이 그의 피를 핥았으니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거기는 창기들이 목욕하는 곳이었더라‘(왕상22:29-38).
아합은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의 왕복을 바꾸어 변장을 하고 온갖 꾀를 다 쓰지만 적군 병사 한 사람이 우연히 무심코 당긴 화살 하나가 그의 갑옷 솔기를 뚫고 마침내 예언의 말씀대로 죽음을 면치 못하고 개들이 그의 피를 핥았고 음녀 이세벨 역시 개들이 먹었던 것이다.
성경이 증언하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은 전능하사 하늘과 땅을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이시다. 예배 때마다 암송하는 사도신경의 첫머리에 나오는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는 하나님을 가장 잘 이해한 신앙고백이다.
하나님은 보이는 듯 보이지 않게, 우연을 가장(假裝)한 필연으로 일하시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런 일이 얼마든지 가능하시다. 하나님이 뜻하시면 못 이루실 것이 없다.
바다 깊은 곳에 부글부글 끓고 있는 마그마(magma)가 어느 순간 분출하면 거대한 지진이 되고 한 순간에 도시가 사라지기도 하고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그랜드 캐년’ 같은 장엄한 협곡을 만들기도 한다.
하나님은 마치 용암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말하자면 모든 것의 근원자(根源者)이시기 때문이다(렘33:2).
성경에 나오는 모든 사건들과 모든 일들은 우연(偶然)을 가장한 필연적(必然的)인 사건들의 연속으로 되어있다. 성경에서 보여 지는 모든 것들은 사람이 보기에는 우연처럼 보여 진다. 그러나 그 속에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항상 먼저 있고, 그것이 역사의 무대에서 서서히 펼쳐지면서 그 어떤 하나님의 목적을 절묘하게 이루시는 것이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것이 처음에는 뭐가 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하나님의 목적을 이룰 때가 임하면서부터 하나님의 계획은 선명하게 윤곽을 드러내고 마침내 하나님 자신만의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 내시는 것이다. 이런 일들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이다.
사람은 어떤 일을 행함에 있어서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의 권리를 마음껏 행사할 줄 아는 존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통해서 자신의 뜻과 섭리를 이루어 가시는 위대하신 하나님이시다. 이런 아름답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믿고 알고 섬길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지고(至高)한 복이 아닐 수 없다.
* 사람들은 하나님의 광대함과
자신들이 대조되지 않는 한
자신들이 하찮은 존재라는 사실을
적절한 시기에 깨우치지 못한다(엡1:19).
* 오로지 당신이 약할 때
강하게 되고,
당신의 의지를 주님께 맡길 때,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원천을 발견하게 된다(고후12:10).
* 우리는 종종 믿음을 마음의 상태라고만 간주는데
믿음은 단련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믿음은 쉽게 생기지 않으며 스스로 성장하지도 않는다.
주님, 주님의 은혜에 기대어 믿음을 키울 수 있도록
우리를 가르쳐 주시옵소서(빌2:12).
* 크리스천의 모든 삶은 오로지
하나님을 경배하고 감사하는 삶이어야 한다.
우리는 그저 먹지도 잠들지도 말아야 한다.
대신 주 안에서 먹고, 자고, 일하고, 말하며,
주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기 위해서
모든 일을 해야 한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8).
◆ 저는 신앙의 여정 가운데 특별한 의미의 삶과 죽음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어느 교회이든 제게 간증 설교할 기회를
주시면 기꺼이 제 자신을 헌신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말숨\' 산문집 1권을 구매해 주시면 1권이 사랑의 선물로
전국 교도소에 님의 이름으로 기증됩니다.
(각권 13,000-15,000원. 전6권. 농협:301037-51-098385.
호산나교회 010-9059-4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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