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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과 롯의 아내는 부창부수(夫唱婦隨)
부부가 같이 오래 살다보면 서로 비슷하게 닮게 되고 나중에는 같아진다고 한다. 같이 살다보니 그 남편에 그 아내가 되는 것이다.
남편이 노래 부르니 아내가 따라 한다는 부창부수(夫唱婦隨)는 여기서 유래한 고사성어(故事成語)다.
원래는 가정에서 남편이 주장하고 아내가 잘 따르는 것이 부부 화합의 도리를 이르는 뜻으로 생겨난 말인데 종종 그 반대의 경우에도 사용된다.
언젠가 뉴스에서 도둑질도 부창부수라면서, 상갓집이나 결혼식, 백화점을 돌아다니며 절도행각을 벌이던 부부가 검거되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60년대 내가 살던 시골마을이 퍼뜩 생각난다.
한 겨울동안 일이 없는 농촌에서는 마을사람들이 매일 모여서 화투를 치고 뿌연 담배연기 가득한 방안에서 술 마시고 웃고 떠드는 것이 일상화 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 직업이 노름으로 살아가는 어떤 아저씨가 있었는데, 기이한 것은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노름판에서 화투를 치는 것이었다. 장가도 아직 안 보낸 아들과 함께 노름을 하면서 자식에게 눈속임하는 기술을 가르쳐준다는 것은 어린나이에도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 아들의 장래를 생각해 볼 때 세상에 이런 저주가 또 있을까 싶었던 것이다.
창세기 19장에는 모압과 암몬 족속의 기원에 대하여 자세히 말씀하고 있다. 모압과 암몬 족속은 눈의 가시처럼 이스라엘을 대대로 괴롭히고 고통을 주었던 족속이다. 우리는 이들 족속의 혈통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롯의 가문의 삶의 행적을 살펴보면 하나님께 악한 도구로 쓰임 받게 된 결과가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롯은 항상 배은망덕한 길을 걸어갔기 때문이다.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란을 떠날 때 조카 롯도 함께 데리고 갔다. 삶의 근거지를 찾아 애굽으로 내려갈 때도 함께 데리고 갔고, 애굽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돌아올 때도 데리고 왔다.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물과 목초지 문제로 서로 다툴 때에 아브람은 관대한 마음으로 조카 롯에게 은혜를 베풀었다.
자기 기득권을 조카에게 양보하고 먼저 마음에 드는 좋은 땅을 취할 선택권을 준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롯은 마치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은 물이 넉넉한 요단 온 지역을 택했고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했다.
뿐만 아니라 롯이 시날 왕 아므라벨을 비롯한 다섯 왕과 싸워 패배함으로 포로로 잡혀갔을 때도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318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롯과 그의 재물과 또 부녀와 친척을 다 찾아오기까지 했다. 조카를 위해 목숨 걸고 싸워 목숨까지 살려주었다.
받은바 은혜를 생각한다면 롯은 아브람에게 왔어야 했는데 그는 아브람을 떠났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 성을 심판하실 때에 아브람을 생각해서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다고 했다(창19:29).
롯은 처음 아브람과 함께 하란을 떠날 때는 하나님의 길을 따랐지만, 소돔의 풍요를 갈망하면서부터는 점차 배은망덕한 인물로 변해갔고 마침내 하나님에게서도 이탈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자신을 맡길 줄 모르는 롯과 두 딸은 산속 동굴에서 지내게 되었다.
롯의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은 소돔과 고모라 심판 때,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다가 멸망하고 말았다.
두 딸은 결혼이 불가능해지자 후손을 이어 갈 기상천외(奇想天外)한 방도를 세웠는데, 다름 아닌 아버지를 만취하게 한 후에 관계를 맺어 자녀, 곧 모압과 암몬을 낳았다.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온 세상의 도리를 따라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이 땅에는 없으니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그 밤에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큰 딸이 들어가서 그 아버지와 동침 하니라. 그러나 그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이튿날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어제 밤에는 내가 우리 아버지와 동침하였으니 오늘 밤에도 우리가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네가 들어가 동침하고 우리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그 밤에도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작은 딸이 일어나 아버지와 동침 하니라.
그러나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롯의 두 딸이 아버지로 말미암아 임신하고 큰 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으니 오늘날 모압의 조상이요 작은 딸도 아들을 낳아 이름을 벤암미라 하였으니 오늘날 암몬 자손의 조상이었더라(창19:31-38)
아버지에게 술을 먹이고, 딸이 동침하여 자손을 이어간다는 발상은 오늘 날 현대사회에서도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다.
그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신명기 23장에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그들은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떡과 물로 너희를 길에서 영접하지 아니하고 메소보다미아의 브돌 사람 브올의 아들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너희를 저주하게 하려 하였으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사랑하시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발람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저주를 변하여 복이 되게 하셨나니 네 평생에 그들의 평안함과 형통함을 영원히 구하지 말지니라’(신23:3-6).
영원토록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자격을 박탈당한다는 것은 보통 큰 저주가 아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이들의 평강을 위해서도 기도하지 말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이들과 혼인하는 것은 더더욱 금지했다. 롯의 가문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상실한 세속적인 가문의 표본이기 때문이다.
롯의 딸들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기겁을 할 정도로 수치스럽고 비열한 방법도 마다하지 않았다.
목적이 아무리 좋을지라도 수단과 방법이 잘못되었다면 그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2:16)는 말씀은 금보다 귀한 말씀이다.
우리는 롯의 가문과 같이 돈돈돈 하면서 눈에 보이는 세상적 가치를 따라 살면 나도 망하고 후손도 망하는 줄 깨달아야 한다.
반면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부르신 사명을 따라 사는 삶은 자손만대에 복의 근원이 되어 하나님 축복의 통로가 된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창12:1-3) .
왠지 롯과 롯의 아내 그리고 롯의 딸들은 모두 부창부수(夫唱婦隨)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범하는 대부분의 범죄는
뻔히 알면서 짓는 범죄다.
모르고 짓는 죄는 덜 맞을 것이요
알면서 짓는 죄는 중한 벌을 피할 수 없다(눅12:47-48).
* 역사는 하나님의 언어다.
말씀이 녹아 들어가서 그 어떤 맛을 빚어내는
하나님의 작품이다(신4:33-36 시95:7 히3:7).
* 마음은 내 영의 상태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마음을 깨끗하게 하면 내 영이 하나님을 뵙고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을 수 있는 상태가 된다(마5:1-12).
* 사람은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 때
인간의 사람됨을 깨닫게 된다(살후2:16, 사43:21).
*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이해할 때,
직설적인 직관(直觀 intuition)으로 말하고
통찰(insight)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마11:25,눅10:21).
* 단순한 직관은 어린아이 같은 때 묻지 않은
깨끗한 심성(心性)에서 가장 정확하고,
분별력 또한 날카로움을 나타낼 수 있다(마11:25,눅10:21).
◆ 저는 신앙의 여정 가운데 특별한 의미의 삶과 죽음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어느 교회이든 제게 간증 설교할 기회를
주시면 기꺼이 제 자신을 헌신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말숨\' 산문집 1권을 구매해 주시면 1권이 사랑의 선물로
전국 교도소에 님의 이름으로 기증됩니다.
(각권 13,000-15,000원. 전6권. 농협:301037-51-098385.
호산나교회 010-9059-4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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