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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만남의 복, 축복의 문이 열리는 복(눅19:1-10).
목회 일선에서 은퇴하시고도 어려운 가운데서도 자비(自費)를 들여 지속적으로 중국을 오가시면서 천국 복음을 열심히 증거 하시는 박정도 목사님이 계신다. 철의 장막 공산치하에서 복음을 듣지 못한 영혼들을 긍휼히 여기시는 그 영혼사랑 하나 때문에 나이도 잊어버리시고 물질도 허비하시기를 기뻐하신다. 평생을 시골에서 목회하셨기 때문에 중국 선교를 다닐 여력이 전혀 없지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서든지 그때그때 필요한 물질을 주시기 때문에 이 일을 계속 하고 있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나는 무척 감동을 받았다.
바로 이를 통해서도 ‘하나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義)의 길로 인도 하시는도다. 여호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토록 거하리로다’(시23편 요약) 라는 말씀이 확증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목사님은 ‘하나님을 만나면 인생의 방황이 끝나고, 복음을 만나면 축복의 문이 열린다’ 라는 표제를 가슴에 품고 다니시면서 천국복음을 전하시는데, 흑암의 땅에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어가는 모습을 볼 때면 밀려오는 영혼의 감격 때문에 말로 다 할 수 없는 행복을 고백하게 되고 뿐만 아니라 생생하게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현존을 느끼고 점점 크게 다가오는 천국의 소망과 기쁨 그리고 삶의 가치와 보람을 확인하게 된다고 말씀 하신다.
사실 박 목사님께서 품고 계시는 표제 속에는 성경의 모든 내용과 영적인 비밀들이 압축되어 있다. 어느 한 개인이나 가정, 사회나 국가를 막론하고 하나님을 만나기만 하면 복이 시작되고, 하늘의 생명이 열리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말 어째서 그럴까?
하나님은 모든 것의 시작이요 끝이시기 때문이다.
천지만물의 기원이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 것이고, 온갖 만 가지 복의 근원이 하나님이시고, 기력(氣力)의 시작도 하나님이시고, 그 좋은 금은보화와 권세 그리고 온갖 진선미(眞善美)의 총화(總和)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에 있기 때문이다. 죽음과 흑암을 쥐고 있는 어둠의 권세자 마귀를 심판하고 온갖 고통과 저주받게 하는 더러운 귀신을 내 쫓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여는 권세 능력도 오직 하나님께만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하나님을 성경에서는 다양한 표현을 써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영원 영원 영원하시고 거룩하신 성령(聖靈)이신 분, 스스로 있는 영존(永存)하시는 아버지 곧 모든 것의 조상, 바로 그 때문에 그 어떤 무엇과도 비교되기를 거부하시는 절대지존자(絶對至尊者), 천지의 주재(主宰), 모든 생명과 진리의 아버지. 그 분이 뜻하시면 그것이 곧 법이 되는 궁극적인 입법자와 재판장이 되시는 분,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불러내시는 전능자, 지혜와 지식이 무궁무진하신 기묘자(奇妙者), 병법과 모략에 능하신 모사(謀士), 하늘 천사들과 모든 인류를 말씀으로 낳으신 모든 영들의 아버지, 절대 은총과 절대 사랑으로 복과 생명을 주시는 근원자, 하늘 천사들도 꿇어 경배 찬양하는 절대 엄위하신 창조자, 은혜의 경륜과 섭리를 펴시는 역사의 주관자,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 홀로 뛰어 나사 빛 가운데 스스로 영생하시는 분, 아무도 볼 수 없고 또 이름조차 함부로 부를 수 없는 크고 두려우신 분, 그 분만이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신 분, 만왕의 왕 만주의 주, 그분만이 의롭고 선하신 분, 궁극적으로 공평과 정의로 악을 멸하시고 심판주로 하나님의 의로움을 실현하시는 분, 사람 손으로가 아니라 하나님 친히 빚어 만드신 천국을 은혜 받은 사람에게 기업으로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자비하신 분, 은혜와 사랑으로 모든 죄악을 사하시고 모든 병을 고치시는 구원자,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는 분, 인자와 긍휼로 면류관을 씌어주시고 네 청춘을 독수리처럼 새롭게 하시는 분, 나의 심령을 감찰하사 내 마음 가장 깊은 곳도 꿰뚫어 아시는 분, 마음의 진실만이 통하고 기뻐 받으시는 분, 하나님의 기뻐하심으로 인하여 마른 땅이 샘이 되고 염전도 옥토가 되게 하시는 분, 죄악으로 인하여 분노하사 샘이 마른 땅이 되게 하시고 옥토가 염전이 되게 하시는 분, 마음을 낮추어 회개하고 돌이켜서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늘에서 들으시고 흉악의 결박을 끊어주시고 쇠사슬을 풀어주사 새로운 살 길을 열어주시는 긍휼하시고 자비하신 분.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하게 하시고 주린 영혼을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은혜로우신 하나님, 그분만이 나의 소망, 나의 기쁨, 나의 반석, 나의 힘, 나의 방패, 나의 피난처, 나의 바위, 나의 영광의 칼이 되시는 분, 나 두 눈 감을 때, 이 세상 모든 것이 내 곁을 떠나고 나 홀로 고독하게 죽을 때도 끝까지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나를 받으셔서 천국까지 데려가 주실 나의 인도자, 나의 안내자, 죽음의 허무를 깨고 부활 영생의 영광으로 인도하실 나의 구원자 하나님. 그 어떤 경우에도 나의 궁극적 관심이 되실 수밖에 없는 바로 그분이시다.
우리가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 한 분만 진실로 만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이 세상 모든 것 다 잃어버릴지라도 하나님 한 분만 정녕 만나 그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으로 만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되는 것 아닌가. 나는 비록 부족하지만 하나님은 세상 모든 것이 그분 것이니 그분과 연합하기만 하면 세상 모든 것이 내 것이 되어지는 부요한 자가 되는 것 아닌가? 나는 정말 부요한 자 아닌가?
100 가운데 98쯤 갖았다면 2 정도는 없어도 되는 것 아닌가?
너무 욕심 부리지 맙시다. 과유불급(過邀不及)이 항상 문제다.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하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너무 많이 먹으면 배탈 나고 말지 않는가. 하늘의 것을 갖기 위해서는 세상 것을 의도적으로라도 어느 정도는 털고 내려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마귀라는 존재는 자기 지위를 잊고 감히 하나님의 보좌를 욕심내어 하나님께 반역함으로 거룩한 하늘에서 쫓겨난 타락한 천사다.
마귀를 따라가면 속을 뿐이다. 잘 되는 것 같아도 결국은 망한다.
원래 마귀는 속이는 자요 거짓의 아비요 살인자이기 때문이다.
설령 이 땅에서는 잘 먹고 잘 살지 몰라도 천국을 잃어버리면 다 잃어버리는 것 아닌가?
그런데 내가 유심히 세상의 삶을 관찰해보니 하나님을 공경하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특별하신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금생(今生)과 내생(來生) 모두 잘 되고 형통하더라는 사실이다. 내생에서는 예외 없이 다 잘 된다. 그런데 금생에서 만큼은 절대적으로 꼭 그런 것은 아니더라도 그러나 통계적으로도 눈에 띄게 확인되는 바로는 복 받아 형통하고 잘 되더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그럴 수밖에 없다.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오시는데 어찌 복이 시작되지 않겠는가. 만 가지 복의 근원 하나님이 오셔서 친히 인도하시고 도우시니 안 되는 것도 되고 불가능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근본이 복과 생명이시오 불가능의 가능이시다. 만복의 근원이 되신 분께서 친히 오셔서 도우 신다 는데 무엇이 안 될 것이 있겠는가. 하나님 마음을 사고 하늘과 통하기만 하면 죽은 자도 살리시고 없는 것도 있는 것처럼 불러내시는 하나님께서 기이한 구원을 나타내보이실 것이다. 그 살아있는 증거는 하도 많아서 글로 쓰기에 불가능함으로 아예 여기서는 포기하련다.
그런데 마귀를 따라다니면 내생에서는 반드시 망하고 이 세상의 삶에서도 보면 통계적으로 만사가 불통(不通)이요 잘 안되더라는 사실이다. 당연하지 않겠는가. 마귀는 근본이 저주받게 하여 죽이는 것이 목적이다. 속이고 강탈하고 병들게 하고 파멸시키는 영적 존재다.
그러니 마귀를 만나 마귀에게 붙잡혀 종노릇 하면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다. 될 것도 안 되고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법이다.
여기서 우리의 선택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하나님이냐 마귀냐? 생명이냐 죽음이냐? 복이냐 저주냐?
너희는 살기 위해서 하나님을 택하라.
너희는 복을 얻고 생명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을 택하라.
무엇을 머뭇거리는가?(수24:14-25).
언제부터인가 신학에서도 ‘만남’(encounter)을 상당히 중요한 신학적 주제로 인식하게 되었다. 만남(encounter)이야말로 신학의 실마리를 푸는 열쇠가 된다는 것이다.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만나고, 생명의 말씀과 만날 때 회개를 경험하고 구원도 복도 만나게 되는 것이다(눅19:1-10).
나는 이 세상이 흑암과 곤고와 쇠사슬에 매여 칠흑같이 어둡지만 그래도 긍정해 보고 싶다. 아무리 악한 세상이라 할지라도 사람은 하나님을 만날 여지가 있기 때문이고, 좋으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만남이 되어 주시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서 지식에까지 새로워 진 사람, 영혼이 거듭나서 육적인 옛 사람이 죽고 새로운 하늘의 사람이 된 사람, 하나님의 거룩한 영으로 감동을 받은 성령의 사람은 뭇 사람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만남, 영원한 만남은 이런 것입니다’ 하고 무언의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의 모양이신 ‘예수’ 라는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으로, 다시 말하면 보이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분이 나를 위하여 대신 죽음을 죽어주셨다. 그 흘리신 보혈의 피가 마귀 권세를 물리칠 하나님의 능력이 되셨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 흘리신 하나님의 피로서 마귀를 심판하시고 우리를 마귀의 손아귀에서 빼내시어 하나님의 자녀 삼으셨다.
이 사실을 믿고 따르는 자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우리는 더 이상 마귀의 종살이 하는 어둠의 자식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빛의 자녀들이요 영광스러운 천복(天福)을 기업으로 물려받는 천국의 자녀들이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은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것인데, 이 비밀을 알면 알수록 우리가 누릴 복의 세계는 더 커지고 넓어질 것이다(엡4:13-15).
그러므로 우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구습(舊習)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어야 한다(엡4:22-24).
오늘날 우리는 육체의 욕심을 따라 걸핏하면 분쟁하고 갈라서고, 원수 맺고, 파리 목숨 대하듯 생명을 빼앗는 잔인하고 무서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무슨 만남이든지 두려워하고 기피하는 낯설기 이를 데 없는 소외의 심연 한 가운데에 있다. 모두가 분주하지만 실상은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고독하기는 마찬가지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이란 존재의 고독 그 자체를 피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 어디서나 진실하고 따뜻한 만남, 아름다운 만남이 그립다.
좋은 책을 만나고, 좋은 친구, 좋은 스승, 좋은 남편, 좋은 아내, 좋은 이웃을 만날 수 있기를 소원한다. 아니 설령 그런 좋은 것들을 만난다할지라도 그것만 가지고는 턱없이 부족하다.
영원하신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과 만나고, 지금 여기서 하나님으로 나타나시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만날 수 있을 때만 우리의 영의 소원은 만족하게 채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세리장이 삭개오는 예수를 만나고 운명이 바뀌었다.
인생의 방황이 끝나고 새로운 복의 세계가 열리는 출발점은 영원하신 하나님, 이 세상이 좋아하는 복은 물론이고 영생의 복까지 주실 수 있는 좋으신 하나님과 만날 때 시작되기 때문이다.
할렐루야! 모든 영광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그는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네 우편 그늘이 되신다. (시121:1,7)
* 하나님이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간구에 귀를 기울이사
주의 진실과 의로 응답 하소서 (시120:1 . 시119:170 시130:2-5)
* 마른 땅같이 주를 사모하는 내 영혼,
주의 모든 행하신 것을 묵상하며
주의 손의 행사를 생각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펴리라.(시143:6)
* 아침에 나로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시고
나의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시143:8)
* 내가 주님의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위엄과
크신 은혜를 기념하여 말하고
주의 의를 노래하리라. (시145:7 출20:24 시30:4 마26:13)
* 하나님께서는 만유를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니
모든 피조물이 주께 감사하며 찬송한다.(시145:9)
* 하나님 지으신 모든 것이
주의 능하신 일과
주의 나라의 위엄의 영광을
인생들에게 웅변하고 있다. (시145:5 사2:10 벧후1:16)
*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행위에 의로우시며
그 모든 행사에 은혜로우시다.
때를 따라 식물을 주시고
손을 펴사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케 하신다. (시14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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