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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힘
올해 겨울은 유난스러웠다. 삼한사온(三寒四溫)도 잊어버린 듯 연일 추운 날씨가 계속되는 탓에 작년 12월 7일에 내린 눈이 해를 넘기고도 1월 내내 녹지 않았다. 내가 작년 12월 7일을 특별히 기억하는 이유는 나의 아내가 퇴근하다가 그날 엄청 온 눈에 미끄러져 낙상(落傷)사고를 당해 지금까지 근 2달 가까이 병원에 입원해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매일같이 병원을 들락거려야 하고 밥을 손수 해먹어야 하는 원인제공을 그 첫눈이 가져다주었으니 잊을 수가 있겠는가.
눈 구경을 실컷 해서 좋기는 하다만 언제 날씨가 풀리고 눈이 녹으려나 했다. 그런데 1월31일, 갑자기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아스팔트 위에 뽀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더니 온천지의 눈이 단 한 번에 녹아내리고 있다. 겨우내 꽁꽁 얼었던 메마른 대지가 촉촉이 적셔지고 조금 있으면 푸른빛 물기를 머금은 땅과 나무들도 아기 손 같은 연한 잎 순이 돋아날 것이다.
강원도는 제설작업에 30억을 쏟아 부을 예정이라고 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갑자기 봄소식을 가지고 오신다면 이처럼 힘든 일도 단 한방에 깔끔히 끝내버릴 수 있다. 자연도 위대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품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영적 권위와 힘 앞에 천지만물도 순종하고 무릎 꿇는다.
이스라엘은 여러 면에서 독특한 나라다. 경상북도 보다 조금 크고 강원도 보다는 조금 작은 나라에 불과한 이스라엘에서 역대 노벨상 수상자의 3분의 1 정도를 배출했고, 인류 정신문명을 주도한 헤브라이즘 신앙의 탯줄이 바로 여기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놀라울 정도가 아니라 불가사의한 신비로운 일이다.
요즘 미국은 연이은 총기사건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총기규제 법안을 입법화 하느니 어쩌니 하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는 못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그런데 이스라엘에는 이런 문제가 단 한건도 발생하지 않는다. 팔레스틴 분쟁의 위기 때문에 이스라엘 국민은 누구나 총을 가지고 다닌다. 집에도 작업장에도 총기를 소지하고, 일할 때는 바로 작업장 옆에 총을 세워둔다. 그런데도 단 한건의 총기사고도 나지 않는다는 사실에는 놀라운 영적인 비밀이 숨겨져 있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의 영적인 권위에서 오는 축복권(祝福權)이다.
이스라엘에 가면 수염을 길게 꼬아 기르고 땅바닥까지 닿을 정도로 늘어진 검은 옷을 입은 빵덕 모자를 쓴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사람을 축복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말 그대로 그 축복이 이루어진다고 믿는 것이 유대 신앙전통이다. 마찬가지로 유대인에게 있어서 육신의 아버지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영적인 대리인(代理人)이다. 아버지의 영적인 권위는
하나님이 직접 위임(委任)하신 영적인 권한으로 믿고 받아들인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의 힘이요 오늘의 이스라엘을 만든 비결이다.
아버지가 바르면 자식도 바르게 되어있고, 아버지가 하나님 아버지를 경외하고 복을 받으면 자식도 하나님을 공경하고 복을 받게 되어있다.
아버지가 자식을 맘껏 축복하면 그 축복이 말 그대로 후손에게 이루어진다. 하나님이 그렇게 되도록 은혜 베푸시고 도우시고 섭리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명령형으로 되어 있는데,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다는 것은 이들에게 있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어렸을 적에 어느 책에서 유대인들의 생활 습관에 관한 것을 읽었는데 이는 나의 사고체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 책은 유대인들이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서 갖고 있는 독특한 개념을 이방인(異邦人)의 입장에서 기술한 내용이다.
어느 미국계 유대인의 얘기로 기억한다. 대 여섯 살 밖에 안 되는 어린이들이 함께 모여서 재미있게 게임을 하며 놀고 있다.
한참 놀이에 흥미를 더 해 가는 어느 순간에 갑자기 모든 것을 그만 두고 집으로 가야만 한다고 하면서 일어서는 아이가 있는데, 그는 꼭 유대인 이라는 것이다. 친구들이 “조금만 더 놀다 가자, 지금 이 순간에 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조금만 더 시간을 내면 끝난다.... ”하면서 아무리 설득해도 절대로 통하지 않는 고집불통의 아이는 유대인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아버지가 그 시간에 집에 오라고 했고, 자기는 간다고 약속 했다는 것이다.
그들 세계에 있어서, 어떤 경우일지라도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고 한다. 아버지라는 분의 명령은 자기 존재에 있어서 하늘같은 분인 것이다. 이처럼 아버지와의 약속은 신실하게 지켜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유대인들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생활 습관처럼 몸에 배어있다. 철이 들기도 전에 어떻게 이런 의식구조(意識構造)가 뿌리 내렸는지 도무지 알 수 없고, 신기하기만 하다는 것이다. 요즘 자식이 부모 알기를 우습게 알고, 부모 말을 지긋지긋 듣지 않아 한탄하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 어렸을 때부터 듣고 배워온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신앙과 깊은 연관이 있다.
나는 어렸을 때 이 글을 읽고 내가 갖기 시작한 하나님 신앙과 연관 지어 생각했는데, ‘바로 이런 것이 신앙!’이라고 그냥 감동으로 알아 버렸다.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에 무슨 이의가 있을 수 있는가! 아버지의 명령은 나를 존재하게 하신 고향의 따스한 품이며, 최고의 권위를 말씀하는 것이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아버지와의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나에게도 믿음이 되었다.
이처럼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아버지는 마치 하나님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명령은 반드시 따르고 순종해야 한다.
그래서 자식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맘껏 복 빌어주는 아버지의 축복 받기를 소원했다. 이것이 오늘의 이스라엘을 만든 힘이요 비결이다.
성경은 아비가 장자(長子)에게 빌어주는 축복권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서 야곱과 에서는 목숨 걸고 싸웠다는 것을 중요하게 기록하고 있다 (창27장). 이스라엘이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얻은 야곱은 죽기 전에 열두 아들을 발치 앞에 무릎 꿇리고, 각인의 믿음의 분량대로 축복했다(창49장). 이들 모두는 후일 이스라엘 12지파의 조상이 되었고, 이스라엘 건국의 기초가 되었다. 이처럼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기 후손들에게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복을 물려주기를 소원했다.
물질이나 권력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붉고 예쁜 꽃도 열흘을 넘기는 꽃이 없고,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고 수시로 변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무형(無形)의 존재인 하나님의 복 받을 권리는 하나님 때문에 영원하고 무궁무진(無窮無盡)하며 신실하고 변치 않는다.
그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생사화복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지켜주시며 때마다 일마다 도우셔서 형통한 자가 되도록 역사하신다면 무엇에서건 일류(一流)가 될 것은 자명한 이치 아니겠는가!
그래서 자기 자식뿐만 아니라 후손의 후손들이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은혜 입기를 원했고, 하나님의 복이 가문을 타고 영원토록 전수되기를 소원했다. 이와 같이 영적 유업은 전수되는 것이다.
성경은 솔로몬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행하였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자신의 믿음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였다는 말은 하나님의 법을 잘 지켰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말씀하셨다(요14:15, 요14:21). 뿐만 아니라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 하나니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고 말씀하셨다(요14:24).
솔로몬은 하나님을 사랑하였기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 사람이다.
아버지 다윗처럼 말이다. 다윗은 이스라엘 전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을 제일 사랑한 사람으로 평가 받는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사랑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가치기준이 될 정도다.
오늘날 믿음의 본질이 이상하게 변질되었다. 이것이 항상 문제를 일으킨다. 믿음을 마치 지식체계처럼 생각하는데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믿음과 행동은 서로 붙어있는 동시적인 것이지 별개로 말해질 수 없는 성격이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믿음과 하나님 사랑을 인정하신 후에 넘치는 하늘의 복을 신령한 은혜로 넘치도록 부어주셨다.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의 행함 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온갖 일에 순종하여 내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말하기를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 대로 네 이스라엘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려니와”(왕상9:4-5).
아버지는 그 가정의 영맥(靈脈)을 붙잡고 있는 영적 가장(家長)이다.
오늘날 가정마다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영적 가장으로서의 권한과 권리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아버지 자신도 그 영적인 비밀을 모르고, 자식 또한 아버지의 영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얘기 자체가 되지 않을 것은 불을 보듯 빤한 것이다.
* 겨울의 문턱을 넘는 2월이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 날씨가 갑자기 풀리고 눈이 녹는다.
지구의 공전 기울기에 따른 태양과의 거리 변화는
이처럼 아름다운 계절의 순환을 가져왔다.
세상은 하나님의 조화로 가득 차 있다(시19:1-6 욥38:4-41).
*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컫는 자다.
곧 그가 자기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라는 뜻이다.
그가 나를 지으시고 만드실 때
그의 증인, 그의 종으로 성별하신 것이다.
이를 알고 믿는 자,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자다(사43:7-10).
* 하나님을 증거 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
눈이 있어도 소경이요 귀가 있어도 귀머거리인 백성을
생명의 기이한 빛 가운데로 이끌어 내는 하늘의 일이다(사43:8).
* 억류된 생명들이 외치고 부르짖고 있다.
제발 나를 풀어 살려 달라고.
살고자 하는 본능, 사랑의 의지를 표현하고자 하는 소원은
생명의 참 모습 아닌가.
맘껏 숨 쉬며 가고 싶은데 가고, 눕고 싶은데 눕게 하라.
그런데 지극히 당연한 이것이 잘 안 되는 세상이다(히2:14-15).
* 마귀는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다.
마귀에게 붙잡힌 자 마다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비참한 신세를 면할 수 없다.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신 것은 마귀를 멸하시고
참된 자유를 주려하심이다(요8:32. 히2:14-15. 요1서 3:8).
◆ 저는 신앙의 여정 가운데 특별한 의미의 삶과 죽음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어느 교회이든 제게 간증 설교할 기회를
주시면 기꺼이 제 자신을 헌신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말숨\' 산문집 1권을 구매해 주시면 1권이 사랑의 선물로
전국 교도소에 님의 이름으로 기증됩니다.
(각권 13,000-15,000원. 전6권. 농협:301037-51-098385.
호산나교회 010-9059-4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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