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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부활의 표징들
* 즐거운 추석 명절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산천초목은 날이 다르게 새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거무스름하던 산과 들이 온통 연두색으로 변모하고 날마다 푸르름을 더해간다.
자고 나면 어느새 잎이 돋아나 있고 또 자고 나면 꽃이 피어있다.
확연히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풍경은 황홀한 신비를 느끼게 한다.
사월에 피는 꽃은 은은하면서도 화사하다.
화려한 여름 꽃보다 더 예쁘게 느끼는 것은 나만이 아닌 듯싶다.
노오란 산수유, 연분홍 진달래, 그리고 밝고 깨끗한 매화와 앵두, 복숭아, 자두, 배꽃까지 정겹기 그지없다.
마른 잎 다시 살아나는 것은 수많은 부활의 표징가운데 하나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지으실 때 ‘참 하늘’을 본 따서 만들었다.
하늘과 땅은 하늘의 그림자요 비유라고 했다.
모세가 성막을 지을 때 하나님은 하늘의 모양을 본 따서 짓도록 그 식양(式樣)을 환상으로 보여주셨다(히8:5).
그러므로 세상의 존재하는 이치나 원리는 하늘의 모형과 식양을 따라 되어 진 것이다.
아무렇게나 그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은 하늘의 비유와 그림자로서, 세상 만물에 숨겨져 있는 이치를 잘 헤아려 보면 ‘참 하늘’을 깨닫도록 오묘하게 지으신 것이다.
한마디로 천지만물 자체가 하나님의 계시이며, 은총인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서 부러워하는 온갖 아름답고 좋은 것들은 하늘의 부귀영화와 영광을 반영한 비유요 그림자에 불과한 것들이다. 세상의 비유와 그림자도 그러하다면 하늘의 실체는 가히 이를 수 없는 것이다.
요한 계시록에는 천국의 이미지를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들로 묘사하고 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영광이 있고, 그 성의 빛은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다.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다.
대문은 12 진주 대문이다. 벽옥, 남보석, 옥수, 녹보석, 비취, .... 로 되어있다.(계21:10-11, 19-23)
또한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이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는데,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다고 했다. 밤낮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그곳에는 다시는 저주가 없다(계22:1-5).
우리 인생은 나그네 인생이다.
이 세상은 최후의 종착지가 아니라 ‘더 나은 본향’을 향해 길 떠나는 한 과정일 뿐이다.
더 나은 본향(本鄕)은 참 하늘이요, 하나님이 지으시고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하나님의 나라, 즉 천국이다. 말하자면 천국은 끊임없이 생성소멸하는 한시적인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와 사랑이 다스리는 영원한 진리의 나라, 영생불사하는 ‘꿈의 나라’다.
이 세상에서 믿음을 따라 살았던 수많은 신앙의 사람들은 참 하늘에 대한 약속을 믿었고, 그 약속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사모하고 또 사모하다가 믿음을 따라 죽었다. 아직은 약속이 실현된 것이 아니다.
약속의 실현은 아직은 아니다. 멀리 있는 것이다. 다만 하나님이 저희 구원의 하나님이 되어주시기만 한다면, 다만 하나님이 저희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받아 주셔서 저희를 위하여 예비하신 천국을 기업으로 주신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는 믿음을 가지고 죽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며 찾아가는 신앙의 삶 그 자체가 부활의 표징인 것이다.
우리는 처음 만난 사람과 서로 인사를 나눌 때 “고향이 어디오?”하고 묻는다.
여기에는 뭔가 내 존재의 근원, 뿌리를 찾는 동경심이 숨겨져 있다.
동물의 세계에도 귀소본능(歸巢本能)이라는 것이 있다.
동물이 자신의 서식 장소나 산란 ·육아 등을 하던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경우, 다시 그 곳으로 되돌아오는 성질이 귀소본능이다. 해안의 바위에 붙어사는 패류의 어떤 종류는 낮에는 여기저기로 이동하나 저녁이 되면 일정한 바위 그늘로 같은 개체가 되돌아오는 것이 있다. 꿀벌이 꽃의 꿀을 따려고 날아간 다음 집을 옮기면 본래 집이 있던 곳에 떼 지어 모인다. 연어와 송어는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멀리 떨어져 성장한 후 다시 그 곳으로 되돌아오는 회귀본능을 가지고 있다. 양양 남대천에서 산란된 연어는 남태평양을 수백만 Km 여행하면서 자라나기 시작하여 보통 3~5년이 지나면 성숙하여 짝짓기가 가능해 지는데, 산란시기가 되면 반드시 자기가 출생했던 남대천으로 되돌아와서 알을 낳고 거기서 일생을 마친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연어는 자기가 출생했던 곳을 향해 그 먼 길을 찾아 나서며, 어떻게 고향으로 찾아갈 수 있는가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이론이 있지만 아직도 확실치가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진돗개가 대전에서 진도까지 자기의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아무튼 생명체들이 자신들의 기원에 대하여 본능적으로 기억을 하고 그 기원을 찾아 머나먼 여행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은 참으로 신비롭고 놀라운 사실이다. 이는 정말 경이로운 신비인데, 이 또한 부활의 표징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동물도 본향을 찾는데 인간이 ‘더 나은 본향’을 찾아 나선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지 않겠는가!
지구상에서 가장 귀소본능이 뛰어난 백성이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한다.
우리 민족은 설이나 추석 명절이 되면 으레 고향으로 돌아가서 제사를 드린다.
외국의 언론은 우리나라의 귀소본능의 발로인 귀성을 신기하게 바라본다.
우리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귀소본능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귀소본능이 또 있다.
우리의 영원한 고향인 하나님의 나라로 돌아가려는 귀소본능이 그것이다.
우리가 왔던 곳, 우리가 다시 갈 곳, 더 나은 본향인 하나님의 나라로 돌아갈 것을 소망해야 한다.
날마다 돌아가는 연습을 하는 것이 우리의 귀소본능에 충실한 삶이다.
자비하신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생의 또 다른 이름은 부활이다.
영생은 인간의 오랜 꿈이다.
영원한 생명은 예수님처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는 부활’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부활의 표징이다.
오늘도 세상은 부활의 표징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더 나은 본향을 위하여 부활을 약속하신 하나님께 할렐루야로 영광 돌려 드려야만 한다.
찬양과 영광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 오묘한 일은 영구히 하나님께 속하였고
나타난 일은 나와 내 후손에게 속함은
여호와의 율법을 경외하게 하려 함이다. (신29:29. 욥11:7)
* 하나님 아버지께 은혜 입은 자,
사랑함을 받은 자, 기뻐하심을 입은 자,
택정함을 받은 자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마17:5. 눅1:28-30)
*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죽을 때 까지 인도하시리라 (시48:14. 시27:10)
* 지존무상하시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 하시는 여호와는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신다.
그는 마음이 겸손한자 통회하는 자와 함께 거하신다.
(사57:15. 시111:9. 사3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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