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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이 엄마의 편지를 되새기며
올 2월은 내게 있어 가장 힘든 달이었다.
연로하신 나의 어머님께서 두 번이나 병원에 입원하시고서야 간신히 위기를 넘기셨고, 나의 아내는 작년 첫눈이 오던 날, 낙상 사고로 2월 내내 병원에 입원해 있었고, 나 또한 14년 만에 갑자기 심장병이 재발하여 마음 졸이다가 급히 수술을 받고 생명을 건졌으니 말이다.
벌써 병원비로 지출된 돈만 해도 거금 일천만원에 가깝고, 아내는 출근도 못한 채 병가를 내고 지금까지도 치료를 받고 있으니 생활 패턴이 엉망이다. 대체적으로 내 생에 있어 큰일은 죄다 2월에 몰려있는 것을 볼 때 아무래도 2월은 징크스가 있는 듯, 혹시 내가 세상 떠나는 날도 2월 어느 날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새해를 맞이할 때면 누구나 올해도 아무 일 없기를 바라고, 주님이 평안주시고 지켜주시기를 빌기 마련인데 한 달 남짓도 못가서 전혀 예기치 못한 일들이 설상가상으로 밀어 닥치니 사람은 정말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하늘이 정한 이치니 그 누구도 피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따지고 보면 사람은 누구나 어느 날 갑자기 하늘이 부르시면 숨이 멎어 죽는 존재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죽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세상적으로 보면 죽음은 그렇게 잔인하고 무정할 수 없다.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이 내가 받아들여야만 하고, 내가 치루지 않으면 안 될 그 어떤 대가(代價) 같은 것이다. 그런데 그 대가 치고는 너무나 값비싸고, 잔혹하고 두렵고 떨리고 슬프고 허무하기까지 하다.
다름 아닌 내가 죽어서 땅에 묻혀야 하고 썩어서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이렇게 살아있는 내가 갑자기 썩어 없어져야 하다니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죽음으로서 나 자신은 모든 것에 대해 영원한 이별이고 허무(虛無)이며 낫씽(Nothing)이라는 사실을 처절하게 확인시켜 준다.
그렇게 사랑했던 것도, 그렇게도 간직하고 싶고 영원히 함께 하고 싶었던 그 어떤 것도 다 놓아두고 나 홀로 어디론가 정처 없이 떠나가야만 한다. 나의 피붙이도 권력도 재산이나 지식도 미모도 아무 소용이 없다. 그렇게 사랑했던 부모 형제 자식 아내라 할지라도 이 세상에서는 영원히 끝이다. 아무리 애원할지라도 그 누구도 잡아둘 수 없고 황망히 홀로 세상을 등져야 한다. 이럴 수가 있는가. 절망과 한계를 절감한다. 그래서 죽음 앞에 사람은 고개 숙이고 묵묵부답(??不答)일 수밖에 없고 절규할 수밖에 없다.
1998년 안동 정상동 택지지구 개발과정에서 410년 만에 이응태(1556~1586)씨 무덤에서 미이라가 발견되었다. 육척 장신의 건장한 체격에 턱수염이 단정하고 준수한 얼굴을 가진 서른한 살 이응태는 입을 꽉 다문 채 누워 있었는데, 머리카락과 삼줄기로 정성껏 삼은 미투리(신발)와 한글로 쓰여진‘원이 엄마의 사랑편지’도 함께 발견되었다.
이 편지는 조선시대 한 여인의 애절한 사부곡으로서, 조선 판 \'사랑과 영혼\' 으로 널리 알려졌고, 모든 세계인의 심금을 울렸다.
이응태는 예쁜 아내와 귀여운 아들이 있었고 아내의 뱃속에는 또 하나의 아기를 잉태해 금슬이 좋았고 집안도 넉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건장하던 젊은이는 갑자기 병이 들었고 아내는 남편의 병을 낫게 해달라고 늘 천지신명께 기도하고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삼 줄기와 함께 엮어 남편의 신발을 삼았다. 그러나 젊은이는 그 신발을 신어보지도 못하고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다. 남편의 죽음에 아내도 함께 따라 죽고만 싶었지만 귀여운 자식이 있고 또 뱃속에 사랑하는 사람의 씨가 자라고 있어 자식들을 보며 마음을 새롭게 다잡을 수밖에 없었다.
남편을 떠나보내면서 아내는 평소 남편이 아끼던 물건들과 옷가지를 비롯해 자기가 입던 옷 중 남편이 특별히 예뻐하던 꽃무늬 비단 저고리와 치마, 그리고 남편이 애지중지 여기던 아기 저고리 하나를 챙겨 남편 가슴 위에 얹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귀여운 아기를 가슴에 안고 떠나면 비록 세상을 달리 했어도 외롭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면서....
그녀는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작은 종이 한 장을 펴고 먹을 갈고 남편과 한 이불 속에 누워 속삭이던 말들과 앞으로 살아야 할 날들을 생각하며 가로 58㎝, 세로 33㎝ 크기의 작은 한지위에 천천히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원이 아버지에게\"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 왔었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해도 나는 살수 없어요.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주세요. 꿈속에서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써서 넣어 드립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 주세요.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거지요?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 이런 슬픈 일이 하늘 아래 또 있겠습니까?\"
여기까지 쓰고 나니 종이가 모자랐다. 그녀는 종이를 옆으로 돌렸다.
종이의 머리 부분에 지금까지 쓴 글과는 서로 직각으로 엇갈리게 줄을 잡아 다시 붓을 놀리기 시작했다. 할 말은 태산 같고 종이는 모자라 앞뒤를 빼곡히 채운 후 이러 저리 돌려 가며 빈 모서리까지 깨알 같은 글씨를 채웠다.
당신은 한갓 그곳에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들 내 마음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 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주세요.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병술년(1586) 유월 초하룻날 아내가\"
나는 ‘원이 엄마의 편지’를 되새겨 읽으면서, 김소월의 ‘먼 후일’이라는 시가 문득 떠올랐다. 우리 국민들이 제일 좋아한다는 ‘진달래 꽃’을 비롯한 소월 시의 대부분은 이별, 슬픔, 서러운 한(恨)의 이미지로 보편적인 민족 정서의 형상화를 만들어 내는데 있어서 탁월한 작품들을 남겼다.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 때에 \"잊었노라\"
‘먼 후일’이라는 작품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님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간결한 시에 담아 표현한 소월의 대표적 작품 가운데 하나다.
여기 보면 계속해서 \'잊었노라\' 라는 말이 반복된다.
잊었노라, 그리다가 잊었노라,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그 순간까지 그리다가 그때에 잊었노라\'로 전개되고 있다.
\'잊었노라\'는 현재의 갈등을 그대로 표출한 것이다.
서러움과 원망이 극에 달하면 도리어 자신으로부터 님을 소외시키지만, 내심으로는 사랑이 복구되기를 갈망하는 것이다.
사무치는 그리움 때문에 잊을 수 없는 님 이라면, 먼 훗날 그를 잊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먼 후일\'의 결말은 이렇듯 님을 잊겠다는 진술로 시종일관하고 있다. 이것은 표면에서 이루어진 말의 뜻이 말하고 있는 사람의 의도와는 전혀 반대되는 경우다.
\'잊었노라\'는 결국 내적인 면에서 \'잊지 못하노라\'의 역설적 표현이다.
‘잊었노라’는 \'잊었다\'는 사실의 확인이 아니라 오히려 그럴 수 없다는 생각의 강조다.
\'먼 후일(後日)\'은 아직 오지 않은 날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먼 후일은 과연 기약될 수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오직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시는 하나님만이 쥐고 계신다.
만일 하나님께서 예비해 두신 천국이 없다면 사람은 허무를 극복할 방법이 없고 아예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낼 때마다, 아니 내가 훌쩍 떠나고야 말 그 때를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 앞에 항복하고 하나님을 소망할 수밖에 없다.
어느 목사님이 은퇴 시기가 남아 있는데도 은퇴를 하셨다고 한다.
그 분은 네팔로 선교를 떠나신다고 한다. 거기에는 아픈 사연이 있다.그 분의 아드님이 몇 년 전 네팔로 단기 선교 떠났다가 네팔 현지 교회의 전기선을 고쳐주다가 감전되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27살 청년의 때에 선교하다가 순교한 것이다. 그런데 그 아버지 되는 목사님이 아들이 묻힌 그 곳에서 선교하시겠다고 떠나셨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목적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내게 말숨 산문집 제7권 출판헌금을 보내주신 어떤 사모님은 하늘나라를 다음과 같은 것이라고 쓰셨다.
【어느 날 순이가 밖에 나가 놀고 와서 마루턱에서 잠이 들었다.
아침에 깨어 보니 안방에서 콜콜 자고 있었다.
분명히 마루에서 잠이 들었는데...
“엄마! 어떻게 내가 여기에 왔어?”
“네가 자고 있는 동안 엄마가 안고 방으로 데리고 왔지”
그렇다. 잠깐 세상에서 잠이 든 동안 하나님은 우리 영혼을 하늘나라로 데리고 가시는 거다.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 할 것이 없다.
주님을 믿는 자는 눈물도 없고 고통도 없는 천국에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
죽음이란 죄에 허물진 육의 몸이 죽고, 하나님의 신령한 영의 몸을 입고 천국에 입성하는 통과제의(通過祭儀)같은 것임을 하나님의 진리로 알 때만이 우리는 죽음에 대해 진실로 위로와 살아갈 힘을 얻고, 담대한 영혼의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 수없이 많은 삶에 다른 이들의 삶처럼 나는 살지 않았다.
수없이 많은 죽음에 다른 이들의 죽음처럼 나는 죽지 않았다.
나는 나의 모든 것을 영원한 삶에 걸었다(마25:46).
* 주님의 부드러운 손으로 우리를 반듯하게 만들고
망치로 두드려서 모든 종류의 교만과
자기애와 세속성과 부정을 없애주소서.
그리하여 우리를 아버지 집의 돌과 기둥으로 만드소서(히12:11).
*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 분은 우리를 가르치실 것이다.
그 훈련은 다양한 형태로 이뤄지고 고통이 수반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를 향한 그 분의 의지를 이루는 것이며
그 분의 의지대로 순응하기 시작하는 것이다(갈4:19).
* 개개인의 영혼들은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우리가 죄로 인해 망가지고 불순종으로 더러워졌지만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창조자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고
그 분의 모습을 나타낸다(시139:14).
* 아름다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느낄 수 있다.
아름다움은 진리와 정의처럼 우리 안에 거하며
미덕과 규범처럼 영혼의 동반자이다(시96:6).
◆ 저는 신앙의 여정 가운데 특별한 의미의 삶과 죽음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어느 교회이든 제게 간증 설교할 기회를
주시면 기꺼이 제 자신을 헌신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말숨\' 산문집 1권을 구매해 주시면 1권이 사랑의 선물로
전국 교도소에 님의 이름으로 기증됩니다.
(각권 13,000-15,000원. 전6권. 농협:301037-51-098385.
호산나교회 010-9059-4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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