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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심장 협심증을 은혜로 수술 받게 하시다.
나는 개척교회를 시작하였다가 사람 잘못 만나 돈도 잃어버리고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건강도 잃어버리는 매우 어려운 시련의 때를 만난 적이 있다.
혈관이 막혀 갑자기 돌연사(突然死) 하기도 하는 심장협심증은 과도한 스트레스와 흡연이 주된 발병 원인인데, 이 무서운 질병으로 나는 몇 번이나 죽음의 문턱을 경험해야 했다. 무거운 것을 들거나 비탈길을 오르면 가슴이 갈라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가슴이 아프다!’는 말을 예전에는 ‘마음이 아프다’는 것으로만 이해를 했었다. 심각한 가슴의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을 보고는 그게 어떻게 아프다는 것인지 몰라 궁금했었는데 그것이 정작 나의 문제가 되었다.
세브란스 병원의 진단 결과는 시급히 수술하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수술비용은 기본이 일천 만원이고 상태에 따라서 삼, 사천 만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비장한 결심을 했다. 병은 하나님도 고치시니 내게 사명(使命)이 있다면 하나님이 고쳐 쓰실 것이고, 내게 사명이 더 이상 없다면 깨끗이 죽자.... 는 것이었다. 처방해온 약을 모두 버렸다. 배수의 진을 쳐야만 혼란스러운 마음을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수술 문제를 갖고 아내와 몇 번 다투었다. 잃어버린 돈 때문에 지금 빚도 많이 졌는데 나 하나 살자고 병원에 갖다 줄 돈은 더 이상 없다고 맞섰다. 특별하게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사실 더 이상 살고 싶은 마음이 없을 정도로 내 모습이 비참하게 느껴졌다.
교회 예배드릴 처소를 잃어버린 나는 아파트 사택에서 일 년 4개월 동안 예배를 드렸다. 얼마 안 되는 교인들이었지만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새벽예배는 아파트에서 드리기가 불편해서 차를 몰고 10여분 떨어진 공릉 입구 넓은 주차장 한 구석에 차를 세워놓고, 차 안에서 설교하고 기도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은 천장을 두드리는 요란한 빗소리와 함께 ‘내게도 성전을 주소서!’ 하고 부르짖었다. 지금도 번개 치며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면 그 암담한 시절이 자동적으로 떠오른다.
그런데 병은 좋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나빠져 갔다. 육체는 물론이거니와 기분이 조금만 얹잖아도 심장은 민감하게 반응을 했다.
심장(心腸)이라는 글자를 만들 때 마음 심(心)을 사용한 이유를 확실히 알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에도 전혀 모르는 어떤 분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염 목사님 댁 맞지요? 고향 친구 집에 갔다가 목사님의 딱한 얘기를 얼핏 들어서 알게 된 엄 집사입니다. (엄 집사님의 고향 친구는 과거에 나의 아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믿음 좋은 학부모였다.).
제가 집에 와서 목사님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하는데 목사님 문제가 좀처럼 마음속에서 지워지지가 않습니다. 목사님을 도우라는 성령님의 감동이 와서 고향친구에게 전화번호를 알아 가지고 이렇게 저의 뜻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수술비용이 얼마가 들던 제가 해결할 터이니 아무 염려 마시고 빨리 수술 받으시고 건강 회복하여 하나님 일 많이 하십시오.” 하며 울먹이는 것이었다.
나는 한번 만나 뵙자고 제안했고 그 분의 고향 친구 집에서 아내와 함께 그분을 만났다. “병은 하나님도 고치시는 분이시고, 저는 하나님께 맡기고 수술은 받지 않습니다. 제게 정작 필요한 것은 잃어버린 교회 전세 자금이오니 얼마가 되었든 마음에 품으신 돈을 주시면 다시 한 번 목회를 해보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그분은 울먹이며 말했다.
“제가 하나님께 응답받은 것은 목사님께 수술비용을 드리라는 것이지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우리 서로 기도해 봅시다. 언제든 마음이 바뀌면 연락주시고 속히 수술 받으십시오.”
집에 돌아 온 아내는 나를 많이 나무랐다. 기도하고 헌신하는 집사님의 도움을 은혜로 받고 축복기도해 주면 되는데 그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나의 말은 한결 같았다.
“사명이 있는 자는 죽지 않아.
내게 더 이상 사명이 없다면 죽고 말지 왜 살아?”
우리가 헤어진 후 두 세 번 더 전화가 걸려왔다.
“나의 오빠는 교회도 지은 장로님이셨는데 심장이 나빠서 몇 년 전 세브란스 병원에서 수술 대기하다가 수술 기회를 놓친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목사님도 더 미루시다가는 큰 일 날 수 있습니다. 이제 그만 고집 버리시고 수술 받으십시오.” 라고 말하시면서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나의 자존심은 허락치를 않았다.
서로 연락이 끊긴지 몇 개월이 흘렀다. 투병생활 만 1년 되는 1999년 2월, 며칠 전부터 시작된 가슴 통증이 끊이질 않았다.
구정 설 쇠러 춘천에 갔다가 아침 먹고 나자 더 이상 통증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는 항복하고 말았다. 나는 세브란스로 급히 옮겨 달라고 요청했고, 병원 측의 특별 배려로 중환자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입원 4시간 만에 아내 앞에서 저녁을 먹는 도중에 입에 밥을 한 숟갈 물은 채로 의식을 잃고 앞으로 꼬꾸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다행히 중환자실에 있었기 때문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만일 그 자리가 아니었다면 생명을 잃었을 것이라고 의사 선생님은 말했다. 서둘러 수술을 받았다.
소식을 듣고 엄 집사님께서 문병을 오셨다. 정성스럽게 쓴 친필 격려 편지와 고급 떡과 일금 1천만 원 수표를 주셨다. 엄 집사님 가정은 누구처럼 아주 잘 사는 집이 아니다. 엄 집사님의 고향 친구 말에 의하면 그분은 그 당시에 집도 전세로 살고 계셨고,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도 최대한 근검절약하며 사치할 줄 모르는 검소한 분이라는 것이다.
그분은 내게 당부했다. 절대로 자기 이름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아 달라고. 이 땅에서 상을 다 받아 버리면 하늘 상급이 없어진다고......
퇴원한 후에 우리 부부는 서울 일원동에 사시는 그분 집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다. 남편 되시는 서 집사님은 자기가 가장 좋아 한다는 로마서 8장 28절을 말씀하시면서 위로해 주셨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하나님은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엄 집사님은 우리가 춘천으로 이사 와서, 나의 큰 아들이 중학교를 입학할 때도 어떻게 알고 교복 값 일체를 보내 오셨다.
몇 개월이 지난 후에 나는 마음을 비우고 춘천 고향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마침 목회가 실패해서 폐 교회 수순을 밟고 있던 교회가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사명교회’ 라는 이름이었다. 투병생활하면서 ‘사명이 있는 자는 죽지 않는다.’ 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곤 했는데, 우연치 않게도 내가 소개받은 교회가 사명교회였던 것이다. 나는 두 말 않고 “사명 교회는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장막 터이니 나를 보내 주십시오.” 라고 말했다. 오늘날 그림처럼 소박하고 아름다운 전원교회를 건축하고, ‘호산나교회’라 이름 지었지만 그 뿌리는 사명교회다. 작은 지하실에서 1층 13평으로, 또다시 3층으로 교회를 옮기면서 우여곡절 끝에 오늘에 이른 것이다. 차 지붕이 부서지기라도 하는 듯한 요란한 빗소리를 들으며 내게도 성전을 달라고 기도했지만 사실은 그렇게 기도하면서도 전혀 믿겨지지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과 이루시고자 뜻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는 오늘날 내게 분에 넘치는 은혜를 주셨다. 상처를 싸매시고 상심한 자를 일으키시는 하나님께서 내게 건강도 주셨고, 잃어버린 물질도 모두 채워주셨다.
‘주께서 상처를 싸매시고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칠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아지리라.‘(사30:26 시147:1-3)는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말씀이 되었다.
그리고 더욱 감사한 것은 그때의 뼈아픈 고난의 경험이 내게 유익이 되어 마침내 이 책의 제목이 되어준 것이다.
‘사명이 있는 자는 죽지 않는다!’ 라고.
*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시103:3-5).
* 하나님은 만물을 복종케 하는 권능이 있다.
부활 때에는 비천한 몸을
영광의 몸의 형체처럼 변화시킨다(빌3:21; 고전 15:42-54).
* 그가 사는 날에 하나님을 구하였고
저가 여호와를 구할 동안에는
하나님이 저를 형통하게 하셨다
(대하 26:5, 24:20-21; 대하 13:12; 왕하 18:7; 잠 28:13).
* 내가 삶의 혹독한 시련을 맞아
죽음 앞에 직면했을 때
하나님이 나를 특별히 만져 주셨다는 것을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난다(마 9:20, 17:15-18).
* 주님과의 친밀한 사귐은
평소의 일상생활 가운데 마음과 생각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있어야 한다.
(민12:7-8.느9:8.시101:6마2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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