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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부 성령님이 쓰시는 사명자들: 기이한 성령님의 역사(3)
어느 누가 내게 묻기를, 가장 소원하는 일이 무엇이냐 한다면 나는 서슴없이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나의 삶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되기를 ....”
너무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대답 아니냐고 따질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렇다. 함축적인 표현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다면 그것은 인간이 바랄 수 있는 최상의 것이다.
하늘 뜻이 이루어지는 것, 죽을 병든 자가 고침 받는 것,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세력이 패배하는 것....
이 모두가 하나님 영광의 단편적인 조각들인 것이다.
목사인 내게 복권이라도 당첨되어 돈이 생긴다거나 어떤 권력이 주어진다거나 출세한다거나 하는 일들은 그렇게 큰 감동을 주지는 못할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특별히 느낀다거나 하나님께 귀히 쓰임을 받는다거나 하면 말할 수 없는 감동과 존재의 가치를 느끼고 행복감을 맛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다보면 예수님을 비롯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강렬하게 경험하고, 하나님의 오심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삶의 현장에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고,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서 인간을 참으로 자유케 하고, 하늘의 생명으로 구원하는 모습들을 볼 때 “나도 저렇게 하나님께 쓰임 받고 일할 수 있다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따라서 지금도 하나님께서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부어 주시면 가는 곳마다 착한 일을 행하고 마귀에게 눌린 자들을 고쳐주는 ‘은혜의 해’가 선포될 수 있다(행10:38).
오늘도 하나님의 뜻이 있어 성령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신다면
손을 내밀어 어떤 병이든지 낫게 하시고 표적(標的)과 기사(奇事)가 거룩한 종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진다(행4:30).
베드로는 중풍 병으로 8년 동안을 침상 위에 누워 고통하는 ‘애니아’에게 말씀으로 명령하기를 “예수가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자리를 정돈하라”하니 곧 일어났다. 뿐만 아니라 욥바에 ‘다비다’라는 여 제자가 병들어 죽었을 때다. 평소에 선행과 구제가 심히 많던 그녀가 죽자 사람들은 매우 애석하게 여겼다. 하나님은 베드로의 기도를 특별히 기뻐하시고 그를 통하여 많은 은혜의 역사를 일으킨다는 소문이 들리자, 하나님의 사람 베드로가 여기 와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구한다면 혹시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살려 주실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급히 베드로를 오게 하여 기도를 부탁했다.
사실 이미 죽은 자를 앞에 놓고 살려 달라고 기도를 부탁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당신은 정말 그런 기도를 부탁할 용기와 믿음이 있는지 되 물어 보시기 바란다.
나는 죽은 자의 시신을 씻어 관에 안치하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다.
죽은 자는 이미 피부 색깔이 변하고, 뼈가 굳어 강제로 꺾어야 할 때도 있다.
한마디로 이미 생명이 떠난 것이다. 생명이 떠났으니 사람의 영역은 이미 끝난 것이다.
죽으면 즉시 부패가 시작되기 때문에 방법이 없다. 아무리 사랑하던 사람도 갖다 묻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시신을 앞에 두고 살아나기를 기대하고 기도해 달라고 부탁한다?
나는 부끄럽지만 아직도 그런 기도를 부탁할 믿음이 없는 것 같다.
어찌 되었든 이미 죽은 사람은 하나님의 때가 되어서 죽은 것이 분명한데 이 엄숙한 죽음을 다시 되돌릴
그 무슨 절박한 명분(名分)이라도 있는가?.... 이런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이다.
하나님께 맡길 뿐 다른 어떤 것을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뜻에 역행(逆行)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마저도
드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죽은 자를 다시 살려달라고 기도할 자신이 없다.
그런데 성경에는 용감한 믿음의 사람들이 있다.
‘다비다’는 아직 더 살아서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할 아까운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자비를 원하오니 특별히 살려주십시오! 하고 간청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이때 베드로는 사람들을 밖으로 모두 내 보내고 경건하게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시체를 향하여 외쳤다.
“다비다야 일어나라!”
그 순간 죽었던 다비다가 눈을 떠서 베드로를 바라보고 일어나 앉았고, 욥바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이 놀라운 사건을 목격했다. 죽었던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는'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役事)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다(행9:32-43).
성경 말씀의 이 기록은 그 어떤 상징(象徵)이나 비유(比喩)가 아니다.
준엄한 역사의 한 페이지 안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위대한 사건(事件)이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 이외에 그 어떤 다른 데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일이다.
예수의 천국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항상 고통에 걸린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환자, 중풍병자, 모든 각색 병든 자, 모든 약한 것들을 고치는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나타났고 이를 통해 복음이 힘 있게 전파되었다(마4:23).
병든 자를 고치고 더러운 영, 귀신에게 눌려있는 사람을 풀어 자유하게 하는 일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왔다는 구원의 표징(表徵)으로 이해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인간의 절실한 필요에 하나님의 은혜가 도래(到來)함으로서 하나님을 극적으로 만나는 구원의 경험이 되기에 흡족한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 삶의 전 영역에 있어서 기사와 표적으로 오시고, 세상 끝 날까지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인도하신다는 증거로 성령의 나타나심을 베푸시는 것이다(마28:20).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 삶 속에서 성령으로 일하시고 계신다.
애은 염학섭 목사님이 체험한 생생한 삶의 증언 한 토막을 소개한다.
【내가 성령이 충만하여 불붙는 신앙으로 순회 전도사로 일하던 30살 때의 일이었다.
풍산군 안수면 중흥동이라는 작은 마을에 들려 호별전도 하던 중, 어떤 가정에서 일어난 일이다.
쇠사슬에 손이 묶여있는 27세쯤 되는 젊은이를 둘러싸고 박수무당 3명이 경을 읽으며 굿을 하고 있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젊은이의 이름은 전형남이었는데, 아무리 좋은 약을 써도 낫지 않는 병을 8년째 앓고 있어서 마지막으로 박수무당을 불러 굿이나 해본다고 그의 아버지가 설명했다. 그 병의 증상이 매우 기이했다. 몸의 어디가 아프다거나 거동이 불편한 것이 아니라 멀쩡한 몸으로 돌아다니면서 춤을 추고 마을의 우물에 대소변을 보고 남의 집에 돌을 던지는 등의 해괴한 행동을 했던 것이다.
나는 그의 부친에게 “이런 중병은 무당이나 박수의 힘으로는 고칠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영육간의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늙은 부친은 아들의 영혼이 지금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기뻐하면서 7-8명의 식구들 모두가 다 예수를 믿겠다고 하며 곧 경을 읽고 굿을 하던 박수무당을 쫓아 버렸다.
나는 사슬에 묶인 환자를 다른 방으로 옮기게 한 후 일주일 동안 아무도 출입하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그날부터 전형남 군을 위한 금식기도를 했다.
그러나 하루 이틀 날이 갈수록 병세는 더 심해졌다.
일주일째 되는 날 아침 나는 마당의 도끼를 집어 오른 손 장지 끝을 잘랐다.
그리고 흐르는 피를 환자의 머리에 떨어뜨리면서 기도했다.
“하나님. 이것은 어린 전형남 군을 위한 나의 미약한 정성일 뿐입니다.
그러나 주께서 흘리신 보혈은 영,육 간에 죽어가는 이 어린 아들을 소생시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다는 이곳 중흥동에 당신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저를 지켜보고 있는 수많은 마을 사람들에게 이 일을 통하여 당신의 복음이 전해질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때였다. 정신없이 쓰러져 있던 전형남 군이 갑자기 말했다.
“선생님, 그 손의 피가 웬일입니까 ? 어서 피를 멈추게 하십시오”
일주일 동안 내 기도소리뿐이었던 환자의 방에서 갑자기 주고받는 이야기 소리가 들리자 놀란 환자의 부모가 뛰어 들어 왔다. 손가락에서 흘린 피로 내 의복과 방바닥은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전군의 부모는 자기 아들이 묶인 쇠사슬을 끊고 내게 행패를 부려 피를 흘리게 한 줄 알고 대경실색하였다.
이때 전군이 부모에게 사유를 말했다. 그는 내가 손가락을 끊고 피를 흘리며 드리는 기도소리를 듣고 있었던 것이다.
자초지종을 들은 전군의 부모는 기쁨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나는 도끼로 잘라 떨어진 손가락을 기름과 된장을 이겨서 다시 붙이고 싸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깨끗하게 나았다.
전형남 군은 완전히 병세가 가시고 정신도 맑아졌다.
그는 오랜만에 목욕과 이발을 하고 깨끗한 의복으로 갈아입었다.
다음 날은 마침 주일이었다.
전형남 군을 비롯한 온 식구 10여 명이 줄지어 10여리 떨어진 풍산군 안수면 장평교회 주일 예배에 참석했다.
8년이나 된 미치광이 청년이 기도로 고침 받아 온 식구와 함께 깨끗한 몸으로 교회에 간다는 소문이 퍼지자 수십 명의 마을 사람들이 구경을 나왔다. 하나님을 부인하던 마을에 마침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 것이다.
그날 이 일을 보고 믿기로 작정한 마을 사람들이 1백 여 명이나 되었다.
그 뒤 전형남 군은 건강한 몸으로 마을의 성실한 일꾼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칭송받는 모범적인 기독 청년이 되었다.
애은(愛恩) 염학섭 목사 수상집: 은총의 회고에서.】
인간 영혼을 사랑하되 자신의 장지 손가락을 도끼로 잘라 하나님 앞에서 결연한 의지를 나타내며 기도한다는 것!
피로서 자신의 순결무구한 소원을 아뢰는 모습은 비장할 정도로 섬뜩하지만 무엇인가를 감동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이런 기도의 사람을 오늘날은 좀처럼 볼 수 없다.
대통령이 다니셨다는 소망교회의 추태는 너무나도 대조적이지 않은가.
담임목사와 부목사, 장로들 간의 이권, 이해관계를 둘러싼 난투극이라니....
‘믿음, 소망, 사랑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주먹 이니라’고 비아냥대는 소리가 하늘을 찌른다.
한 영혼을 위하여 금식을 일주일이나 하고, 기도가 하늘에 상달되는 것 같지 않자 자신의 장지 손가락을 도끼로 잘라가면서 피로서 전력투구 기도하는 주의 종이 그립다. 아무런 사심(私心)없이 천국 복음만을 전파하는 주의 종. 세상지식에 오염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 말씀을 하나님으로 섬겼던 단순하기 그지없는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거룩한 일에 목숨 걸고, 하나님만을 기업으로 아는 하나님의 종.
세상에는 아무것도 남긴 것 없이 모든 것을 다 주고, 마지막에는 자기 생명까지 순교의 제물로 주셨던 하나님의 종들이 그때 그 시절에는 심심찮게 있었던 것 같다.
이런 하나님의 종들이 있었기에 신령하신 성령님의 기이한 역사가 나타나셨고, 오늘의 한국 기독교회가 될 수 있었다.
때 묻지 않은 순전한 하나님의 종이 그리운 시대다.
하나님의 심정으로 가득한 성령의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해 본다.
*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우고
지켜 행하지 않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울 수 없다
(레위기18:3-5신26:16왕상11:38.16:31).
*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노래로 지어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치고
그 입으로 부르게 하여 증거가 되게 하였다(신31:19-22).
* 이방신들을 음란을 좇아
모든 악행으로 하나님을 버리고
그와 맺은 언약을 어기면
그때에 하나님은 반드시 얼굴을 숨기신다(신31:18).
*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
너를 버리지 않고 떠나지 않으리라(수1:5-9).
* 하늘이여 귀를 기울이고
땅이여 여호와의 입의 말을 들으라.
그의 교훈은 내리는 비요
그의 말은 맺히는 이슬,
연한 풀 위에 단비로다(신32:1).
* 여호와께서 우리를 광야에서 만나실 때
마치 독수리가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업는 것 같이
보호하시고 눈동자같이 지키셨다(신32: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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