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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숨 자활센터 설립을 축복해 주소서 사랑하는 님께. 아래의 글을 헤아려 주시고 기도해주시기 원합니다. 부디 말숨 자활센터의 회원(혹은 회원교회)이 되어주셔서 사회복음화의 지평을 넓히는데 밑거름이 되어주소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너’가 살고 ‘나’도 사는 하늘의 복이 되어 주소서. 감사합니다. 말숨 자활센터 염동권 목사 올림.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을 만큼 사소한 어떤 일이 계기가 되어 누구도 예상치 못한 어떤 큰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진심으로 상대방 입장에 서 보려는 따뜻한 마음 한 조각 혹은 격려의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삶을 바꾸어 놓는 결정적 계기가 되기도 한다. 나의 대학시절에 철학을 가르치신 분은 ‘학생교수’였던 신 인현 교수님이셨다. 그분은 원래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시다가 숭실대학교에서 철학을 강의하셨는데 미국 P.S.C.E 에서 기독교 교육학도 공부하신 박학다식(博學多識)한 분이셨다. 그는 나이가 지긋한 중년의 장로님이 되었을 때 또 다시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장신대에 학생으로 오셨는데 같은 캠퍼스에서 대학 초년생인 학부생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학생교수라고 불렸다.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 그분이 가르쳤던 지식 같은 것은 다 잊어 버렸지만 딱 한 가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그의 생활철학의 일면인데, 칠판에 역지사지(易地思之)라고 크게 쓰고 나서 자기는 어느 누구에게 편지를 받으면 즉시 답장을 꼭 하려고 노력한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중요한 사람뿐만 아니라 하찮아 보이는 사람에게도 편지를 받으면 꼭 답장을 한다고 한다. 누군가가 자기에게 편지를 쓸 때면 그 사람의 마음과 인격이 담겨있는데 자기가 받고도 무관심한다거나 모른 척 한다면 사람의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분은 ‘나와 너’의 관계는 살아있는 인격적인 관계라는 것을 편지 답장에서도 찾았던 것이다. 그리고 즉시 답장을 쓰려는 이유는 조금 있다 나중에 쓰겠다고 생각하면 그만 잊어버리고 놓쳐버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은사님 가르침에 은연중 영향을 받아서 인지는 몰라도 나 또한 어느 누군가에게 편지나 문자를 받으면 꼭 답신을 하려고 힘쓰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산골짝 비탈에 계단식으로 만들어진 논, 밭이 지금도 많다. 지형 자체가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이다. 게딱지만한 계단이라도 알뜰살뜰 일구어 농사짓고 살아온 우리 가난했던 조상들의 노고가 눈물겹게 느껴진다. 윗 논에 물을 가득 채우고 나면 아랫 논으로 차례차례 흘려보내서 모두가 함께 농사지으며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윗 논 주인이 내 땅에 물 댔으니 남의 땅은 알바 아니라면서 논물을 막아 버린다면 큰 분쟁이 일어날 것이다. 입장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라는 역지사지(易地思之)는 여기서 유래된 말이다. 내가 알고 있는 어느 존경하는 목사님은 백 권도 넘는 책을 쓰셨는데 오늘의 자기가 된 것은 초등학교 다닐 때 어느 담임선생님의 따뜻한 격려 한마디가 일평생 자긍심(自矜心)을 불러일으킨 결과물이라고 했다. 작문시간이었는데 자기가 쓴 글을 선생님이 읽으신 후 급우들 앞에서 “참 잘 쓴 글!” 이라면서 칭찬해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는데, 이 말한 마디가 일평생을 가슴속에서 살아 숨 쉬면서 내적 투지를 불태웠고 마침내 그의 의식구조가 되었던 것이다. 그 사람의 의식구조가 그 사람을 결정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 목사님의 경우가 바로 좋은 예가 아닐까 한다. 교회에서 선포되는 하나님 말씀의 핵심은 결국 ‘서로 사랑하며 살자!’는데 그 초점이 모아진다.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사랑할 것이냐? 에 있다. 골로새 성도들에게 보낸 바울의 편지에 보면 다음과 같이 권면하고 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3:12-14). 여기서 12절을 새 번역 성경은 ‘그러니 따뜻한 동정심과 친절한 마음과 겸손과 온유와 인내로 마음을 새롭게 하여’ 라고 번역했다. ‘너’를 대물관계(對物關係)인 ‘그것’(It)으로가 아니라 살아있는 인격체인 ‘너’로 받아들이고 긍정하며 대접하려면 먼저 마음이 친절하고 따뜻해야 한다. 역지사지의 교훈처럼 상대방 입장에 서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 자신을 낮추는 겸손과 온유한 마음, 오래 참아주고 서로 용납하고 용서해주려는 마음이 먼저 준비되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따뜻하고 친절한 마음이 있어야 따뜻한 말도 나오는 법이다. ‘따뜻한 말은 생명의 나무가 되고 가시 돋친 말은 마음을 상하게 한다’(잠15:4)고 했다. 언젠가 이 주연 목사님(산마루 서신)께서 ‘전화번호만 쓰인 편지’라는 글을 보내주셨다. 이 글을 나는 처음에는 무심코 읽다가 나중에는 몇 번이고 되새기며 읽어 보았다. 깊은 감동을 주는 말씀이었다. 『 2007년 10월 어느 밤, 휴대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혹시 전화번호가 010-2372-0000 맞나요? "네, 왜 그러시죠?" "저는 대전에서 일하는 우체부 입니다. 따님인지 아드님인지 엄마를 그리워하는 편지를 보냈는데요, 주소 대신 전화번호가 적혀 있어서요. 내용을 보니 꼭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아,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찾으러 갈께요." 전화를 끊고 한참 울었다. 여섯 살밖에 안 된 딸이 못난 엄마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다. 편지 쓰는 방법도 잘 모를 텐데...... . 나는 결혼 생활의 실패자였다. 남편, 시댁과의 갈등을 견딜 수 없어 딸을 남겨두고 떠난 나쁜 엄마였다. 그런데 자식이 부부 사이를 이어 주는 끈이라는 말이 맞는 듯, 그 편지 덕분에 우리 부부는 살림을 합쳐 행복하게 산다. 전화번호만 쓰인 편지를 버리지 않고 애써 연락해 준 우체부 아저씨의 배려와 따뜻한 마음에 깊이 감사한다.」 ‘우체부 아저씨가 전해준 그 편지 덕분에 우리 부부는 살림을 합쳐 행복하게 산다..... ’는 이 고백은 목이 메게 한다. 만일 우체부 아저씨의 특별한 배려와 따뜻한 마음이 없었다면 그 딸아이와 엄마 그리고 아빠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를 되물어 본다. 지금 세상은 무법천지가 되어 점점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따뜻한 사랑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마24:12) 나는 알고 있는 분들 뿐만 아니라 많은 익명의 독자들에게도 이메일 서신을 많이 보낸다. 하나님을 나타내려는 목적으로 많은 공을 들여 지극 정성으로 쓰여진 글이기 때문에 마음이 열려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함께 하나님 은혜를 공유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글을 보낼 때 마다 이 글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소명의식(召命意識)으로 글을 보낸다. 무언가 서로서로에게 영적유익이 있기를 기도하면서 축복하는 심정으로 글을 보낸다. 얼마 전 말숨 글을 읽은 박정도 은퇴 목사님께서 귀한 책 헌금을 보내오셨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깊은 천국 사귐이 이어지게 되었는데, 목사님께서 은퇴하시기까지 마음에 품고 평생 목회의 좌우명으로 존경하신다는 고(故) 안병모 목사님과 그의 제자 강병률 목사님을 소개해 주셨다. 강 목사님 역시 안병모 목사님의 가르침을 받고 그 귀한 뜻을 받들어 요한복음 강해서를 출판하시고 원하는 목회자에게는 누구에게나 기증하신다. 박정도 목사님의 소개로 내게도 귀한 책을 보내오셨는데 책뿐만 아니라 말숨 산문집 출판 헌금까지 보내오셨다.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즉시 답신 메일을 올렸다. 「감사하신 강성률 목사님께. 오늘 목사님께 큰 사랑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저의 마음을 헤아려 주시고 귀한 뜻을 주셔서 너무도 힘이 되고 격려가 됩니다. 뵙고 싶사옵고 말씀도 듣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목사님께 항상 함께 하시어 하나님 친히 목사님 하시는 사역위에 나타나 주시옵기를 기도합니다.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이어서 일전에 써둔 ‘말숨 자활센터’ 설립 취지문을 일부 수정하여 말숨 독자분들께도 알리고 귀한 마음과 뜻을 아래와 같이 구하게 되었다. 「안녕하십니까. 말숨 산문집을 쓴 ‘말숨 자활 센터’대표 염동권 목사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로 쓰여진 말숨 산문집(전7권)이 우리 사회 각계 각처(전국 교도소, 군, 경찰, 학원, 병원 등)에 보급되어 하나님의 이름이 전파되고 기념되기를 소원합니다. 말숨 글을 통하여 은혜 받고 변화된 만기출소 재소자들과 사명감을 가지신 은혜 받은 구직자(求職者)들이 중심이 되어 ‘말숨 자활 센터’가 설립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말숨 글을 받으시는 분은 꼭 읽어주시고, 받으신바 은혜에 따라 비록 적을지라도 출판 헌금에 참여해 주시면 지속적으로 출판하여 님의 이름으로 교회와 사회에 널리 보급하겠습니다. 말숨 글을 읽으시는 분께서 말숨 산문집 한권만 구매해주셔도 말숨 자활센터에 실질적인 뜻과 힘을 주시는 것과 같고, 한걸음 더 나아가 매월 한권씩만 구매해주신다면 말숨 자활센터의 명예로운 회원이 되어 사회복음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기쁨과 영광이 될 것입니다. 더욱이 말숨 자활센터 후원교회가 되어주신다면 더없이 큰 힘과 격려가 될 것입니다. 제가 건강이 안 좋아 마지막 유고집이 될지도 모른다는 심정으로 글을 쓰면서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혜로 건강이 많이 회복되었기 때문에 특히 제 7권 ‘그대 안해(安偕), 나의 어여쁜 신부여’는 특별한 애착이 가는 책이라 널리 읽혀져서 천국복음이 전파되기를 소원합니다. 이 책에 실려 있는 글 가운데 ‘나의 특이한 병상체험’과 ‘하늘경영 원리와 사회적 기업’이라는 글은 하나님의 현존(現存)과 책임 있는 신앙의 삶이란 무엇인가? 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함께 살아가는 우리 이웃을 위한 뜻있는 일에 거룩한 참여를 원합니다. 이메일 주소를 보내주시면 말숨 글 보내드립니다.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혜로 매일매일 건승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말숨 자활센터 염동권 목사 올림. (H.P 010-9059-4037 / 농협:301037-51-098385. 말숨문서선교회: sdm.acts21.net (malsum-sdm.com은 조만간 sdm.acts21.net로 변경될 예정임) 말숨 자활센터 설립을 축복해 주시고 기도해 주소서! 성경에는 축복한다는 말이 700번 이상 기록되어 있다. 히브리어의 ‘축복하다’라는 말은 '칭찬하다, 격려하다'라는 뜻도 포함된다. 특히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말은 하나님의 힘과 은총을 전달할 수 있다. 그러면 언제 '축복' 해야 할까? '지금'이다. 지금 축복하는 것이 가장 좋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을 축복합니다. 축복합니다. 한번 더 축복합니다. ‘여호와는 여러분에게 복을 주시고, 여러분을 지켜주실 것이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여러분에게 비취시어 큰 은혜 베푸실 것입니다. 여호와는 그 얼굴을 여러분에게로 향하여 드시고 평강을 주실 것입니다.(민6:24-26) ’ ‘여호와는 여러분을 지키시는 분이시다. 여러분의 우편에서 그늘이 되어주시니 낮의 해가 여러분을 상하게 하지 못할 것이며, 밤의 달도 여러분을 해치지 못할 것이다. 여호와께서 여러분을 지켜 모든 환란을 당하지 않게 하시며, 오고 가는 모든 걸음을 지켜주실 것이다.’(시121:5-8).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 진심으로! 그런데 이 축복의 편지에 대한 반응은 실로 다양하고 천차만별이다. 무관심속에 읽지도 않은 채 버려지는 경우도 많고 비웃음과 욕설로 거부되기도 한다. 반면에 따뜻한 관심과 사랑 그리고 감사의 답신을 주시고, 어떤 분은 감사의 헌금까지도 보내주시는 분들이 있다. 그럴 때면 스스로 감격하며 “더 좋은 글을 써서 보답해야지...” 하면서 자신을 격려하기도 한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자신을 표현하는데 일본인이나 서구인들에 비해서 너무 인색하다고 한다. 감사하다는 인사 한마디가 그렇게 힘들고, 칭찬하고 격려하는 말은 더더욱 어려워한다. 편지 쓰는 사람은 답장 받을 때 가장 큰 기쁨을 느끼는데 그 마음 하나 읽어주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이다. 오늘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할 것인가? 지극히 하찮아 보이고 작은 것 같아 보이는 그 따뜻한 마음씀씀이 하나가 누군가의 운명을 바꾸어놓을 수도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사랑은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입 안에 있고, 내 입술이 뱉는 말 한마디에도 있고, 내 작은 가슴 안에도 있다. * 하나님께서 내 삶에 오시면 슬픈 눈물도 기쁨의 강으로 변하고 화(禍)도 복으로 바꾸어진다(대하7:14). * 천지 만물이 모두 다 하나님의 것이다. 내가 하나님 안에 있으면 모든 것이 다 내 것이 된다(고전8:5-6). * 하나님처럼 마음을 넓히고 크게 하는 자, 은혜를 은혜로 받고 모든 것에 주인 되어 부요한 자가 된다(고후8:9). * 시냇물 흘러 바다가 되듯 작은 정성이 모아져 하나님 나라 사역에 쓰임 받을 수 있다면 더없는 기쁜 행복이요 하늘 영광이다(눅19:1-10, 요12:3). * 험한 세상 한 가운데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함께 나누며 함께 고백 한다는 것은 삶의 위로와 용기를 서로가 피차에 공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다(골4:12-18. 고후 9:5. 신6:1-25). ◆ 말숨 산문집 제7권 '그대 안해 나의 어여쁜 신부여'가 출간되었습니다. 제게 문자나 메일로 답신(주소명기) 한번 주시면 보내드리겠습니다. ◆ 저는 신앙의 여정 가운데 특별한 의미의 삶과 죽음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어느 교회이든 제게 간증 설교할 기회를 주시면 기꺼이 제 자신을 헌신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말숨' 산문집 1권을 구매해 주시면 1권이 사랑의 선물로 전국 교도소와 군, 경찰, 학원, 병원에 님의 이름으로 기증됩니다. (각권 13,000-20,000원. 전7권. 농협:301037-51-098385. 호산나교회 010-9059-4037)
사랑하는 님께.
아래의 글을 헤아려 주시고 기도해주시기 원합니다.
부디 말숨 자활센터의 회원(혹은 회원교회)이 되어주셔서
사회복음화의 지평을 넓히는데 밑거름이 되어주소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너’가 살고 ‘나’도 사는 하늘의 복이
되어 주소서.
감사합니다. 말숨 자활센터 염동권 목사 올림.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을 만큼 사소한 어떤 일이 계기가 되어 누구도 예상치 못한 어떤 큰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진심으로 상대방 입장에 서 보려는 따뜻한 마음 한 조각 혹은 격려의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삶을 바꾸어 놓는 결정적 계기가 되기도 한다.
나의 대학시절에 철학을 가르치신 분은 ‘학생교수’였던 신 인현 교수님이셨다. 그분은 원래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시다가 숭실대학교에서 철학을 강의하셨는데 미국 P.S.C.E 에서 기독교 교육학도 공부하신 박학다식(博學多識)한 분이셨다.
그는 나이가 지긋한 중년의 장로님이 되었을 때 또 다시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장신대에 학생으로 오셨는데 같은 캠퍼스에서 대학 초년생인 학부생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학생교수라고 불렸다.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 그분이 가르쳤던 지식 같은 것은 다 잊어 버렸지만 딱 한 가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그의 생활철학의 일면인데, 칠판에 역지사지(易地思之)라고 크게 쓰고 나서 자기는 어느 누구에게 편지를 받으면 즉시 답장을 꼭 하려고 노력한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중요한 사람뿐만 아니라 하찮아 보이는 사람에게도 편지를 받으면 꼭 답장을 한다고 한다.
누군가가 자기에게 편지를 쓸 때면 그 사람의 마음과 인격이 담겨있는데 자기가 받고도 무관심한다거나 모른 척 한다면 사람의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분은 ‘나와 너’의 관계는 살아있는 인격적인 관계라는 것을 편지 답장에서도 찾았던 것이다. 그리고 즉시 답장을 쓰려는 이유는 조금 있다 나중에 쓰겠다고 생각하면 그만 잊어버리고 놓쳐버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은사님 가르침에 은연중 영향을 받아서 인지는 몰라도 나 또한 어느 누군가에게 편지나 문자를 받으면 꼭 답신을 하려고 힘쓰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산골짝 비탈에 계단식으로 만들어진 논, 밭이 지금도 많다. 지형 자체가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이다. 게딱지만한 계단이라도 알뜰살뜰 일구어 농사짓고 살아온 우리 가난했던 조상들의 노고가 눈물겹게 느껴진다. 윗 논에 물을 가득 채우고 나면 아랫 논으로 차례차례 흘려보내서 모두가 함께 농사지으며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윗 논 주인이 내 땅에 물 댔으니 남의 땅은 알바 아니라면서 논물을 막아 버린다면 큰 분쟁이 일어날 것이다.
입장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라는 역지사지(易地思之)는 여기서 유래된 말이다.
내가 알고 있는 어느 존경하는 목사님은 백 권도 넘는 책을 쓰셨는데 오늘의 자기가 된 것은 초등학교 다닐 때 어느 담임선생님의 따뜻한 격려 한마디가 일평생 자긍심(自矜心)을 불러일으킨 결과물이라고 했다. 작문시간이었는데 자기가 쓴 글을 선생님이 읽으신 후 급우들 앞에서 “참 잘 쓴 글!” 이라면서 칭찬해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는데, 이 말한 마디가 일평생을 가슴속에서 살아 숨 쉬면서 내적 투지를 불태웠고 마침내 그의 의식구조가 되었던 것이다. 그 사람의 의식구조가 그 사람을 결정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 목사님의 경우가 바로 좋은 예가 아닐까 한다.
교회에서 선포되는 하나님 말씀의 핵심은 결국 ‘서로 사랑하며 살자!’는데 그 초점이 모아진다.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사랑할 것이냐? 에 있다.
골로새 성도들에게 보낸 바울의 편지에 보면 다음과 같이 권면하고 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3:12-14).
여기서 12절을 새 번역 성경은 ‘그러니 따뜻한 동정심과 친절한 마음과 겸손과 온유와 인내로 마음을 새롭게 하여’ 라고 번역했다.
‘너’를 대물관계(對物關係)인 ‘그것’(It)으로가 아니라 살아있는 인격체인 ‘너’로 받아들이고 긍정하며 대접하려면 먼저 마음이 친절하고 따뜻해야 한다. 역지사지의 교훈처럼 상대방 입장에 서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 자신을 낮추는 겸손과 온유한 마음, 오래 참아주고 서로 용납하고 용서해주려는 마음이 먼저 준비되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따뜻하고 친절한 마음이 있어야 따뜻한 말도 나오는 법이다.
‘따뜻한 말은 생명의 나무가 되고 가시 돋친 말은 마음을 상하게 한다’(잠15:4)고 했다.
언젠가 이 주연 목사님(산마루 서신)께서 ‘전화번호만 쓰인 편지’라는 글을 보내주셨다. 이 글을 나는 처음에는 무심코 읽다가 나중에는 몇 번이고 되새기며 읽어 보았다. 깊은 감동을 주는 말씀이었다.
『 2007년 10월 어느 밤, 휴대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혹시 전화번호가 010-2372-0000 맞나요?
"네, 왜 그러시죠?"
"저는 대전에서 일하는 우체부 입니다. 따님인지 아드님인지 엄마를 그리워하는 편지를 보냈는데요, 주소 대신 전화번호가 적혀 있어서요. 내용을 보니 꼭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아,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찾으러 갈께요."
전화를 끊고 한참 울었다. 여섯 살밖에 안 된 딸이 못난 엄마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다. 편지 쓰는 방법도 잘 모를 텐데...... .
나는 결혼 생활의 실패자였다. 남편, 시댁과의 갈등을 견딜 수 없어 딸을 남겨두고 떠난 나쁜 엄마였다. 그런데 자식이 부부 사이를 이어 주는 끈이라는 말이 맞는 듯, 그 편지 덕분에 우리 부부는 살림을 합쳐 행복하게 산다. 전화번호만 쓰인 편지를 버리지 않고 애써 연락해 준 우체부 아저씨의 배려와 따뜻한 마음에 깊이 감사한다.」
‘우체부 아저씨가 전해준 그 편지 덕분에 우리 부부는 살림을 합쳐 행복하게 산다..... ’는 이 고백은 목이 메게 한다. 만일 우체부 아저씨의 특별한 배려와 따뜻한 마음이 없었다면 그 딸아이와 엄마 그리고 아빠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를 되물어 본다.
지금 세상은 무법천지가 되어 점점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따뜻한 사랑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마24:12) 나는 알고 있는 분들 뿐만 아니라 많은 익명의 독자들에게도 이메일 서신을 많이 보낸다. 하나님을 나타내려는 목적으로 많은 공을 들여 지극 정성으로 쓰여진 글이기 때문에 마음이 열려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함께 하나님 은혜를 공유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글을 보낼 때 마다 이 글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소명의식(召命意識)으로 글을 보낸다. 무언가 서로서로에게 영적유익이 있기를 기도하면서 축복하는 심정으로 글을 보낸다.
얼마 전 말숨 글을 읽은 박정도 은퇴 목사님께서 귀한 책 헌금을 보내오셨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깊은 천국 사귐이 이어지게 되었는데, 목사님께서 은퇴하시기까지 마음에 품고 평생 목회의 좌우명으로 존경하신다는 고(故) 안병모 목사님과 그의 제자 강병률 목사님을 소개해 주셨다. 강 목사님 역시 안병모 목사님의 가르침을 받고 그 귀한 뜻을 받들어 요한복음 강해서를 출판하시고 원하는 목회자에게는 누구에게나 기증하신다. 박정도 목사님의 소개로 내게도 귀한 책을 보내오셨는데 책뿐만 아니라 말숨 산문집 출판 헌금까지 보내오셨다.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즉시 답신 메일을 올렸다.
「감사하신 강성률 목사님께. 오늘 목사님께 큰 사랑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저의 마음을 헤아려 주시고 귀한 뜻을 주셔서 너무도 힘이 되고 격려가 됩니다. 뵙고 싶사옵고 말씀도 듣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목사님께 항상 함께 하시어 하나님 친히 목사님 하시는 사역위에 나타나 주시옵기를 기도합니다.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이어서 일전에 써둔 ‘말숨 자활센터’ 설립 취지문을 일부 수정하여 말숨 독자분들께도 알리고 귀한 마음과 뜻을 아래와 같이 구하게 되었다.
「안녕하십니까. 말숨 산문집을 쓴 ‘말숨 자활 센터’대표 염동권 목사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로 쓰여진 말숨 산문집(전7권)이 우리 사회 각계 각처(전국 교도소, 군, 경찰, 학원, 병원 등)에 보급되어 하나님의 이름이 전파되고 기념되기를 소원합니다. 말숨 글을 통하여 은혜 받고 변화된 만기출소 재소자들과 사명감을 가지신 은혜 받은 구직자(求職者)들이 중심이 되어 ‘말숨 자활 센터’가 설립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말숨 글을 받으시는 분은 꼭 읽어주시고, 받으신바 은혜에 따라 비록 적을지라도 출판 헌금에 참여해 주시면 지속적으로 출판하여 님의 이름으로 교회와 사회에 널리 보급하겠습니다.
말숨 글을 읽으시는 분께서 말숨 산문집 한권만 구매해주셔도 말숨 자활센터에 실질적인 뜻과 힘을 주시는 것과 같고, 한걸음 더 나아가 매월 한권씩만 구매해주신다면 말숨 자활센터의 명예로운 회원이 되어 사회복음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기쁨과 영광이 될 것입니다. 더욱이 말숨 자활센터 후원교회가 되어주신다면 더없이 큰 힘과 격려가 될 것입니다.
제가 건강이 안 좋아 마지막 유고집이 될지도 모른다는 심정으로 글을 쓰면서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혜로 건강이 많이 회복되었기 때문에 특히 제 7권 ‘그대 안해(安偕), 나의 어여쁜 신부여’는 특별한 애착이 가는 책이라 널리 읽혀져서 천국복음이 전파되기를 소원합니다. 이 책에 실려 있는 글 가운데 ‘나의 특이한 병상체험’과 ‘하늘경영 원리와 사회적 기업’이라는 글은 하나님의 현존(現存)과 책임 있는 신앙의 삶이란 무엇인가? 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함께 살아가는 우리 이웃을 위한 뜻있는 일에 거룩한 참여를 원합니다. 이메일 주소를 보내주시면 말숨 글 보내드립니다.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혜로 매일매일 건승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말숨 자활센터 염동권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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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숨 자활센터 설립을 축복해 주시고 기도해 주소서!
성경에는 축복한다는 말이 700번 이상 기록되어 있다.
히브리어의 ‘축복하다’라는 말은 '칭찬하다, 격려하다'라는 뜻도 포함된다. 특히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말은 하나님의 힘과 은총을 전달할 수 있다.
그러면 언제 '축복' 해야 할까?
'지금'이다. 지금 축복하는 것이 가장 좋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을 축복합니다. 축복합니다. 한번 더 축복합니다.
‘여호와는 여러분에게 복을 주시고, 여러분을 지켜주실 것이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여러분에게 비취시어 큰 은혜 베푸실 것입니다. 여호와는 그 얼굴을 여러분에게로 향하여 드시고 평강을 주실 것입니다.(민6:24-26) ’
‘여호와는 여러분을 지키시는 분이시다. 여러분의 우편에서 그늘이 되어주시니 낮의 해가 여러분을 상하게 하지 못할 것이며, 밤의 달도 여러분을 해치지 못할 것이다. 여호와께서 여러분을 지켜 모든 환란을 당하지 않게 하시며, 오고 가는 모든 걸음을 지켜주실 것이다.’(시121:5-8).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 진심으로!
그런데 이 축복의 편지에 대한 반응은 실로 다양하고 천차만별이다. 무관심속에 읽지도 않은 채 버려지는 경우도 많고 비웃음과 욕설로 거부되기도 한다. 반면에 따뜻한 관심과 사랑 그리고 감사의 답신을 주시고, 어떤 분은 감사의 헌금까지도 보내주시는 분들이 있다. 그럴 때면 스스로 감격하며 “더 좋은 글을 써서 보답해야지...” 하면서 자신을 격려하기도 한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자신을 표현하는데 일본인이나 서구인들에 비해서 너무 인색하다고 한다. 감사하다는 인사 한마디가 그렇게 힘들고, 칭찬하고 격려하는 말은 더더욱 어려워한다. 편지 쓰는 사람은 답장 받을 때 가장 큰 기쁨을 느끼는데 그 마음 하나 읽어주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이다.
오늘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할 것인가?
지극히 하찮아 보이고 작은 것 같아 보이는 그 따뜻한 마음씀씀이 하나가 누군가의 운명을 바꾸어놓을 수도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사랑은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입 안에 있고, 내 입술이 뱉는 말 한마디에도 있고, 내 작은 가슴 안에도 있다.
* 하나님께서 내 삶에 오시면
슬픈 눈물도 기쁨의 강으로 변하고
화(禍)도 복으로 바꾸어진다(대하7:14).
* 천지 만물이
모두 다 하나님의 것이다.
내가 하나님 안에 있으면
모든 것이 다 내 것이 된다(고전8:5-6).
* 하나님처럼
마음을 넓히고 크게 하는 자,
은혜를 은혜로 받고
모든 것에 주인 되어
부요한 자가 된다(고후8:9).
* 시냇물 흘러 바다가 되듯
작은 정성이 모아져
하나님 나라 사역에 쓰임 받을 수 있다면
더없는 기쁜 행복이요 하늘 영광이다(눅19:1-10, 요12:3).
* 험한 세상 한 가운데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함께 나누며
함께 고백 한다는 것은
삶의 위로와 용기를 서로가 피차에 공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다(골4:12-18. 고후 9:5. 신6:1-25).
◆ 말숨 산문집 제7권 '그대 안해 나의 어여쁜 신부여'가 출간되었습니다. 제게 문자나 메일로 답신(주소명기) 한번 주시면 보내드리겠습니다.
◆ 저는 신앙의 여정 가운데 특별한 의미의 삶과 죽음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어느 교회이든 제게 간증 설교할 기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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