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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를 맞으면서 하나님 앞에서 “다가오는 2015년 을미년 새해에는 꼭 이렇게 살기를 원하오니 도와주십시오” 하고 몇 가지 마음 다짐을 굳게 했었다. 어느덧 추운 겨울이 가고 춘 삼월도 중반을 향해 치닫고 있으니 맨 먼저 푸른 싹을 보이는 들풀도 곧 언 땅을 뚫고 올라올 것이다.
이렇듯 한 계절이 바뀐다는 것은 일 년의 사분의 일이 소진된 것을 뜻한다. 세월은 이렇게 무심히 흐른다. 이런 식으로 시간이 흐르기를 벌써 61년을 지나왔으니, 아뿔사! 내가 두 눈 감을 날도 멀지 않았네 싶어 다시 한 번 나 자신을 되돌아본다.
마음 다짐처럼 그렇게 되도록 나는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약속을 지켰고, 얼마나 달라졌는가 되물어 보니 부끄럽게도 거의 변화된 것이 없다. 옛 습관 그대로 그 날이 그 날인 것처럼 말하고 행동했지 않은가. 하나님 앞에서 마음 하나를 지키지 못했다.
사람과의 약속에서도 신실(信實)하지 못했다. 부끄러운 것 뿐 이다.
나는 그 어느 누구도 비난하거나 비판할 자격이 없다.
나 자신이 얼마나 허물진 죄인인가를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를 까맣게 잊고 함부로 비난하고 판단하고 정죄했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더니 무엇이 다른가? 근심하지 말고 염려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다 하나님께 맡기라 입으로는 수없이 말하지만 실상 내 마음은 여전히 그 반대 아닌가? 욕심을 다 내려놓고 가난한 심령이 되자고 수없이 마음 다짐을 하지만 여전히 속사람은 본질에서 변화되지 않고 갈등하고 있지 않는가?
성령으로 지식에까지 영의 사람으로 새로워지지 않으면 마음 하나를 지킬 방법이 없다.
지혜자는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언 4:23) 라고 말씀했다.
또한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이르기를 내 말을 네 마음에 두라.
내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살리라’(잠언 4:4) 라고 말씀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도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그리하여 네가 눈으로 본 그 일을 잊어버리지 말라. 네가 생존하는 날 동안에 그 일들이 네 마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조심하라.
너는 그 일들을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신명기 4:9)
라고 권면했다.
예수님께서도 ‘천국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할 것이 아니라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1) 라고 말씀하셨다.
말하자면 우리가 추구하는 최고의 이상적인 나라, 천국이라는 궁극의 상태는 언제나 밖에 있지 않고 내 심령, 내 마음 가장 깊은 데에 있고 거기서부터 시작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내가 어떤 마음가짐을 갖느냐에 따라서 삶의 해석은 전혀 달라질 수 있고, 행복과 불행도 천당도 지옥도 된다는 것이다.
시인 이해인은 ‘내 마음속의 사랑’에서 이를 잘 갈파(喝破)했다.
내 마음이
메마를 때면,
나는 늘 남을 보았습니다.
남이 나를
메마르게 하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보니
메마르고 차거운 것은,
남 때문이 아니라
내속에 사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이
외로울 때면,
나는 늘 남을 보았습니다.
남이 나를 버리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보니
내가 외롭고 허전한 것은
남이 아니라
내속에 사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에
기쁨이 없을 때면,
나는 늘 남을 보았습니다.
남이 내 기쁨을
빼앗아 가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보니
나에게 기쁨과 평화가
없는 것은
남 때문이 아니라
내 속에 사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부정적인 일들이
남 때문이 아니라
내 마음에 사랑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오늘,
나는 내 마음에
사랑이라는 이름의
씨앗 하나를
떨어 뜨려 봅니다.
이렇듯 내 마음 상태가 어떠냐에 따라서 똑같은 것을 보고도 해석은 하늘과 땅으로 차이가 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오늘 하루를 살아도 천년을 사는 듯, 아니 영원을 사는 듯 진실하게 살지 않으면 안 된다. 진실로 겸손하게 마음을 비우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이 순간 내 삶이 곧 하나님과 계수(計數)하고 심판받을 것처럼 종말론적(終末論的)으로 살지 않으면 안 된다.
36세의 나이로 대장암 진단을 받고 세상을 떠난 영국인 샬롯 키틀리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블로그에 작성한 글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마음 뭉클한 깊은 깨달음을 준다. 그녀는 두 아이의 엄마였다.
【살고 싶은 나날이 저리 많은데, 저한테는 허락하지 않네요.
내 아이들 커가는 모습도 보고 싶고,
남편에게 못된 마누라도 되면서 늙어보고 싶은데,
그럴 시간을 안 주네요.
"죽음을 앞두니 그렇더라고요.
매일 아침 아이들에게 일어나라고,
서두르라고, 이 닦으라고 소리소리 지르는 나날이 행복이었더군요."
살고 싶어서, 해보라는 온갖 치료 다 받아봤어요.
기본적 의학 요법은 물론, 기름에 절인 치즈도 먹어보고
쓰디쓴 즙도 마셔봤습니다. 침도 맞았지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귀한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례식 문제를 미리 처리해놓고 나니
매일 아침 일어나 내 아이들 껴안아주고
뽀뽀해줄 수 있다는 것이 새삼 정말 감사하게 느껴졌어요.
얼마 후 나는 그이의 곁에서 잠을 깨는 기쁨을 잃게 될 것이고,
그이는 무심코 커피 잔 두 개를 꺼냈다가
커피는 한 잔만 타도된다는 사실에 슬퍼하겠지요... ...
딸 아이 머리도 땋아줘야 하는데...
아들녀석 잃어버린 레고의 어느 조각이
어디에 굴러 들어가 있는지는 저만 아는데 앞으론 누가 찾아 줄까요.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고 22개월 살았습니다.
그렇게 1년 보너스로 얻은 덕에
아들 초등학교 입학 첫 날 학교에 데려다 주는
기쁨을 품고 갈 수 있게 됐습니다.
녀석의 첫 번째 흔들거리던 이빨이 빠져
그 기념으로 자전거를 사주러 갔을 때는 정말 행복했어요.
보너스 1년 덕에 30대 중반이 아니라 30대 후반까지 살고 가네요.
복부 비만이요? 늘어나는 허리둘레,
그거 한 번 가져봤으면 좋겠습니다.
희어지는 머리카락이요?
그거 한 번 뽑아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만큼 살아남는다는 얘기잖아요.
저는 한 번 늙어보고 싶어요.
부디 삶을 즐기면서 사세요.
두 손으로 삶을 꽉 움켜쥐고
잃어버리지 않도록 말이지요】
나는 지금 오래 전 죽었어야 할 사람이 살아있다.
하나님 만져주신 은혜로 100% 덤으로 살고 있으니
무엇을 더 바랄 것이 있는가?
무엇을 더 잃을 것이 있는가?
무엇을 비난하고 욕하고 따질 것이 있는가?
다 받아 주고 다 포용하고
다 용서하고 또 용서받고
내 마음 안에서 사랑으로 소화하자.
‘존재로부터 긍정하는 님에게’(말숨 산문집 제2권 제목)는
바로 그런 뜻 아니었던가?
지금까지 스스로 이율배반으로 살아온 나는
죄인 중의 괴수다(딤전1:15).
내 마음 하나 지킬 것을
뻔뻔스럽지만 다시 한 번 더 다짐해본다.
* 허물의 사함을 얻고
죄의 가리움을 입은 자는 복이 있다.
마음에 간사가 없고
하나님께 정죄를 받지 않는 자는 복이 있다
(시 32:1-2; 요 8:11; 롬 8:1-2).
* 내가 스스로 매미처럼
허물을 벗을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허물을 벗길 수 있는 해결자다
(롬 8:21-25, 3:20-21).
* 서로서로 사랑하라
이는 모든 계명의 완성이다.
서로를 존재로부터 긍정하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다(롬 15:1).
* 하나님이 우리를 받으심같이
우리도 서로 받아야 한다.
강한 자는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서로를 존재로부터 긍정해야 한다(롬 15:7).
* 하나님이여, 주의 의로 내 영혼을 지키소서.
비밀히 친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허탄한 거짓에서 건져주소서(시 3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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