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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계신 하나님은 우리의 진실한 기도와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고
응답하시는 자비하신 아버지이시다.
신앙인이라면 응답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수많은 기도제목 가운데 우리가 먹고 사는 물질에 관계된 것도
하나님은 응답하신다는 말을 한다면 “그럴 수가 있나? 그것은 우리가 노력하고 힘써서 얻을 영역이지 그런 것까지 하나님이 세밀하게 들으시고
도와주신다니 믿기지 않는데....” 하면서 회의감이 앞설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무엇이건 하실 수 있는
주권자(主權者) 하나님이심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가문을 이스라엘 신앙의 조상이
되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애굽에 팔려간 요셉에게 특별히 나타나셨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창39:2-5).
5만 번이나 기도 응답 받은 죠지 뮬러는 불쌍한 고아들을 먹이고
입히느라 물질을 구했을 때, 이는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선한 일이니까 자비하신 하나님께서는 응답을 주시지 않으면 안 될 명분(名分)이라도 있어
은혜로 주셨겠지만 설마 우리의 개인생활에 필요한 것 까지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실 필요가 있을까 싶어 반신반의(半信半疑)하기 쉬운 것이 우리
신앙의 연약한 모습이다. 그런데 나는 근래에 장명길 안수집사님을 만나뵙고 나서 요셉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나시는 바로 그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크게 은혜를 받았고, 이 사실을 독자들에게도 가감 없이 진실하게 알리고 믿음에 도전받게 하고
싶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얼마 전 진광교회 한문수 안수집사님께서 친구 되시는 장명길
안수집사님에게도 말숨 글을 보내 주십사 하고 이메일 주소를 내게 주셨다. 나는 이런 순간을 가장 기쁘고 행복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왜냐하면
‘나’ 라는 존재를 인정해주실 뿐만 아니라 내가 쓰는 말숨 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나의 삶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확인하는 것이기도 하고 이를 통해 삶의 용기 또한 갖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즉시 기쁨과 감사한 마음으로 말숨 글을 보냈다.
그런데 글을 보내자마자 뜨거운 마음이 느껴지는 답신이 왔다.
그동안 그 오랜 세월 고난과 역경을 헤치고 살아온 자신의 삶과 그
가운데서 체험한 하나님 신앙체험이 나의 신앙체험과 너무도 비슷하게 많이 닮아있어 쉽게 공감할 수 있었고, 그래서 위로를 받았으며 우리 서로 함께
신앙을 나누면서 살면 하나님 은혜가 더욱 풍성해질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짧은 시간 안에 몇 번 메일을 주고받았고, 곧 만나게 되었는데,
자신이 쓴 책이라며 ‘은혜가 강물처럼’ 이라는 신앙 간증고백 에세이를 주셨다. 이 책을 다 읽은 후 장 집사님에 대한 글 한편 쓰겠다고 약속할
정도로 집사님의 특별한 신앙체험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감동을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장명길 안수집사님(1952년 충북 제천 출생. 40세에 믿음생활
시작. 목천 장로교회 안수집사. 현재 현대 해상 근무 중
미소문학 시, 부분 신인공모당선)은 미현 공예사 라는 조그만 가게를
15년 동안 운영하셨는데 IMF시절 어쩔 수 없이 정리하고, 1997년 40대 후반의 나이에 가진 것 없이 제로상태에서 직장을 구해 간곳이
현대해상이라는 보험회사 였다.
이는 마치 아브라함이 갈 바를 모르고 나아간 것과 똑같은 것이었다.
그는 지나치게 내성적인 성격으로 남에게 아쉬운 말을 좀체 못하고
사교적이지도 못하다. 지금까지 17년 가까이 보험영업을 직업으로 갖고 있으면서도 아직도 어느 누구에게도 보험가입을 권하는 것을 거의 전혀 하지
못할 정도다.
매일 출근을 하지만 딱히 일도 없고 도저히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아 수없이 갈등하고 고민해야 했다.
보험 영업사원은 어떤 주어진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을
찾아서 해야 하는 즉 무형의 상품을 판매하는 일이기 때문에 매달 고객을 만나 새로운 계약을 달성해야만 어느 정도의 급여를 받을 수 있고 가장의
책임과 필요한 생활비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매 순간 삶의 현장에서 겪어야하는 부담감은 실로 엄청난 것이다. 만일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하기라도 하면 가차 없이 자기가 쓰던 책상도 남에게 빼앗기는 수모도 견뎌야 하고 더 심하면 다른 곳으로 쫓겨나게 된다. 여기에는 살벌한 생존경쟁만이 있다. 그래서 매일매일 긴장해야하고
책임을 다하며 자리를 지키는 것이 결코 만만치가 않다. 그달 그달의 계약을 통해 나타난 성과를 가지고 소득이 결정되는
계약직이고 능력급이다 보니 몇 개월 혹은 1년도 버티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고 떠나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인 것이 엄연한 현실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잘 하다가도 얼마 못가서 스스로 포기하고 나가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그는 하루하루 사는 게 너무도 고달프고 장래가 불확실해 몹시도
힘들고 두려웠다. 날마다 어떻게 일을 해야 할지 대책 없는 것이 일상이었고, 사람을 만나야 계약도 체결하는데 인맥도 없고 어디로 가서 어떻게 일
해야 좋을지도 몰랐다고 한다. 말하자면
사냥꾼이 활 쏘는 법도 모른 채 사냥하러 나간 것이라고나 할까. 생래적으로 보험영업은 자기와 맞지 않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줄곧 그를 괴롭혔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히 갈 데가 없어서 박차고 나오지도 못하는 신세이니 그야말로 딜레마가 아닐 수 없었다.
이렇게 견디기 힘든 직업 여건에서 자그마치 17년이라는 그 오랜
세월을 자기 같이 능력 없는 사람이 어떻게 버텨 나올 수 있었는지, 그것도 인정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팀장이라는 자리를 7년 6개월 넘도록 지금까지 지켜오면서 영업실적 1등을
여러 차례 수상하면서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살아올 수 있었는지 그 자체가 설명할 수 없는 기적 그 자체라고 한다.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때마다 일마다
돕는 은혜가 아니었다면 절대로 오늘의 나는 상상할 수도 없을 것이라고 한다.
아합 왕의 눈을 피하여 그릿 시냇가에 숨어살던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너는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와서 엘리야를 먹여 살린 것처럼(왕상17:3-6), 하나님이 어떻게 그의 삶에
나타나셨는지 ‘은혜가 강물처럼’ 이라는 책에는 눈물겹게 증언하고 있다. 그의 다음과 같은 처절하고도 진실 된 삶의 고백을 들어보자.
【정말 어찌할 수 없는 한계상황을 맞아 내 힘으로는 살 수 없다는
강박감과 절박함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고 목적지 없는 길거리를 방황하다가 지칠 대로 지친 어느 날 오후, 나의 발걸음은 나도 모르게 도망하다시피
동네 근처의 용마산 언덕을 향해 산을 오르고 있었다. 다들 바쁘게 살아가는데 왜 난 이 모양인가 싶었고 갑자기 세상이
무섭게 느껴지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막다른 낭떠러지에 서있는 당시의 참담한 내 모습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을씨년스러운 초겨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찾아간 한적한 산속에서
목까지 차오른 스트레스를 주체하지 못해 울부짖으며 나만이 겪어야했던 처절한 아픔과 고독을 주님밖에 누가 알까 싶으며 내가 처한 꼼짝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한없는 무력감과 나약한 실패자의 모습 그대로 전능자이시며 절대자이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온통 주변이 다 가로막혀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눈에 비친 파란 하늘은
무척이나 아름다웠고 그래도 위로 올려다보는 하늘만큼은 환하게 열려져 있었다. 그러나 갈 곳을 몰라 그곳에 와있는 나의 처지가 너무도 암담했고
앞길이 캄캄하고 막막했으며 나에게는 인생의 커다란 위기이자 고비가 아닐 수 없었고 내게 작은 믿음이라도 없었다면 정말 어떻게 되었을까 싶다.
위기를 만나 갈림길에서 생을 포기하는
사람들의 심정이 이해가 가고 나 역시 하나님을 몰랐다면 쉽게 절망하고 좌절하여 세상적인 방법으로 고통을 해결하려 했을 것이며 그와 같은 결과는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네 식구 생활을 책임진 가장으로서 고생만 시키는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고 가정을 지킬 수 없는 나의 무능함이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다가와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으며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모르는
그야말로 길을 잃은 한 마리의 양이 되어 이제 내가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은 오직 내가 믿는 하나님밖에 없다는 고백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환경을 통해서 스스로 아무것도 아닌 것을 깨닫게 되었고
하나님을 향해 겸손함으로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조용히 눈을 감고 묵상의 시간을 가지며 그럼에도 먼저 감사의 조건들을 찾아 기도하기
시작했다.
친구들 가운데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도 여럿이 있는데 지금까지
생명을 지켜주신 것도 감사했고 가정을 주신 것도 자녀들을 선물로 주신 것도 온 가족을 구원해 주셔서 믿음 생활하는 것도 감사했으며 단지 일이
없고 물질이 없고 궁핍한 것 외에는 아직도 가진 것이 많음을 깨닫게 되었다. 당장 앞으로 살아갈 대책이 없고 그것이 큰 짐이 되어 나의 가정과
자녀들과 나의 미래를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며 책임져 달라고 애통한 심정을 주님께 쏟아놓고 주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을 간구하며 나의 사정을 간절히
호소했다. 그때의 나의 기도는 평소에 집에서나 교회에서 힘들 때 마다 의례히 하던 것과는 달랐으며 완전히 나를 포기하고 오로지 주님의 도우심만을
의지하는 간절함이 배어있는 기도라고 믿어진다.
비록 보이는 것이 없고 들리는 소리 없었지만 숨이 막힐 것 같은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리는 것처럼 시원해졌는데 주님은 그런 나의 기도를 들어주셨고 지금껏 모든 삶의 필요들을 채워주셨으며 넘치는 은혜와 사랑으로
나의 길을 인도해 가심을 알 수가 있었다. 그때는 정말 피할 곳 없는 막다른 골목에 버려진 것 같았지만 주님은
나의 피난처가 되어주셨고 든든한 보호자가 되어 주셨으며 어쩌면 나의 인생에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던 것이 분명하다고 하겠다.
보험세일을 직업으로 갖고 살아오는 동안 주님은 나로 하여금 참으로
많은 경험들을 하게 하셨는데 처음엔 열심히 노력도 해보고 활동도 해보았지만 점차 내가 수고해서 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고 나의 방법이 아닌
주님의 방법으로 일하게 하셔서 대부분 모르는 사람들을 통해 계약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때 스스로도 놀랐고 정말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겠다. 아는 분들도 내가 먼저 이야기하지
않게 하시고 그분들이 나를 찾게 하셔서 계약이 성사되는 것이 다반사인데 모든 것이 거저 받는 은혜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말을 찾을 수가 없을
것 같다.
나는 낙심과 절망의 벽에 부딪힐 때마다 개척교회 지하실이나 공원,
기도원 같은 한적하고 은밀한 곳을 찾아 무릎을 꿇고 애통한 심정으로 전심전력 기도했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를 때는 ‘내가 만난
하나님’(간증문) 전도지를 손수 만들어 인쇄해서 거리나 병원 같은 곳을 찾아가서 나누어주면서 복음을 전했다. 그렇게라도 해야만 ‘나’ 라는
존재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환자들에게 기도해주고 전도지를 나누어준다고 핍박받고
쫓겨나기를 여러 번 했으나 아랑곳 하지 않고 끊임없이 복음을 전파했다. 그것이 유일한 나의 기쁨이었다.
나는 천국복음을 전도하면서 영혼의 힘을 얻었기 때문에 쓰러지지 않고
지금 여기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
그리고 나처럼 어려움을 당한 사람을 보면 내 성격상 나 몰라라 그냥
지나치질 못했다.
‘너희는 지난 날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때를 잊지
말라(출20:2).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신10:19)는 하나님 말씀을 기억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양심의 소리에 순종하려고 노력했다. 나도 물질적으로 힘들었지만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보면 남의 일
같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부족하기 이를 데 없는 나를 믿음의 길로 인도한 것은 그
언제나 나의 아내였다.
그 오랜 세월 수많은 어려움과 고통이 닥쳐올 때도 오직 믿음과
기도로 참으며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아온 나의 아내가 없었다면 오늘의 행복은 꿈도 꿀 수 없었을 것이다. 지면상 그 예들을 다 말할 수는 없지만
이런 나의 마음과 신앙생활을 주님은 다 보시고 특별히 나를 기억해주시고 은혜를 주신 것 같다. 아무튼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가능한 일을 하면 하나님은 나를 위하여
불가능한 일을 해주시는 은혜의 하나님을 나는 수도 없이 체험했다.
하나님은 어떻게 나를 대접해주셨는가?
쉬운 예를 들자면, 결산 마감 불과 일주일 남짓 남아 있는 기간
동안에 하나님은 준비된 필요한 사람을 만나게 하셨는데, 내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 했던 목표를 이를 통하여 달성할 수 있게 하셨고, 다음 달
우리 가정의 생활비를 쉽게 해결해 주신 경우가 그런 것들이다. 이와 같은 기적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한, 두 달도 아니고 무려
17년 이라는 긴 세월을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는데 이는 절대로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너무도 마음이 여리고 소심하여 지나치리만큼 내성적인
내가 그 어느 곳보다 경쟁이 심하다고 할 수 있는 냉엄한 삶의 현장인 보험회사에서 17년이 넘도록 근무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기적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아직까지도 가까운 지인이나 이웃들에게 보험하나쯤 가입하라는 말을 못하고 있으니 내가 보아도 한심하고 전혀 대책이 없는 사람이
아닌가도 싶다. 보험영업은 대개가 가까운 사람, 잘 아는 사람들에게 권유하여 가입시키는 것이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방법인데도 나에게는 그것이 왜
그리도 어렵고 잘 안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런 무능하기 이를 데 없는 내가 영업팀장이 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이고, 좋은 근무환경에서 당당하게 일할 수 있는 것 또한 전적으로 내가 믿고 의지하는 주님의 특별하신 사랑이며 은혜임이
너무도 분명하다. 이와 같은 기적적인
결과들을 두고 나로서는 주님의 은혜라는 말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나의 힘과 재능으로는 단 한건의 계약도 체결할 수 없다는 절박함,
수시로 삶의 무게로 다가오고 부딪혀 오는 경제적인 문제들은 결코 피할 수 없는 난제이자 현실이기에 이 모든 것들을 오직 신앙의 힘으로 맞서고
부딪히고 극복해야만 하는 것이 지금 내가 살아가는 삶의 방법이며, 있는 그대로의 자화상이라고 해야 더욱 솔직한 고백이다.
그러나 나의 모든 형편과 처지를 아시는 주님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로 사람을 연결시켜주셔서 적절한 시기에 필요한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을 능히 감당하게 하시니 이 모든 것이 거저 받은
은혜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어 없어 안타깝다. 주님의 은혜로 어느 때는 수십 건에 달하는 신계약을 너무도 손쉽게
이루게 하실 때도 있었고 월 마감인 마지막 날 불과 하루 만에 한 달 동안의 목표를 일순간에 해결하게 하실 때도 있었음을 되새기며 삶의 현장에서
기적을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소중히 간직하면서 항상 감사하며 살고자 무던히 진력하고 있다.
힘도 없고 재능도 없는 내가 오직 도우시는 주님의 은혜로 판매 왕이
되는 감격스런 은혜도 몇 번이나 맛보았고, 영업팀장이 되어서 지금껏 이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것도 감사하며, 얼마 전 손해보험협회에서 인정하는
우수인증 설계사, 대리점 자격을 얻게 된 것도 모두가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주님의 은총임을 고백하며 모든 게 고맙고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지나놓고 보니 고난의 때가 주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게 되는 축복의 시간임이 틀림없었으며 만약에 내게 그러한 고난의 세월이 없었다면 이처럼 많은 은혜와 기적과 능력을 경험하는 일은
도저히 없었을 것이다.
영적싸움에서 무참히 패배하고 작은 시험에도 쉽게 넘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악한 영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울까를 되뇌어본다.
믿음의 능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12:10) 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이 나의 신앙고백이 되었다.
다윗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1) 라는 고백도 이제는 나의 말씀이 되어 있고, 나를 떠받쳐주는 든든한 힘이 되고 있어 크나 큰 위안을 얻고
있다......】
이스라엘은 광야 40년 동안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고 살았다(민11장).
그것은 순전한 하나님의 은혜였음에 틀림없다.
우리 사람은 본래가 하나님의 은혜를 먹고 사는 존재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조차 잘 모른 채 그저 저
잘난 맛에 산다는데 있다.
다니엘은 분명하게 이렇게 말씀한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것은 지혜와 능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
그는 때와 계절을 바꾸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
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총명한 자에게 지식을 주시는도다. 그는 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고 어두운 데에 있는 것을 아시며 또 빛이 그와 함께
있도다’(단2:20-22).
예레미야 선지자 또한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2-3).
밧모 섬에 유배된 사도 요한은 어느 날 기도의 신비를 환상으로
보았다.
‘그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계5:7-8).
‘내가 보매 하나님 앞에 일곱 천사가 서 있어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香煙)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계8:2-4).
이런 상징적인 말씀들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올려드리는 기도는 곧 하나님과의 교제요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은혜의 통로 가운데 유력한 것이라는 사실을 믿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진실로 필요한 것은 하늘 보좌에 통하는 기도,
하나님 마음에 닿는 가난하고 애통한 기도,
하나님도 기뻐하시는 정결한 기도다.
하나님은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신다.
하나님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의 입술이 여호와 하나님의 영예(榮譽)를 말하며 모든
육체가 그의 거룩하신 이름을 영원히 송축해야만 마땅할 것이다(시145:18-21).
할렐루야! 모든 영광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오늘도 주님 은혜로 건승하시기를 빕니다.
사랑합니다. 여러분! 다시 한번 더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
아버지는 사랑으로 자식을 먹이고 입히고 키운다.
어떤 경우에도 자상하고 자비롭다.
우리는 모두 아버지 품을 떠난 고아였으나
하나님은 우리를 불러 여전히 자식으로 대접하신다(시68:5).
* 하나님과 사람은 거부할 수 없고 피할 수 없는
질긴 인연으로 맺어진 존재다.
이처럼 아름답고 영원한 관계는 없다.
하나님은 진리의 말씀으로
나를 낳으신 아버지이시다 (약1:18).
* 친자 확인 소송이 가끔 제기된다.
한 올 머리카락, 작은 혈흔만 있어도
정확한 입증이 가능하다.
하나님과 인간이 자녀 관계라는 것은
그 어떤 교리가 아니라
사실 관계라는 증거는 무수히 많다(마6:9 렘1:5).
* 하늘은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면,
우리는 이를 먹고 산다.
무릇 하나님 하시는 행사가 이와 같다(사55:10).
* 그 오랜 세월 믿음의 사람들이 받은
하나님 언약에 대한 증거가
오늘날에도 동일한 체험으로
나타나는 것 자체가 바로 기적이다
(히13:8 신31:19 요9:17-31).
*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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