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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숨 산문집 제 7권 그대안해(安偕), 나의 어여쁜 신부여 머릿말:
얼마 전, 말숨 산문집 제1권 ‘한 입 가득 베어 문 레마’추천사를 써주신 권명수 교수님(한신대학교)께서 묻기를 “앞으로도 계속해서 말숨 산문집을 펴낼 생각입니까?”해서 게면 적게 웃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1권이 출간된 지가 엊그제 같은데 2013년 새해 들어 ‘그대 안해(安偕), 나의 어여쁜 신부여’라는 제목의 말숨 산문집 제7권이 출간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혜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더없이 기쁘고 감사합니다.
그런데 14년 만에 심장병이 재발하여 앞으로도 글을 계속 쓸 수 있을 런지 우려되는 가운데 주치의 선생님 뿐 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분들께서 이제 모든 것 다 내려놓고 글쓰기도 그만 두고 쉬라고 권면하시니 어쩌면 이 책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나로서는 이 책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특별히 이 책은 말숨 산문집 제1권 ‘한 입 가득 베어 문 레마’출간 때처럼 사회 공공의 유익과 Lucky Seven의 뜻을 살려 독자들의 진한 열망과 정성스러운 헌신으로만 세상에 나오기를 소원했습니다.
교파를 초월한 전국교회와 말숨 글 독자님들의 따뜻한 사랑과 참여가 주된 힘이 되어 기념비적으로 이 책이 출간될 수 있다면 그것은 가장 바람직스러운 일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기꺼이 허락해 주셨습니다.
순전한 마음과 뜻을 주신 모든 말숨 글 독자님들께 이 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특히 이 책의 제목이 되어 준 나의 사랑하는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어여쁜 신부 나의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그리고 호산나교회 김지한 담임목사님과 그동안 기도해주신 호산나교회 모든 분들과 쿰란 출판사 이형규 사장님과 오완 과장님을 비롯한 모든 임직원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아무쪼록 이 책이 교회와 사회 각계 각처에서 널리 읽혀져서, 홀로 복되시고 뛰어나신 하나님의 이름이 전파되고, 우리 사는 세상을 등경위에 놓인 등불처럼 환히 비추는 생명의 빛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오늘도 모든 분들의 건승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2013. 3. 31 부활절 아침에. 호산나교회 만혜(晩惠) 염동권 목사
* 말숨 문서선교회(malsum-sdm.com)에 오시면 모든 말숨 글을 보시고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시기하기까지 사모하시는 하나님
사람에게는 이성(理性)과 감성(感性)이 있다.
대인관계에서 아무리 이성적으로 옳다 하더라도 감정이 상처를 입고 다치기라도 하면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는 어렵다.
예전에는 지능발달 지수(IQ)를 성취의 우선순위로 꼽았는데 모든 것이 세분화되고 다양화된 오늘날에는 감성발달 지수(EQ)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에도 그것은 마찬가지라고 보여 진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 머리보다는 마음이 더 중요하고 차가운 이성적 판단보다는 풍부한 감성에서 솟아나는 눈물이 하나님 심정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심정은 진실한 눈물의 간구를 외면하지 못하시는 특성이 있다.
우리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을 닮았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 품에서 나왔기 때문에 비록 모자라고 불완전할지라도 하나님을 닮은 모형이요 그림자라고 보면 정확하다.
아름다운 꽃은 하나님의 아름다움의 비유이고, 따뜻하고 행복한 사랑의 마음은 하나님 사랑의 모형이다. 생명이 넘치는 건강미는 하나님의 영생이 어떤 모습인가를 엿볼 수 있는 좋은 창구다.
속 좁은 여자는 사소한 일에도 시기 질투하고 투기하는 감정의 변화가 심하다. 나는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도 ‘질투라 이름 하는 여호와’(출34:14) 라는 표현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신다고도 했다(신5:9).
또한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약4:4-5) 라는 야고보 선생의 말씀과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 치심을 받았느니라’(엡4:30) 라는 사도 바울의 말씀은 나를 더욱 놀라게 했다.
물론 하나님은 사람처럼 악한 감정에서 솟아나는 시기나 질투를 하실 분은 결코 아니다. 그러면 그 시기 질투는 어떤 것일까?
우리는 우주과학을 설명하는 데도 언어의 한계를 절감한다.
하물며 하나님의 심정을 표현할 때는 언어의 한계 때문에 적절한 표현을 찾을 수 없어 안타까워한다. 아마도 거룩한 시기질투, 거룩한 분노라면 어떨까?
그런데 이 거룩한 질투 감정은 진실로 사랑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고 알 수 있는 그 어떤 차원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시기 질투하시고 분노하신다면 이는 사랑에서 기인된 것이 틀림없다.
하나님과 사람은 끊을 래야 끊을 수 없는 사랑과 연결된 존재관계이기 때문이다. 만일 질투하지 않고 무관심하다면 그는 아마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질투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분노한다. 정말 말이 되는가?
사람은 근본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하나님의 소유요 하나님의 자녀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을 배신, 대적하고 흉악한 마귀를 좇아 마귀의 소유가 된다면 하나님의 마음은 불같이 시기 질투하시고 분노하신다.
성령께서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는 말씀은 그런 하나님 심정의 표현이다.
사랑하면 때때로 토라진다. 사랑하면 때때로 억지를 부리기도 하고 허세도 부린다. 때로는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 뿐만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목숨까지도 포기한다.
사랑하지 않으면 토라질 이유도 없다. 점잖던 사람도 사랑하기 때문에 싸우고 초조해 하고, 사랑 때문에 열등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은 사랑하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드러나는 행위들이다. 이러한 사랑의 감성들은 사랑하는 사람만이 사랑이 빚어내는 기이한 일들을 이해한다. 사랑을 모르는 사람들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부분까지도 이해한다.
북 왕국 이스라엘에 호세아(Hosea)라는 사랑의 선지자가 있었다.
어느 날 하나님은 그에게 나타나셔서 기이한 말씀을 주셨다.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호1:2).
이에 호세아는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맞이하였다.
고멜이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을 때 여호와께서는 호세아에게 그의 이름을 ‘이스르엘’로 지으라 하셨다. 조금 후에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름은 그 시대를 상징하는 표징이기도 한데, 후일 이스라엘 역사는 ‘예후’라는 장군이 피의 혁명을 일으켜서 나라를 뒤엎어 버림으로서 그 모든 예언을 하나도 남김없이 성취하게 된다.
고멜이 또 임신하여 딸을 낳았는데 그의 이름을 ‘로루하마’라 지으라 하셨다.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고멜이 로루하마를 젖 뗀 후에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의 이름을 ‘로암미’라 지으라 하셨다.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단순히 여기서 끝을 맺는 것이 아니다.
질투의 징계에 이어서 곧바로 그 다음 구절을 보면 극적인 반전(反轉)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라’(호1:10).
이는 마치 부모가 사랑하는 자식이 속을 썩일 때 “아유! 네 하는 짓이 미워 죽겠으니 어쩌면 좋단 말인가! 차라리 내 눈 앞에서 네가 안보였으면 좋겠다. 당장 이 집에서 나가라!”하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어투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런데도 음란한 고멜은 여전히 바람을 피우고 집을 나갔다.
그때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말씀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그들을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 하시기로 내가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나를 위하여 그를 사고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음행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따르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하였노라(호3:1-3).
이스라엘은 마치 악을 밭 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는 음녀 고멜의 모습을 닮았다. 그들은 항상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 우상숭배에 정신을 빼앗겼다. 참되신 하나님을 의뢰하기 보다는 거짓된 세상의 힘을 더 신뢰하고 용사의 많음을 더 의뢰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끝까지 포기하지 못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그들을 치고 내 입의 말로 그들을 죽였노니 내 심판은 빛처럼 나오느니라.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호6:1-6).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호10:1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그의 입에서 제거하여 다시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여 부르는 일이 없게 하리라.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내가 응답하리라. 나는 하늘에 응답하고 하늘은 땅에 응답하고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답하고 또 이것들은 이스르엘에 응답하리라.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호2:16-23)
아름다운 노래, 아가(雅歌)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표현했다.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지옥)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의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아8:6-7).
다투면서도 어울려 사는 사람들,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행복해 하는 사람들.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코드는 사랑뿐이다.
만약에 우리가 하나님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면, 그것은 그가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지만 우리는 그를 사랑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질투’라는 단어로써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게 아니라, 사랑이라는 신비 속에서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기 때문에 아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제대로 알 수 없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사랑에서 나온 기이한 일들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지옥)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의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아8:6-7).
*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호6:1).
*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호6:3).
* 하나님의 말씀을 참으로 사랑하려면
두 마음 품는 자를
미워할 수 있어야 한다(시119:113 약4:8).
* 내가 거짓을 미워하고 싫어하오니
여호와여 거짓 입술과 궤사한 혀에서
내 생명을 건지소서(시119:163).
* 여호와여 내가 전심으로 새벽 전에 부르짖고
말씀을 바랐사오니 내게 응답하소서.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내 소리를 들으소서(시119:145-148).
◆ 저는 신앙의 여정 가운데 특별한 의미의 삶과 죽음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어느 교회이든 제게 간증 설교할 기회를
주시면 기꺼이 제 자신을 헌신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말숨\' 산문집 1권을 구매해 주시면 1권이 사랑의 선물로
전국 교도소, 군, 경찰, 학원, 병원에 님의 이름으로 기증됩니다.
(각권 13,000-15,000원. 전6권. 농협:301037-51-098385.
호산나교회 010-9059-4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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