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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지금 카카오톡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느분께서 다음회사에 말숨 글을 올리지 못하도록 무고하여 저의 사용자격을 박탈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다 하셨다'는 글을 어느 이웃교회 성도님들께 보냈다는 이유때문인 것 같은데 이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래와 같은 말숨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절대로 신천지 같은 이단 사설을 유포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
무슨 치졸한 다른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을 나타내고 서로 함께 느끼고 기도함으로서
저도 힘을 얻어 보다 잘 천국복음을 전파하고자 함입니다.
말숨 글을 알릴 수 있어야 말숨 문서선교도 힘을 얻어 일할 수 있고
이웃교회라면 이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말숨 산문집 한 권이라도 사주실 수 있는 마음을 갖어야 하지
않습니까?
저를 억울하게 하지 말아주시고 옥죈 족쇄를 풀어주십시오.
일전에는 이메일까지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적이 있는데 걱정됩니다.
오늘날은 개인정보를 비롯하여 거의 모든 정보가 절반이상 공개된 세상입니다.
이는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해도 되고 득도 됩니다.
그것은 개개인이 판단할 문제 입니다.
제가 쓰고 있는 말숨 글을 부정적으로 보지 말아 주시고 긍정적인 시각으로 판단해 주시기 원합니다.
이
땅의 그 누구도 말숨 글을 읽을 자유와 권리가 있고
저
또한 말숨 글을 드릴 수 있고 함께 공유할 권리와 자유가 있습니다.
불신자들 뿐만 아니라 성도님들도 말숨 글을 읽으면 개 교회 발전에 유익하지
않겠습니까?
성도님들이 하나님을 더 잘 믿고 섬기게 된다면 그 자체로 감사해야 할 일
아닙니까?
사려깊게 다시 한번 더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십시오. 사랑합니다. 염 소망 목사 올림.
어머님! 꽃구경 하시면......
아직 새벽이면 얼음이 어는데도 어느새 노란 산수유가 피더니 연이어 개나리도 피었고 들풀도 여기저기 고개를 내밀었다. 텃밭에 가보니 작년 가을에 심었던 시금치와 파도 아무 소리도 없이 자라고 있다.
새벽이면 땅은 여전히 얼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여린 새싹과 곱디고운 꽃은 보존될 수 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이들은 봄을 알리는 전령사(傳令使)이기에 특별히 기쁜 손님이다. 겨울 내내 움츠러들었던 우리 마음도 이처럼 활짝 펴고 반가운 미소로 맞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내 마음은 그렇지가 못하다. 여전히 무겁고 아린 슬픈 마음과 자책감에 괴롭기까지 하다. 우리 가족이 오늘일까 내일일까 어머님 임종을 지켜보고 있는지가 벌써 반년 가까이나 되었다. 노환이신 데다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셨기 때문에 의학적 처치는 끝났고 요양원으로 옮겨지셔서 콧 줄로 연명하고 계시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안된지 벌써 오래고 그저 긴 침묵만이 있을 뿐이다. 지난주에는 어떤 곡기도 속에서 받지 못하고 다 토하시고 쏟으셔서 콧 줄을 빼셔야 했다.
이대로 임종 하시는가 했으나 모진 것이 사람 생명인지라 콧 줄을 껴야할지 말아야할지 마음이 몹시 혼란스럽고 복잡했으나 다시 콧 줄로 연명하는 것을 택했다. 이래가지고 꽃 피는 삼월 말을 넘기시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마지막 가시는 어머님을 위해서 어떤 것이 진정 좋은 것인지도 모르겠고, 이래도 불효자식이 되고 저래도 불효자식이 되는 것 같다.
얼마 전 KBS 창사 42주년 기념특집으로 ‘이미자와 장사익의 합동 콘서트’를 열었다. 공연 내내 이미자를 “선생님”이라고 칭하던 장사익은 “이 세상에 하나뿐인 아름다운 목소리고 내일 모레 팔순이 다 되셨는데도 소리가 흐트러지지 않고 목소리도 갈라지지도 않는다”며 존경을 표했는데 정말 엘리지의 여왕임을 다시 확인하는 자리였다.
우리 민족이 품고 있는 한(恨)의 정서를 가장 한국적으로 잘 부른다는 시대의 소리꾼 장사익은 허허바다, 찔레꽃, 꽃구경 등을 불렀는데 꼭 나를 일깨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 같았다.
나와 관객들은 그가 노래하는 내내 속으로 울고 있었다.
그가 작사 작곡한 ‘꽃구경’을 무심히 듣다가 그 이면에 숨겨진 깊은 뜻을 알아채고는 억제할 수 없는 한줄기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
"어머니, 꽃구경 가요"
제 등에 업히어 꽃구경 가요
세상이 온통 꽃 핀 봄날
어머니는 좋아라고 아들 등에 업혔네
마을을 지나고 산길을 지나고
산자락에 휘감겨 숲길이 짙어지자
아이구머니나!
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더니
꽃구경 봄구경
눈감아 버리더니
한웅큼씩 한웅큼씩 솔잎을 따서
가는 길 뒤에다 뿌리며 가네
어머니 지금 뭐 하나요
솔잎은 뿌려서 뭐 하나요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내려갈 일 걱정이구나
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원래 ‘꽃구경’은 다음과 같은 설화(說話)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노래다.
고구려 때 박00 정승이 있었다. 그는 나이든 노모를 지게에 짊어지고 산으로 올라갔다. ‘고려장(高麗葬)’을 하기 위해서였다.
깊은 산 속에 도착한 박 정승이 큰절을 올리자 노모가 말했다.
“얘야, 나라의 법을 어길 수는 없다. 날이 어둡기 전에 어서 내려가라. 네가 길을 잃을까봐 나뭇가지를 꺾어 길 표시를 해두었다”
박 정승은 그 사랑에 감격해 노모를 다시 업고 내려와 남모르게 봉양했다.
그 무렵, 당나라 사신이 말 두 마리를 끌고 고구려를 찾았다.
사신은 “이 말은 크기와 생김새가 같다. 어미와 새끼를 가려 내보라”고 문제를 냈다. 조정은 매일 회의를 했으나 묘안을 찾지 못했다.
박 정승이 이 문제로 고민하는 것을 보고 노모가 말했다.
“그게 무슨 걱정거리냐. 나처럼 나이 먹은 부모면 누구나 안다.
말을 하루 정도 굶긴 후 여물을 갖다 주어라. 먼저 먹는 놈이 새끼 말이다. 원래 어미는 새끼를 배불리 먹이고 나중에 먹는다”
아들은 그 방법으로 어미와 새끼를 가려냈다. 그러자 당나라 사신은 고구려인의 지혜에 탄복하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박 정승은 임금께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고려장’을 철폐할 것을 진언했다.
그때부터 고려장은 사라졌다고 한다.
나는 정말 마지막 가시는 어머님을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 드려야 하나? 아무런 답이 없어 그것이 아픔이다.
어머님은 내게 있어 하나님 같으신 무지막지(無知莫知)한 맹목적인 사랑 그 자체다. 나의 어머님은 마치 찔레꽃 같으신 분이시다.
꽃의 여왕이라 일컫는 장미꽃은 원 조상이 찔레꽃이다.
20여 년 전, 찔레꽃 뿌리에 접붙임 하여 크고 아름답고 향기로운 우량 장미를 만들어 본 경험이 있는 나는 너무도 이 사실을 실감나게 잘 안다. 장사익의 이어지는 곡 ‘찔레꽃’ 을 들어보자.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 놓아 울었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
아!
찔레꽃처럼 울었지
찔레꽃처럼 노래했지
찔레꽃처럼 춤췄지
찔레꽃처럼 사랑했지
찔레꽃처럼 살았지
당신은 찔레꽃
‘찔레꽃’에 얽힌 가사의 역사적인 변천과정을 살펴보면 진한 감동을 더욱 느끼게 된다. ‘고향의 봄’을 쓴 동요작가 이원수(1911-1981)는 ‘찔레꽃’을 1930년 ‘신소년’ 에 기고했다.
찔레꽃이 하얗게 피었다오.
언니 일 가는 광산 길에 피었다오.
찔레꽃 이파리는 맛도 있지.
배고픈 날 따 먹는 꽃이라오.
광산에서 돌 깨는 언니 보려고
해가 저문 산길에 나왔다가
찔레꽃 한 잎 두 잎 따 먹었다오.
저녁 굶고 찔레꽃을 따 먹었다오.
(* 언니 : 예전에는 남자 아이가 형을 "언니"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원수의 찔레꽃은 가수 이연실이 새롭게 번안(飜案)하여 불렀는데, 박태준의 우리 귀에 낯익은 ‘가을밤(기러기)’ 멜로디를 그대로 빌려서 발표하여 큰 인기를 누렸다.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 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 먹었다오
밤 깊어 까만데 엄마 혼자서
하얀 발목 바쁘게 내게 오시네
밤마다 보는 꿈은 하얀 엄마 꿈
산등성이 너머로 흔들리는 꿈
배고픈 어린 시절, 아카시아 꽃이나 찔레꽃을 따먹어본 사람은 이 노랫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금방 알 것이다. 우리들의 엄마가 바로 찔레꽃이었다는 사실을 느끼고 눈물짓지 않을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또다시 이어지는 장사익의 노래는 ‘허허바다’다.
찾아가보니 찾아온 곳 없네
돌아와보니 돌아온 곳 없네
다시 떠나가 보니 떠나온 곳 없네
살아도 산 것이 없고
죽어도 죽은 것이 없네
해미가 깔린 새벽녘
태풍이 지나간 허허바다에
겨자씨 한 알 떠 있네
(* 해미(海味)는 바다 위에 낀 아주 짙은 안개)
1995년 47세의 늦은 나이에 우리 가요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장사익 씨는 가수라기보다는 인생의 심연을 드려다 보는 그리고 누구나 쉽게 들을 수 있지만 누구도 못하는 특유의 소리영역을 만들어 가지고 영혼을 흔들어 대는 연금사 같다.
인생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허허바다와 같다고 노래한다.
아무리 사랑하는 어머님이라 할지라도 자식 된 도리로서 아무것도 해드릴 수가 없다. 마지막 가시는 어머님을 위해 해드릴 수 있는 일이 라고는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음식을 드릴 수도 없고 물 한 모금 맛보게 해 드릴 수도 없다. 모든 것이 철저히 무능하다.
운명적으로 죄 아래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이것이 안타까운 아픔이요 고통이자 슬픔이다.
어머님을 위한 기도를 매일같이 해드린다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 기도조차도 나 자신에게는 그 어떤 실효성이나 능력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오직 하나님만이 어떻게든 하실 일이다.
여타의 잡다한 기도는 입에서 잘 나오지도 않는다. 다 부질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오직 한 가지 소원만 남을 뿐이다.
긍휼하신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고, 그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셔서 구원해주시기만을 구하고, 부활 영생 천국에서 사실 수 있기만을 바라는 것이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어머님 어여삐 보시고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언제 어디서나 어머님과 함께 하시고 은혜 베푸사 구원해주시고 천국가게 해 주시옵소서. 이 못난 불효자식 위해 모든 것 다 바쳐 지금까지 고생하시며 낳아 키워주시고 사랑해주시고 헌신하는 삶을 살아 오셨사오니 이를 기억해주시옵소서. 그리고 일평생 천국복음을 위하여 헌신 봉사하는 삶을 살아 오셨사오니 모든 허물과 죄를 덮어주시고 긍휼을 베푸사 임종하실 때 고통 없이 평안하게 하시고 제발하나님의 자녀삼아 주시고 천국에 이르러 아버지와 함께 영생에 참예하시는 복되신 어머님 되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시옵소서!
사랑합니다. 어머님. 어머님 주신 사랑, 영원히 잊지 않고 간직하겠습니다......”
2015. 3. 23. 불초소생 염 소망 올림.
*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아버지는 사랑으로 자식을 먹이고 입히고 키운다.
어떤 경우에도 자상하고 자비롭다.
우리는 모두 아버지 품을 떠난 고아였으나
하나님은 우리를 불러 여전히 자식으로 대접하신다(시 68:5).
* 하나님께서 인생을 위하여 행하신 일들을 보라.
특별히 내 영혼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볼 때
그 일을 선포하지 않을 수 없다(시 66:16).
* 하나님과 사람은 거부할 수 없고
피할 수 없는 질긴 인연으로 맺어진 존재다.
이처럼 아름답고 영원한 관계는 없다.
하나님은 진리의 말씀으로
나를 낳으신 아버지이시다(약 1:18).
* 친자 확인 소송이 가끔 제기된다.
한 올 머리카락, 작은 혈흔만 있어도
정확한 입증이 가능하다.
하나님과 인간이 부모 자식 관계라는 것,
사실 관계라는 증거는 무수히 많다(마 6:9; 렘 1:5).
*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언제나 잊지 말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벧후 3:8-9; 시3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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