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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우리의 부모님들, 이 세상에서의 임종을 앞두고 천국을 소망하며
근심하고
애쓰시는 모든
분들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 본
글은 말숨산문집 제 8권 '사명이 있는 자는 죽지 않는다' 의 마지막 추가원고 입니다. : 제1부 (5)
우리 한국사회는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어 노인복지 문제가 심각한 큰 이슈로 등장했다. 머지않아 너 댓
명이 노인 한 분을 건사(巾?)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 한다니 이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나의 어머님은 지금까지 85세를 사시면서 그 힘든 병상생활로 오늘 내일 하고 계신다. 어머님 평생에
손발이 다 닳도록 그토록 헌신하신 사랑이 또 어디 있을까. 내가 비록 그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른다할지라도 어머님 가슴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다칠까봐 노심초사하셨고 그저 내가 잘되기만을 진실로진실로 바라시고 하늘을 우러러 빌고 또 비셨다.
어머니의 일생은 도저히 먹을 수 없는 그 어떤 것도 통째로 삼키고 소화하여 여전히 새것으로 만들어내는
용광로 그 자체였다. 무쇠나 바위 그 어떤 것도 녹여내어 시뻘겋게 분출하는 마그마(magma) 그것이었다.
이런 어머님 앞에 자식은 어떻게 해도 고개를 들 수 없는 죄인일 수밖에 없다. 하늘같고 바다 같은 그
사랑을 받았을 뿐 만분의 일도 갚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그 누구도 선뜻 답을 내놓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지켜보는 가족 모두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쳤다고 볼멘소리를 하기 일쑤다. 그저 안타깝고 죄스럽고 안쓰러울 뿐이다.
암 병동이나 완화병동에 가보면 대부분이 죽음을 목전에 둔 노인 분들이다. 사람은 특별한 사건
사고사(事故死) 이외에는 모두가 이렇게 될 운명을 벗어날 길이 없어 보인다. 손이 시퍼렇게 붓도록 수액 주사를 맞고 심하면 산소 호흡기를 끼고
콧 줄로 연명을 하고 밤낮없이 끙끙 앓다가 어느 날 갑자기 숨이 멎어 죽는 존재가 다름 아닌 우리 인간, 그것도 나 자신인 것이다. 누구나
통과의례처럼 한 번은 겪어야 될 임종(臨終)!
그것은 머지않아 내가 치룰 나의 문제다.
나는 누가복음 2장을 읽으면서 시므온과 안나 라는 사람을 다시 한 번 보게 된다. 이들은 모두가
구세주의 탄생을 사모하고 또 사모했던 믿음의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죄와 저주와 죽음의 그늘 아래 사는 인생의 고통과 허무를 보았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해 줄 그리스도가 오셔야만 궁극의 해결책이 된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알고 있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할 메시야의 탄생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결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절대로 죽을 수 없다는 하나님의 섭리가 이들에게는 은총으로 주어졌던 것이다.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인 아기 예수를 수많은 천군 천사들이 찬송하기를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라고 했다.
그때 예루살렘에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던 시므온이라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는데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갔을 때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할례를 행하고자 왔을 때 아기
예수를 자기 품에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기를 ‘주재(主宰)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 이니이다(눅2:29-32) 라고 축복했다. 그리고 나서
마리아에게 이 아기 예수의 미래 사역에 대한 예언적인 말씀을 주었다.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눅2:34-35).
이 아기가 장차 많은 사람들에게 비방 받는 표적이 되고, 칼이 어미의 마음을 찌르듯 할 것이라니
이것이 어떻게 기껏 고생하여 낳은 어미에게 줄 수 있는 축복의 말이 될 수 있으며, 지금 이 순간 합당한 말이 될 수 있는가? 너무도 어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기이하고 섬뜩하지 않는가. 그러나 이 말씀은 메시야의 생애를 함축하고 있는 깊은 뜻이 숨어있는 귀한 말씀이다. 세상의 빛과
어두움, 선과 악을 판단하는 구세주의 궁극적인 사명과 이를 이루기 위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적인 표현으로 예시(豫示)한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가 된 84 세 ‘안나’ 라는 여
선지자는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밤낮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겼는데 마침 아기 예수를 만나게 되어 구원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에 대하여 명확하게 예언함으로 그 일생을 마치게 된다(눅2:36-38).
이것이 숭고한 인생이라면 그 삶 속에 있는 죽음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것일까?
우리 가족은 어머님의 현 안타까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할까에 대하여 무수히 많은 언쟁을 했고, 얼굴을
붉히는 언잖은 일까지 있었다.
심히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단의 교통정리가 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마음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서 궁여지책으로 이런 문자를 보내야 했다.
【엄마 간병하느라 수고가 많다. 그런데 하도 의견들이 분분하고 이 말 저 말, 왔다 갔다 해서 다시
한 번 마지막으로 나의 의견을 올린다.
오늘 날 의학계에서는 안락사(安樂死) 문제까지도 그 정당성 여부가 논의되고 있다고 한다.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를 고도의 의술로 가족들이 강제로 생명을 연장시킴으로 오히려 환자가 더 괴로워지고 심지어는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죽을 권리마저
침해당하고 박탈당하는 이것이 과연 올바르냐 하는 것이지요. 그것의 시시비비(是是非非)야 어떻든지간에 나의 관심은 엄마가 구원받아 속히 괴로운 이
세상에서 자유롭게 풀려나서 해방되는 그것에 있다. 이를 두고 엄마가 속히 죽기를 바라는 불효자식 아니냐고 험악한 말을 함 부러 내뱉는 사람도
있는데 제발 그런 식으로 생사람 잡지 말기를 바란다. 감정적으로 일을 하면 모두가 힘들고 어려워진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누구도 죽음이라는
관문을 통과하지 않고는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는 없다는데 있다.
더 이상 사셔봐야 낙이 없다면 자연의 순리대로 따르는 것이 엄마에게도 좋고 우리에게도 좋을 것 같다.
오죽했으면 나 자신이 이런 상황에 놓이면 스스로 곡기를 끊고 할렐루야! 하면서 천국행 티켓을 끊는 편을 선택하겠노라고 했을까를 깊이 생각해주기
바란다.
실제로 나는 그런 믿음으로 살고 있지만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것은 나 개인에 국한된 제한적인 견해이지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는 가족이니까 진지한 논의를 거쳐서 가장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과부된지 84년 된 여 선지자 ‘안나’는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로 금식하며 메사야의 오심을
기도함으로 섬겼는데 그가 예수를 보고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은즉 이제는 말씀하신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주시는도다 하면서 임종했다. 이것이
주님을 확실하게 아는 사람의 결말이다. 엄마의 경우도 이와 다르지 않다. 치료시켜 소생시키느냐에 초점을 두느냐. 아니면 주님 품으로 편히
보내드리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취할 대응책은 달라질 수 있으며 그것의 최종 판단은 우리의 바람 이전에 엄마가 처한 객관적인 상황이 어떤 것이냐가
결정해주는 것이다. 엄마의 현 상황은 하나님도 어쩌지 못한다는 노환이라는 점을 먼저 이해해주기 바란다. 노환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자연의
순리요 그것이 곧 하나님이 정하신 뜻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엄마를 편히
하나님 품으로 모셔드리는 길이 더 낫고 지혜로운 것 같다. 그렇다고 한다면 주사약이니 고통을 더해주는 내시경이니 뭐니 하는 복잡한 말들은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엄마의 현 상황이 어떠냐에 따라서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그 방향 또한 정해져야 한다. 나약한 감정에 치우지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직시하고 심사숙고하여 결정해주기 바란다.
나는 어찌되었든 모두가 결정해주는 대로 따를 것이다.
더 이상 다시는 내 의견 같은 것은 내지 않을 것이다.】
이런 내 의견에 대해서 나는 한때 반대 입장에 부딪혀서 곤혹스러웠지만 막내 여동생의 다음과 같은
문자를 대하고 어느 정도 숨을 고를 수 있게 되어 감사한 마음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는 자녀요 성도들입니다.
부모님을 섬기는 것도 주님의 말씀과 방향에 맞게 섬기는 것이 우선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인생은 본향(本鄕) 즉 천국티켓을 향한 심판의 시간이요
이 세상이 끝이 아니라 정작 가야 할 천국 문으로의 시작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은 통곡할 일도 아니고 예수님 잘 믿다 소천(召天)하는 일은 나이와 상관없이 결국
우리도 소망하고 가야 할 길입니다. 구약시절 남들 수백 살을 살 때 에녹은 절반 정도의 365 살을 살다 하나님께로 들려올라갔습니다.
엄마는 하나님이 허락한 천수(天壽)를 누리셨으며 발달한 의학의 힘을 빌어 지금 조금 더 연장선을
서비스 받고 계신 것일 것입니다. 내시경을 하고 심폐소생술을 하고 콧 줄을 끼고 .... 여러분들은 그 모든 것을 효(孝)의 이름으로 다했을
경우 엄마를 더 사실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삼키는 것조차 자기 의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엄마는 좀 더 사는 것을 다행이고 행복이라
여기실까요?
엄마한테 의술을 적용시키는 것이 마치 살리는 일이고, 그렇지 않으면 죽이는 일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습니까? 이제는 천국 소망 하늘 소망이라는 것을 감상적으로 생각할 때가 아니고 현실적으로 객관적으로 적용할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엄마의 현실은 이생의 소생보다 이미 천국 문과 너무 가까이 가버려 있고 그곳은 고통과 슬픔과 이별이 없는 정작 우리가 가고자 하는 진정한 참된
집이기 때문입니다.
각자 우리가 자녀 된 위치가 아니라 각 자녀들의 부모로써 지금 현재 내가 엄마 자리에 있어 신음하고
고통 하는 위치라면 여러분들은 자녀들에게 무슨 수를 다 써서라도 나를 살려 효를 행해다오.... 청할 수 있는지를 가정해서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엄마를 모든 수를 다 써서 소생시키는 것이 내 감정을 기준으로 하는 것인지 엄마 입장에서 하는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하십시오.
살리고 죽이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마치 나의 노력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입니다.
엄마는 자녀들이 당신 때문에 이렇게 분분해하고 있다는 것을 아신다면 당장이라도 혀를 깨물고라도 죽고
싶어 할 것입니다.
가장 힘들어하고 있을 엄마에게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선물이 무엇인지를 고려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발 죽음이 무슨 날벼락 같은 난리라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천국의 의미와 그곳에 가려면 마땅히 거쳐야할 단계를 순수하게 그리고 감정을 계산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십시오. 우리의 몫은 엄마의 사랑을 그리워하고 아쉬워하고 살아생전 존경할 만한 인격과 베풀어주신 사랑에 감사하고 본받을만한 것들을
기억하며 따르는 것 뿐 입니다. 그리고 자녀들이 화합해서 잘 살아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뭐하고 있습니까?
조금 가치기준과 생각의 방향이 나와 다르다고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고 의리 상해하고 .....
이제 엄마한테 정말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선물을 생각해 봅시다.】
사랑하는 어머니!
저도 잠시 잠깐 후에 선조들의 뒤를 따라가게 될 것입니다.
그때에 우리 모두 “천지의 주재시여! 이제는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기쁨과 감사로 고백 하면서 안도의 숨을 쉬고, 주님 품에 안겨 영원토록 하나님과 떡을
먹으며 안식하고 싶습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영원히.....
2014. 11. 12. 불초소생 올림.
* 우리는 언젠가는 하나님 안에서
조상들과 함께 눕는 자가 된다.
죽어서도 하나님을 모르는
애굽에 묻히기를 원치 않고,
신앙의 혈족이 묻혀있는
선영에 묻히고 싶다(대하21:1).
* 여호와의 명을 받는 다는 것!
천지의 대 주재(主宰)가 되시고,
가장 높으신 분의 명을 받아 산다는 것!
가장 수준 있고 품위 있는
아름다운 삶이 아닌가!(시147:15-19)
*
우리는 하나님이 심으신
의의
나무들이다.
의의
면류관을 약속받은 우리는
얼마나
명예롭고 영예로운 하나님 나라의 보배들인가!
여호와의
이름을 세상에 나타내고
여호와의
업적을 후세에 전하고
여호와의
뜻을 선포하는 하나님의 선택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큰 백성이다.
숫자가
많거나 강력한 힘을 갖아서가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은혜를 힘입어서다(신7:7, 사61:3).
*
함께 갑시다. 내 아버지 집.
참된
사랑 있는 곳.
어둠이
없고 항상 빛나는 곳.
참된
평화와 기쁨이 있는 곳에(요14:1-3 사35:1-10)
*
띠가 사람의 허리에 속함같이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여
그의
백성이 되고
그의
이름과 칭예와 영광이 됨을
최고의
가치로 알자(렘13:11).
*
모든 인류는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혈육,
인종, 민족, 국경을 초월하여
‘하나’라는
인식은
성경이
가르쳐준 가장 뛰어난 깨달음중의 하나다.
(엡1:9-10
행10:45 행14:15-18 17:2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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