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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음으로 역사가 1mm만 전진할 수 있다면
나의 대학 시절과 젊은 목회시절에 나를 고민하게 하고 몰두하게 했던 주제는 단연 하나님과 역사의식(歷史意識)의 문제였다. 그 시기는 군부독재가 판을 치던 시대였고, 사회적으로도 이념 논쟁이 치열했던 때였다.
유신체제에서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제5-6 공화국의 정통성을 근본적으로 인정할 수 없어 고민해야 했고, 우리 땅 역사의 모순된 현실과 하나님의 나라 사이에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간격과 괴리감 그리고 풀리지 않는 답답함에 때로는 좌절하고 때로는 울분으로 항변하기도 했지만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은 없는 것 같아 그것이 더욱 나를 괴롭히는 것이었다.
암울한 시대를 변혁 하고자 하는 시국 양심선언 성명서 한 장 때문에 멀쩡한 사람이 몇 년씩 철창에 갇혀야 했고, 때로는 목숨까지 빼앗기는 일이 어디 한, 두 번 이었던가. 하나님은 역사의 현실을 그저 침묵으로 바라볼 뿐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시는 것 같고, 또한 현실의 아픔을 옆에서 지켜볼 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내 자신이 한없이 미웠던 것이다.
그 당시 나 스스로에게 수없이 되물었던 질문 하나가 있다.
"내가 죽음으로 우리 역사가 1mm만이라도 전진할 수 있다면, 나는 과연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라는 것이 그것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그 언제나 있어왔지만 역사가 치룬 희생의 대가에 비하면 너무도 발전의 속도는 더디고 미미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아직까지도 억압과 착취, 노예제도나 인종차별 같은 만행이 만족 수 있을 만큼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이만큼이라도 발전적으로 개혁될 수 있었던 것은 수 천 년에 걸친 선구자적인 역사의식과 죽음으로 맞서 싸운 피의 결과물인 것이다.
지금부터 108년 전, 1906년에 청년 안중근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다. 안중근의 어머니 조 마리아 여사는 사형을 앞둔 아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안중근의 나이 불과 서른두 살, 3남 1녀의 맏아들로 황해도 부잣집에서 태어난 신동이었다.
"네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하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한 사람 것이 아닌 조선인 전체의 공분(公憤)을 짊어진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건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나라를 위해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大義)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아마도 이 어미가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네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다시 만나기를 기대하지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세상에 나오너라"
이후 네 달 만에 안중근은 사형 언도를 받았다.
안중근은 항소를 하지 않고 어머니가 편지와 함께 보낸 흰 옷을 입고 순국했다. 이런 참 신앙의 진리(道)를 아는 어머니가 계셨으니 훌륭한 아들이 탄생한 것 아니겠는가.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간절하다 못해 비통한 어조로 거듭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나와 함께 있을 수는 없더냐? 하나님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내가 네 안에, 네가 내 안에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할 수는 없더냐? 내가 아버지를 위하여 죽는 것처럼 너도 나와 함께 고난을 받고, 나를 위해 십자가의 죽음을 죽을 수는 없겠느냐?
죽고자 하는 자는 살겠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것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나는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고 세상에 왔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반드시 죽어야 하리니 나는 진실로 죽기 위해서 세상에 왔다. 내가 죽으면 진실로 삼일 만에 성령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오를 것이니, 이로써 내 말이 참 진리인 것과 예수의 나라 곧 사랑의 아들의 나라가 영원한 진리의 나라, 영생의 나라임을 너희가 알게 될 것이다.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의 나라에 이르기까지 성령으로 너희와 함께 하리니 굳세고 담대하라.
보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내가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께서도 나를 영화롭게 하시리라.... ”
예수께서 자신의 죽음으로서 이루시고자 하는 아버지의 뜻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버지 품을 떠나 죄와 저주 가운데 있는 이 세상을 아버지 품으로 돌이켜서 아버지와 하나 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생명 곧 영생을 선물로 주시려는 것이다.
사자와 어린 양이 함께 뒹굴며 풀을 뜯고, 어린 아기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고 장난쳐도 물지 않는 그런 세상, 그 어떤 해함도 상함도, 억울함이나 어두움도 없고, 아픈 눈물이나 고통이나 죽음도 없는 나라, 해와 같이 빛나는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과 은혜로 다스림을 받는 그런 나라, 사랑의 아들의 나라 곧 영생의 나라 천국을 주시려는 것이다.
하늘 아버지의 뜻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의 영광인데, 아버지의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도 주셔서 사랑의 아들의 나라 곧 예수의 나라에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사시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다.
우리 주 예수께서 친히 보여주신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길은 자기를 비움으로서 채워지고, 낮춤으로서 높아지고, 부정(否定)함으로서 긍정(肯定)에 이르고, 자기를 죽임으로서 부활 영생에 이르는 영적인 길이다.
다가오는 천국은 세상 지혜나 세상 방식으로는 도무지 알 수 없고 깨닫지도 못하는 하나님의 영적인 나라다.
실로 우리는 목숨을 하나님 은혜로 거저 받아 태어난 존재다.
우리는 그 은혜를 절절이 생각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며 잘 살아야 한다. 그러나 이 땅에서 잠시 받은 목숨이니 썩어 없어질 육적인 헛된 욕심을 구하거나 죽기를 무서워 목숨을 구걸하거나 비굴하게 살 것이 아니라, 하늘 아버지의 뜻을 따라 거룩한 희생 제사(산제사)를 드림이 마땅하며,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영원한 생명의 길이다.
그런 뜻에서 아버지의 뜻을 위해 희생하고 죽는 삶은 최고의 영광이 아닐 수 없다. 나 한 사람이 썩어지는 한 알의 밀알이 됨으로 그 나라에 1mm만이라도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면 그것만이 불후의 영광으로 길이 남을 영적 유산이라 믿는 것이다.
* 내 맘에 주를 향한 사랑이
내 입술에 찬양의 향기가
두 손엔 주를 닮은 섬김이
내 눈에 주의 눈물 채워 주소서.
(마20:28.마23:11)
* 하나님께 가는 길은
자기를 버리고 낮아지고
죽고 비우고 부정함으로써
살고 얻고 높아지고 채워지고 긍정에 이르는
자기 비움의 길이다.
(빌2:5-6요12:24마16:24-25.18:4.20:26-28)
*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
죄가 있는 이 세상 질서로는
도무지 알 수 없다. (마22:30)
* 내 안에 있는 죄성을 없애야
모든 갈등에서 자유로와 진다.
똥이 있는 한 똥파리는 쫓아지지 않는다.
(벧후2:10-16. 19-22 . 마7:16-19 마12:33-37)
* 화창한 햇볕 녹는 눈
나뭇가지에 흐르는 푸른빛 물기
아 ! 봄의 문턱인가 할렐루야 (시147:16)
* 사랑 합니다 나의 하나님.
사랑 합니다 아주 많이요
그것 뿐예요
사랑 한다 내 아들아
내가 너를 잘 아노라.
(요2:24-25 요10:27 요21:15 롬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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