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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을 남긴 김현봉 목사
세월호가
침몰하는 순간 생각 있는 사람이라면 “대한민국도 함께 침몰했다!”고들 합니다. 21세기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섰다는 우리나라 가 수 백 명의
사람들, 그것도 이 땅에 태어나 아직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한 가녀린 학생들이 배에 갇힌 채 살려달라고 애타게 절규했지만 우리는 그저 지켜만
보면서 발만 동동 구를 뿐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어른
된 것이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다고 합니다.
나
또한 비통한 심정으로 이런 고백들에 공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순식간에 그 아까운 수많은 인명을 단순히 잃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여기에는 우리 사회의 병든 자화상(自畵像)이 총체적으로 들어있고, 더욱
어처구니없는 것은 우리 기독교계의 차마 얼굴을 들 수 없는 부끄러움이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 중심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한 구원파 교주 유병언이 있습니다. 세속적인 탐욕의 종이 되어 돈이면 다 된다는 식으로 정치, 경제, 사회
까지 주물러 초법적으로 배를 제멋대로 뜯어고치고, 선원들을 착취하고.... 결국 그 결과가 이런 참담한 아픔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서 개인의 사리사욕이나 채우는 이런 행태는 온갖 저주와 고통을 불러들인 것 아니겠습니까.
도대체
하나님 이름을 부르고 구원을 말 한다는 사람이 은닉된 수십억 돈다발은 무엇이며, 숨겨진 권총 5자루는 또 무엇입니까?
이런
것들은 무엇을 하자고 준비된 것들입니까?
하늘의
사랑과 은혜 그리고 구원과는 너무도 섬뜩할 정도로 다르지 않습니까?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의 타락과 다가오는 멸망의 심판을 내다보고 애통하며 눈물로 지내야 했습니다.
그에게는
진정한 애국심과 동족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심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그렇게 되면 살륙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곡읍 하리로다’(렘9:1).
그러던
어느 날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너는 내가 누구에게 보내든지 갈 것이며, 내가 무엇을 말하던지 가감하지 말고 그대로 전하라’(렘1:7)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는
그 순간부터 예언자로서 시대정신을 대변하고 표현하는 상징적(象徵的)인 몸짓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세인들에게
때로는 미친 사람처럼 보여 멸시와 수모를 당해야 했고, 자신의 행복 추구권이 박탈당하는 아픔과 배신자요 반역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옥에 갇히는
고통도 감내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너는 아내를 취하지 말며 자녀를 두지 말라. 너는 잔치 집에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앉아 먹거나 마시지 말라.
너는
상가 집에 들어가지 말라. 가서 통곡하지 말며 그들을 위하여 애곡하지 말라”는 특별하고 기이한 말씀도 받았습니다(렘16:1-11).
이
모든 기이한 행동들은 시대를 상징하는 몸짓이었던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 시대 특히 우리 기독교계에도 이런 상징적인 몸짓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이 한없이 그리웠는데 나는 뜻밖에도 하나님 은혜로 지난 한 주간에
박00 목사님의 권유하심으로 ‘신촌 예배당’에서 개최하는 사경회에 참석했다가 그런 상징적인 몸짓으로 살아가고자 애쓰시는 귀하신 강00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강
목사님을 가르치신 스승은 고 안병모 목사님이셨고, 안 목사님을 가르친 스승은 고 김현봉 목사님이십니다. 스승과 제자는 하나이기 때문에 스승을
보면 제자를 알 수 있고, 제자를 보면 스승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한다고 할 때 궁극의 목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닮아 하나님
아버지처럼 온전해지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나타내신 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시고, 오늘 우리 삶에 하나님을 나타내시고 진리로 가르치시는 분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오신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이시고, 성령님께 배우고 가르침 받은 사람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을 나타내는 복된 삶을 살게 됩니다.
말하자면
스승과 제자는 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속적인
물질과 향락주의가 순수해야할 신앙을 변질시키고 오염시키는 이때에 평생 예수님의 청빈과 순결로 목회하신 김현봉 목사님의 고결한 신앙과 아름다운
삶을 조금이라도 배울 수 있다면 오늘의 우리 교회와 사회는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고 크게 변화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아 여기 소개해 올립니다.
(한국기독교 120년 숨은 영성가를 찾아: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중목사’ 김현봉 참조):
우리나라
기독교 최초 선교사가 들어오던 1884년 경기도 여주군 가내면 건장리에서 김현봉은 태어났다. 아주 어릴 때 서울 서대문으로 이사하여 살게
되었는데 김 목사가 기독교인이 된 것은 22살 때였다.
그는
양정의숙 법과를 졸업한 뒤 교사 생활을 하면서 일제하 조선의 학생들에게 애국심을 고취시키다가 1910년 8월에 한일합방이 되자 ‘조국을 위해’
무엇인가 하고 싶은 생각으로 많은 날들을 고민하던 애국청년은 1912년 월남 이상재의 소개장을 받아 가지고 중국 서간도 땅으로 건너갔다. 교포
2세를 위해 한국학교를 세워 한국 역사를 가르치고 다시 러시아 영 삼위로 옮겨 학교를 세우고 한국말과 한국역사를 가르쳤다. 중국으로 떠나 간도와
러시아 등에서 11년간 망명생활을 했는데 1923년 귀국하자마자 체포돼 투옥되었다. 그런데 그는 옥중 생활 중 뜨거운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고,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위해 구체적인 구상을 하게 되었다. 사회개혁 이전의 문제 즉 하나님을 만나 구원을 경험하는 영적인 변화 없이는 인간에게는
궁극의 해결점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석방된 뒤 그는 평양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44살 때 16살 연하의 세브란스 간호사
박천선을 만났다. 얼굴이 얽었던 그의 아내는 병으로 이미 자궁을 적출해 아이를 가질 수도 없었으나 그는 그런 아내를 택해
결혼했다.
1925년
일제는 남산에 조선 신궁을 건설한 것을 시발로 해서, 1930년 들어서서부터 신사참배를 강요하게 되었다. 이들의 압박에 못 이겨 1938년
제27차 장로회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가결하게 되자, 큰 충격을 받고 김현봉 목사는 ‘자신과 교회를 어떻게 해야 바르게 살 수 있을까?’라는
제목으로 기도하던 중 십자가의 신학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스스로 낮아지고 스스로 고난을 짊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몸에는 철저하게 누더기를 걸치고, 궂은 음식을 먹고, 머리를 밀어버리고, 고무신을 신고
가장 낮은 자의 생활을 시작하였다.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생활 하였다. 교회에는 간판, 종, 종탑, 십자가, 의자, 성가대, 악기, 장로가 없었다. 목사 자신이 검소한 옷을 입고
다니기에 교인들 역시 사치한 옷을 입는 사람이 없었다.
그가
아현교회를 개척한 48살 때인 1932년이었다.
김현봉
목사는 한 때 공덕교회에서 기성교회 목회를 했다. 공덕교회에 홍 장로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아들은 집사 일을 보고 있었는데 아들이 성수주일을
하지 않는 등 제멋대로 신앙생활 하는 것을 보고 여러 번 권면하였으나 듣지 않으므로 장로와 다투기도 뭐하고 하여 자신이 사임하고 새로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는데 그 교회가 저 유명한 아현 교회다.
마포구
아현동 굴레방 다리 근처 공동묘지 터에 빈민촌이 세워졌는데 그곳에서부터 7명 교인과 함께 교회를 개척하였다. 닭장을 개조하여 집을 만들어 예배를
드렸으며 계속 가난한 자들과 함께 검소하게 살았다. 서울 마포구 아현2동 354-21 아현교회는 1960년대 초까지 만도 영락교회와 함께
서울에서 가장 신자가 많았다. 하지만 아현 교회는 멋진 예배당도 교육관도 목사관도 없었다. 날로 늘어나는 신자들이 예배당에 들어오지 못하면
예배당 밖으로 지붕만 얹고 의자를 놓아 예배를 보게 했다. 그렇게 늘리고 늘린 교회는 마치 기운 누더기 같아 그 주변 200여 채의 판잣집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현 교회의 그런 모습은 가난 때문이 아니었다. 아현 교회는 그 일대 판자촌의 상당수를 소유할 만큼 재정적으로 풍족했다.
그런데도 교회는 건물을 짓는 데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대신 판잣집을 사들여 집 없는 교인들에게 나누어 살게 했고, 먹고살 길이 없는
교인들에겐 뒷돈을 대줘서 소금이나 고무신, 생선 장사를 해서 먹고살게 했다.
그런
교회를 만든 이가 바로 김현봉(1884~1965) 목사였다.
작은
키, 땅땅한 몸매에 눈매가 매서웠던 그는 언제나 머리를 삭발하고 있었기에 ‘중목사’로 불렸다. 그런 김 목사를 따르던 사람들은 신촌 창광교회와
염천교회, 신촌교회 등을 세워 그 뜻을 잇고 있다.
6.25가
발발하자 김 목사는 삼각산에 들어가 39일간 금식하며 기도하였다. 기도 중 회개기도가 터져 15가지 이상의 죄를 하나씩 고백하며 크게 은혜 받은
체험이 그의 목회생활에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
이후로
교회가 크게 부흥되기 시작 하였고, 원고 설교에서 영감 설교로 바뀌어 설교 중에도 하나님의 영감이 계속 임했다.
전쟁
후에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이 너무 많이 생기게 되자 사회 복음화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 봉사와 구제 사업을 펼쳐 나갔다.
70의
나이에도 상관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대로 토요일에는 쌀밥과 고기 국을 끓여 배고픈 이웃을 대접하였다. 그래서 아현 교회에는 주일날 시내의
거지들이 다 모여들었다.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한 줄로 서게 하고 100원씩 주어서 보내기도 했다. 이때 교인수가 500명을 넘어섰다.
그는
기독교의 형식주의, 교권주의를 배격하는 동시에 교회건물을 크고 화려하게 짓는 일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교인이 늘어나면 자기가 손수 교회의 벽을
헐고, 예배당을 넓히면서 지붕도, 벽도 손수 쌓아 올렸다. 건물의 미관엔 관심이 없었고, 창문을 많이 내어 다만 위생적으로 태양 광선이 잘
들고, 예배드리기에 불편하지만 않으면 되었다. 교회가 산비탈에 있었기에 늘 정과 망치를 들고 바윗덩이를 일일이 깨 가며 예배장소를 확장했고,
기둥이 많아 일명 ‘기둥 교회’, 초라하여 ‘누더기 교회’라는 별명이 있었다.
주일날
예배를 드리고 나오는 교인들을 보면 어느 피난민 수용소나 거지 떼들이 흩어져 나오는 광경 같았다. 그러면서도 전 교인이 십일조를 드리게 하고
연보는 김 목사 자신이 관리를 했는데, 그는 자녀가 없었기에 한 푼도 자신을 위해 쓰지 않고 오직 전도와 구제하는데 쓰기에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모든
헌금은 진정한 영혼을 길러 주기 위해 수고하는 인근 교역자들과 신자들을 구제하는 일에 사용되었다. 그는 어떤 교단에도 들어가지 않고 독립교회로
있었다. 목사의 사례금은 교회에서 정해지지 않고 목사의 생활을 위해서는 별도로 연보함을 만들어 교인들이 자유로이 넣도록 했다.
주일날은
오전 예배를 마치고 사모가 국수기계로 손수 만든 밀국수를 전 교인에게 대접했고, 잠시 쉬었다가 오후 2시에 저녁예배를 드렸다. 결혼식은 교회에서
사경회 하는 도중 쉬는 시간에 신랑 신부가 평소 입던 옷 그대로 불러 앞자리에 세우고 “잘 살겠소?” 하고 묻고 기도해 주면 끝이었다.
김
목사는 자신이 길가에 나가 노방전도하고 교인을 늘려갔다.
다른
교회에서 불만이 있어 찾아오는 떠돌이 교인은 받지 않고, 친히 자기 손때를 묻혀 자기 나름대로의 독특한 교회를 만들어가며 성장을 시켰다. 70세
넘어 81세 별세할 때까지 그의 목양 일은 계속 하였는데 교인수가 1200명까지 되었다.
예배는
두 시간이나 길게 드리는데도 교인들은 모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남자 성도들은 김 목사처럼 머리를 삭발하고 바지저고리 입는 사람이 많았다. 김
목사는 키가 작으며, 삭발하고 항상 검은 두루마기에 검은 고무신을 신고 다녔기에 그의 별명이 “중 목사”라 했다.
김
목사는 후배를 기르는 일에 무척 애를 써서 그의 영적 감화를 받고 김 목사를 따르던 목회자들과 청년들이 많았다. 그중에 이병규(신촌),
백영희(부산 서부교회), 안병모, 이한영, 안길옹(알래스카에서 개척교회) 등이 있다.
김
목사가 별세할 때까지 10여 년 동안 전도사로서 보좌했던 이경자(78) 전도사의 증언을 들어보자. 나이를 가늠키 어려울 만큼 젊은 이 전도사는
김 목사에 대해 “얼굴에서 언제나 사랑이 지글지글 끓었던 ‘사랑의 사도’였다”고 전한다.
김
목사의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 김 목사만큼 하나님과 단둘이 만나는 기도의 시간을 많이 가진 사람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는
오후 6시만 되면 잠자리에 들어 밤 12시에 일어나 묵상을 했고, 새벽 통행금지 해제 사이렌이 울리면 곧바로 연세대 뒷산에 돌로 만들어놓은
기도실로 올라갔다. 그는 그렇게 아침 해를 바라보며 점심 무렵까지 깊은 황홀경에 잠겨 있곤 했다. 김 목사의 기도의 삶을 따라 그대로 실천해온
창광교회 이병규(83) 목사는 김 목사가 “세상을 보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만 살았다”고 회고했다.
나중엔
아현 교회의 수많은 신자들까지 김 목사를 따라 나무 하나씩을 정해 그 밑에서 정좌한 채 명상에 잠겨 연세대 뒷산 일대는 장관을 이뤘다. 김
목사는 교회에서도 소리 내어 기도하지 못하게 했다. 그는 동네에서 방앗간 하나 놓으려고 해도 동민들의 허락을 받기 전에는 못 놓는 법이라면서
기독교인들이 이성을 잃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든 상관없이 부흥회라고 떠들고 소란스럽게 해 이웃 주민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도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찬송은
하나님과 연락해서 영혼으로 부르는 것이지 자기 육체가 흥분하자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고요히
하나님과 교통하는 가운데 회개해 양심을 찾아 자신을 만들어야한다는 게 그의 가르침이었다. 그는 누구든지 자기가 된 만큼 밖에 남을 만들지 못하는
법이니 요는 나 하나 만드는 일이 급선무라고 했다. 내가 바로 서지 못하고 누구를 바로 서게 하겠느냐는 것이다.
김
목사는 산에서 내려오면 곧바로 교인들에게 심방을 갔다. 방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안부를 여쭙는 문전 심방이었다. 대신 살림이 어려운 교인들
집에선 방에 들어가 연탄불을 지피고 있는지 바닥을 만져보고 쌀독을 들여다본 뒤 도움을 주곤 했다. 그는 늘 안주머니에 돈을 가득 담아 갖고
다니면서 즉각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주었다.
그러나
정작 자신에겐 돈을 쓰지 않았다. 평생 교회 지하의 방 한 칸에서 지낸 그는 고기도 먹지 않았고, 세 가지 이상의 반찬을 놓지 못하게 했다.
옷도 두루마기만 입고, 고무신만 신었기에 달리 돈 들 일이 없었다. 아현 교회에선 허세는 통하지 않았다. 교회도 그렇거니와 신자들의 사치도
허용되지 않았다. 남자들은 대부분 삭발했고, 여자들은 파마도 하지 못하게 했다. 결혼식도 20명 이상 참석하지 못하게 했다. 신자가 세상을
떠나면 24시간이 지난 뒤 김 목사가 예배를 올린 다음 손수 시신을 손수레로 끌고 가 화장을 했고, 아이가 죽어도 김 목사가 직접 지게에 지고
가 산에 묻었다.
1965년
그가 숨을 거두자 교인들은 그의 뜻에 따라 시신을 손수레에 싣고 가 화장했다. 그러나 울지 말라는 그의 뜻을 지키는 교인은 없었다. 1200여
명의 교인들은 손수레를 따르며 통곡했다. 말만이 아니라 삶으로 보이는 목회자를 이제 어디서 다시 찾겠느냐는 눈물이었다.
김현봉
목사님의 목회 방침과 교훈의 특징을 좀 더 소개해 올립니다.
(1)
목회 방침
1)
찬양대, 학생회, 청년회를 특별히 두지 않았다.
2)
주일성수 강조
3)
자발적 연보 가르침(헌금, 선행은 하나님만 아시도록 비공개)
4)
친목회, 야외예배, 망년회, 찬양 새벽 송, 어머니주일, 약혼식폐지
5)
국산품 애용 강조
6)
삼분설 주장(영, 혼, 육)
7)
천국은 다 평등이 아니다(천국에서는 큰 자와 작은 자가 있다)
8)
목회, 치리, 재정, 유년주일학교, 심방 전담.
9)
한복을 즐겨 입으심.
10)
밥을 먹으라고 했을 때 먹었다고 하면 두 번 다시 권하지 않았다.
11)
하루 7-8시간 기도하셨다(15일을 앉아 계신 적이 있다고 함)
12)
점심은 항상 국수를 하시고, 국수를 대접하셨다.
13)
하루 수면 시간은 3-5시간뿐이다.
14)
오전 시간은 기도, 성경공부, 오후는 심방과 전도와 교회 일을 하셨다.
15)
장례는 리어카로 운반(심지어는 관이 없어도 무방)
(2) 교훈의 특징
1)
10대 특수 교훈
1
삼가하고 조심하라
2
양심을 똑바로 써라(양심과 말씀에 순종하는 정신을 가지라)
3
일심정력
4
구원을 이루라(성화구원)
5
명예, 영광심을 버리라
6
나 하나 만들라
7
사치하지 말고 검소하게 생활하고 풍속, 습관을 버리라.
8
지식중심주의를 버리고 믿고 실행하라.
9
인본주의를 버리고 신본주의로 살라.
10
개교회주의
2)
그밖에 강조하시고 가르치신 말씀들
1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기도하고 성경보고 묵상하라
2
예수 믿는 것은 남을 위하여 믿는 것이다
3
교회 직원 많이 내지 말라
4
참되고 진실 되고 정직하라. 옳고 착한 일을 하고,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고 용납하고 참고 견디고 덕을 길러라.
5
겉 사랑하지 말고 그 영혼에게 참 유익을 주는 참 사랑을 하라.
6
물질적 신앙적 자립정신을 길러라.
7
교회사업주의를 버리라.
8
결혼식 간소화
9
물질(돈, 전기, 의복, 음식, 건물)을 절약하고 남용치 말라.
10
자녀에게 어려서부터 믿는 도리를 가르치고 순종하는 법을 가르쳐라.
11
쉬운 것부터 믿고 실행해 나가라.
12
들어오는 대로 종횡으로 열을 맞추어 앞자리부터 앉아라.
13
마음을 모으고 정신을 가다듬고 고요한 장소를 찾아 기도하라.
14
이자놀이 하지 말고 계하지 말라.
15
강단을 꾸미지 말라(성경을 올려놓고 강도(講道)할 수 있으면 족하다).
16
예배시간을 엄수하고 약속을 지키라.
17
찬송가를 뜻을 생각하며 불러라.
18
혈기를 이겨라.
19
극장가지 마라.
20
우상의 제물, 피, 목매여 죽은 짐승 먹지 말라.
3)
목사에 대한 교훈('택함 받은 일꾼의 자격과 신덕', 딤전 4:10-16) :
택함
받은 일꾼은 열심과 힘을 드리며, 양을 자기의 뼈와 살과 같이 사랑하여 교인과 목자가 통하게 되는 것이다.
참된
일꾼은 어머니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과 같이 사랑이 쏟아져 나오고 피땀이 섞이어 나오는 것이다. 목자를 알아서 따라온다.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을 양들에게 보이어야 할 것이니 영혼의 키가 장성하는 것을 보이라는 말씀이다. 덕이 자라고 선의가 더욱 자라나는 것을 보이라는
말씀이다. 묵상, 성경 보는 일, 기도, 궁구하는 일을 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랑하는 일, 잘 해야 한다.
참을
수 없는 것을 참고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면 먼저 자기가 은혜를 받는 것이며 연단하는 것이다.
전심전력을
강도(講道)에 기울여 해야 하는 것이다.
몇
시간 준비해서 하려고 하는 것은 품팔이 일꾼인 것이다.
교인이
온 것은 영의 양식을 먹으려고 왔는데 굶어간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연구가 부족하고 궁구가 부족하고 정도가 유치해도 일심정력을 기울여 공만
들이면 그 강도(講道)는 하나님이 가르치게 하는 것이다. 강단을 아무나 가르치게 양보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
번 이단을 가르쳐 놓으면 여독(餘毒)이 심하다.
일꾼이
되려면 먼저 믿고 말씀을 사랑하고 자기가 먼저 실행하고 자기를 만들어 정직하고 진실하고 사람이 되어 가르칠 때에,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보아서
믿는 자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자기가 실행치 않고 입으로만 가르치니 마귀의 종이요, 자기가 되지 못하고 가르치니 못된 것 가르쳐 놓으니 결단날
일만 해놓는 것이다.
일꾼이
된 자는 피땀을 흘리지 아니하고는 못하며, 그리스도를 믿으려면 피땀을 흘리지 않으면 안 된다.
남을
불쌍히 여기고 실행하라고 하면서 자기는 얼마나 실행하는가?
앵무새와
같이 가르치고 지식으로만 배워서 가르치니 이런 사람으로 말미암아 도를 가리우는 것이다.
교인의
사정을 함부로 내놓으면 안 되는 것이다. 유익이 되지 않는 말은 내놓으면 안 되는 것이다. 어른이고 인도자인데 함부로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교회에 나오는 자를 모두 성자를 만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다 그렇게 되지 아니하는 것이다. 너무 다 잘 만들려다 낙심하기 쉬우니까 교인의
처지를 보아서 차차 잘 인도해야하며, 자라기를 바라고 길러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불완전하여도 쓰시는 것이다. 쓰되 길러가면서 쓰시는 것이다. 자기가 의로운 자리에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될 것이며 회개하고 바로 서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진저.
목자는
파수꾼이요 목자이니 나보다도 양을 위하여 바로 자기를 세워야 하는 것이다. 목자가 양을 위하여 희생하는 것은 본능이며, 내가 희생하는 것이
교인을 살리는 것이며 즉 나를 살리는 것이다.
교역자는
교회 일을 볼 때에 사람을 의지하여 일하면 안 되고 하나님과 손을 잡고 일을 해야 한다. 사람을 의지하니 하나님은 배척하고 사람이 교회를
세우려하니 되지 않는 것이다.
교역자는
남의 생명을 맡은 자이니, 육신의 오락을 취하지 말고 희생해야 한다.
자기가
연구해서 가르치는 것이 은혜가 되고 힘이 된다.
강도(講道)를
할 때 은혜를 받아 신자가 좋아한다. 그러면 자기가 잘 한 줄 아는 것이다. 그러나 일시적 감동인가, 행위가 변화하는가 보라.
4)
장로에 대한 교훈
장로가
교회를 지어서, 쥐고 펴고 하는 것이면 이는 장로가 할 일이 아니다. 장로가 교회의 주인도 아니며 목사도 주인이 아니요, 주인은 그리스도인
것이다. 금일 장로는 주인이요 목사는 품팔이꾼이 되는 것이다. 목사가 만일 장로를 책망하는데 받지 않으면 목사를 쫓아내는 것이다. 장로는 목사의
조력자이다. 현재 장로는 권세를 부리고 교회주인 노릇하여 일꾼 내쫓고 하는 것은 저주받을 일이다. 장로가 장로 일을 못하면 장로가 교회의 분쟁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5)
전도부인(전도인)에 대한 교훈
이북에서는
권사, 이남에서는 전도사라는 명칭을 교회에서 결정하였다. 현재 전도 일 안 하는 자를 성직 명칭으로 부르지 말라.
가난한
집에는 더욱 자주 가야하며 돕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다니되
입이 무거워야 하며 필요 없는 말은 아니 해야 한다.
흠점이
보이거든 자기가 권면하여 들을 만하면 하되 못할 것 같으면 목사에게 말해야 한다.
목사의
흠집을 교인에게 말하면 안 된다.
목사의
잘못이 있으면 직접 와서 목사의 잘못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자기
마음에 맞지 않거든 자기가 거기 있지 말고 다른 데로 가는 것이 나으며, 목사를 추방하는 것이 성공했다 할지라도 후에는 벌 받고 자기도 쫓겨나게
될 것이다.
충실히
일하지 않으면, 섭섭하지만 보내야 한다. 정이나 체면을 못 이겨서 두어두면 그 사람 망하고 교회 망하는 것이다.
전도인은
목사의 신앙 사상과 같아야 되는 것이다. 사상이 같지 않으면 진리의 혼란을 갖게 될 것이니 안 될 일이다. 그러므로 자기가 그 밑에서 전도 일을
할 마음이 있으면 신앙적 사상과 은혜를 받고 마음으로 주안에서 심복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6)
신자에 대한 교훈
부모는
육신을 기른 자이나 일꾼은 나의 심령을 기르는 자인 줄 알고 영혼의 선생인 줄 알고 고맙고 감사함으로 배워야 한다.
실행하기
위해 배워라, 말씀을 지식으로만 배우게 되면 양심의 자유를 못 누리니, 듣고 실행해야 한다.
예수
믿는 데 폐물 된 사람, 아무데 가나 사람 노릇 못한다.
이
좋은 교훈 배우지 못하는데 어디 가서 사람 노릇 하는 것 배우겠는가? 사람 노릇하려면 용서하고 참고 견디고 용납하는 마음을 길러야 한다. 이런
마음이 없으면 교회 일 잘 할 수 없는 것이다.
책망과
옳은 말을 해주면, '고맙습니다. 이것을 가르쳐주지 아니했으면 캄캄한 데 행할 뻔 하였는데 가르쳐주시니 참 감사 합니다'할 것이다.
옳은
것을 사모하는 마음, 양심 쓰는 마음, 이것 먼저 만들라.
먼저
마음을 돌이키고 자기 만들어 나가는데 힘써라.
자기가
타인에게 좀 낫다는 칭찬을 받는 자, 정신 차려야 한다.
잘못
하면 자기의 의(義) 그것만 의지하니 넘어질까 조심해야 할 것이다. 바른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망하고 말 것이다.
음식을
먹되, 덕을 세우기 위해 먹고 유익하려고 먹는데 해되게 먹으면 안 된다. 먹을 때에는 절제가 있어야 한다.
식물에
대한 절제, 이것도 선한 싸움이다.
기술과
지식만 배워 가지고는 안 된다.
인격이
없으면 그것은 악하기 때문에 자기를 망치는 것이다.
이상에서
본바와 같이 영적(靈的)으로 굵고 뚜렷한 흔적을 남긴 김현봉 목사님의 생애는 나를 심히 부끄럽게 했고, 나 자신을 되돌아보며 새롭게 회개하고,
이제부터라도 더 늦기 전에 모든 것을 원점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도록 하는 감동하심과 생의 전환점(turning point)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입니다.
누구든지
신촌 예배당(서울시 마포구 독막로 220 신수동 신광빌딩 4층. 마포세무소 근처. 강성률 목사님)에 가보시면 알겠지만, 한국 교회 초기의 신앙을
사모하는 현장이 이처럼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희소가치(稀少價値)에 정겹기까지 합니다. 나는 이런
꾸밈없는 영적인 분위기를 보았을 때 어색하기는커녕 어린 시절 고향교회에 되돌아온 느낌이었습니다.
오리지널
초대교회와 같은 순수성을 유지 보존하려는 모습들이 눈물겹게 고마웠고 우리 땅에 이런 분들을 심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주일
예배는 10시부터인데 30분전부터 찬송이 시작됩니다.
절반은
바닥에 방석을 깔고 앉고 나머지는 의자에 앉은 상태 입니다. 강단에서 보았을 때 우측은 여 성도님들이 좌측에는 남 성도님들이 자리 합니다. 여
성도님들 가운데 연세들은 분들은 쪽머리에 모시적삼이 많습니다. 찬송은 박수를 치거나 누가 인도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악기의
반주도 없습니다. 누군가가 ‘000장 합시다’ 하면 모두가 그 찬송을 부르는 식입니다. 찬송가도 1949년도에 첫 발행된 그대로의 옛
찬송가입니다. 정시에 등단한 강 목사님 역시 삭발에 흰모시적삼 입니다. 여기에는 특별한 신학교가 없습니다. 단지 사경회를 통하여 그
영맥(靈脈)을 이어갑니다. 강 목사님이 대학에서 국문학을 공부하셨는데 은혜 받고 신학을 하고자 했을 때 스승 고 안병모 목사님께서 만류하셨다고
합니다. 신학 잘못하면 오히려 못된 것만 배우고 자칫 해가 될 수 있다는 말씀에 순종하셨다고 합니다. 아래의 일화를 보면 안병모 목사님이 왜
신학을 만류하셨는지 이해가 갈 것 입니다.
【나
귀한 말 들었어. 언제 김현봉 목사님, 직접은 못 들었는데 김현봉 목사님이 어떤 학자의 저서를 보고서 '그것은 생명이 없는 죽은 글이요 책
보따리다' 이라더래요. '왜 그렇습니까' 하니까. 암만 읽어 봐야 '이 사람은 이라고 저 사람은 저라고 그 사람은 그라고 이렇고 저렇고 이렇고
저렇고' 이런데 너는? '뭐이 옳은지 나는 모르겠다.' 이것도 저것도, 이라는 사람 소개만 했기 때문에 죽은 글이지 산 글은 아니라 말이오.
모두 그래만 해 놨지 자기는 이거라 하는 거 하나 잡고 있는 그게 없기 때문에 그 사람의 생활이 한 길을 택할 리가 없고 팔방미인으로 이 사람
만나면 이것도 좋다 저것도 좋다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에. 대개 학자들의 신앙 걸음이 너무 폭이 넓어 그런 게 아니라 생명이 없어서 요게
산길이라 하는 그것을 단정 짓지 못한다 그 말이오. 이것도 쉬운 말 아닙니다. 아주 어려운 말입니다.
그
김현봉 목사님이 큰 말 했습니다. 어려운 말했습니다.】
강
목사님은 안병모 목사님께 한 20년 쯤 배우셨을 때, “이제 그만하면 됐다” 하시면서 목사안수를 주셨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참된 하나님의 종은 세상 학식이나 교단 신학을 이수한 것이 그 기준이 아니라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김현봉 목사님을
따르는 제자들 가운데는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 곧 결혼의 행복도 스스로 포기하고 온전히 하나님 섬기는 일에만 몰두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 얼마나 거룩하고 아름답습니까!
오늘
날은 보다 더 세련되고 편하고 쉬운 것을 추구하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김현봉 목사님의 영맥(靈脈)을 이어가는 그 제자들은 한결같이 역으로 거슬러 좁은 길, 십자가의 길로만 가려고 합니다.
이들은
심각하게 병든 시대에 항거하는 상징적인 몸짓 그 자체입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고 작정한 창조적 소수들 입니다.
이분들이 있어 힘이 나고 행복합니다.
여기저기
보이는 삭발한 민머리의 성도님들... 이분들은 일찍이 세상과의 단절을 몸과 마음으로 체험하셨던 김현봉 목사님의 신앙과 삶을 흠모하여 따르는
거룩한 빛의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천국복음 신앙을 대할 때, 있는 그대로의 순수한 본질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말만 무성한 지식 신앙은 죽은 것입니다.
오늘
날은 겉포장이 대세인 세상이 되었습니다.
기회만
나면 육신을 즐겁게 하기 위해 바쁜 세상이 되었고, 내용보다는 형식이 앞서는 경우가 너무도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 날 세상은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씀을 여간해서는 듣지 않고 또 들을 귀도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가지 않겠노라 하였으며’(렘 6:16).
이러한
때에 온고지신(溫故知新) 이라는 말이 새롭게 들려 집니다.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통하여 새것을 알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바울
사도는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갈6:17) 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영의 흔적을 몸에 지니고 사는 성령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소원합시다. 우리 곁에 이렇게 순전한 믿음으로 오직 하나님 말씀으로만 신실하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다시 한 번 세상을 긍정하고 뿌듯한 감사로 하나님만 바라볼 용기를 얻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모든 영광 하나님께 돌려드리옵나이다.
*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예수님께 한 것이다.
마음이
낮아져서 비천한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으로
알고 섬겨야 한다
(마
25:40; 눅 9:48, 16:10).
*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보여줌으로써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보고 구원받게 해야 한다.
하나님의
선교방법은 사람을 통해서 보여주는 선교에 있다(마20:26-28).
*
주님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말씀하신다.
하나님을
보여주려면 하나님처럼 되어야 한다
(신7:6-7;
벧전2:9; 마20:26-28, 23:11-12, 25:35-40).
*
하나님의 나라는 자신의 작은 것을 희생하여
전체가
기쁨과 행복을 얻게 되는
그런
어떤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할꼬?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마
13:33; 요 12: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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