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_자유게시판
병든 내 몸을 만져주신 신유의 손길
* 본 글은 기존에 썼던 ‘나의 특이한 병상체험’이라는 글에 최근 내 몸에 다시 한 번 더 기이한 신유(神癒)의 이적(異蹟)으로 나타나주셔서 나를 고쳐 살려주신 하나님 체험의 기록을 합친 것입니다.
* 본 글은 일부 수정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읽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옛 고사 성어에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고 했다.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후에 그 결과는 오직 하늘의 운명을 기다린다는 뜻이다. 이 말 이면에는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말씀이 숨겨져 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지금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1999년에 심장협심증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적이 있었는데 꼭 14년 만에 재발한 것이다. 통상 심장협심증 수술환자의 30%가 넘는 사람들이 재발한다는 통계가 있는 것으로 볼 때, 내가 재발했다고 해서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 나의 상태는 매우 심각한 지경이다.
사람에게는 굵은 관상 대동맥이 3개 있는데 좌측의 것은 아예 막혀서 폐쇄되었다. 가슴을 열고 하는 우회수술도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져버렸다. 우측의 것 두 개 모두 스턴트를 박았는데, 또 다른 하나가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막혀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심장이 전반적으로 나쁘다고 한다. 수많은 잔가지 혈관들이 이미 딱딱하게 굳어 죽었고, 폐쇄된 쪽의 심장근육은 살아있는 것조차 느리게 움직일 뿐이다.
그러니까 두 개로 세 개 역할을 감당해야 하니 수술을 해도 가슴이 깨끗지 않고 평생 고통을 짊어지고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의사의 진단 그대로 나는 지금 수술을 잘하고 퇴원했지만 여전히 고통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다(2013년 2월).
몸 관리를 위해 적절한 운동을 꼭 해야 하는데 그것도 불가능하고, 가만히 있어도 시도 때도 없이 심장이 찢어지는 통증으로 머리까지 멍멍해진다. 한마디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기도 힘든 것이다.
만일 계속 이런 상태가 지속 된다면 참으로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몸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으며, 그리고 하루하루를 어떻게 버텨나갈 수 있겠는가. 나는 지금 인간적으로는 절망감을 느끼고 있다.
본시 티끌 먼지에 불과한 존재가 바로 나 자신임을 진실로 고백할 수밖에 없다. 다만 자비하신 은혜의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을 주심으로 살아있는 사람이 되었고, 하나님이 지금까지 살게 하시니 살아있는 것이다. 언젠가 하나님이 부르시면 티끌로 돌아가는 존재, 무엇에서고 막히고야 마는 존재, 병에 막히고 세월에 막히고 돈에 막히고 시간과 공간에 막히고 죄에 막히고 기가 막히고 그래서 막혀서 죽는 존재가 바로 나인 것을 절감하고 있다. 나는 지금 심장 혈류가 막혀서 죽음의 냄새를 느끼고 있다.
지난 2월 14일, 장로회신학대학을 졸업하는 아들의 졸업식을 보고 난후 인천에 문상을 갔다가 밤늦게 돌아오는 도중에 너무 심장이 아파서 급히 핸들을 세브란스로 꺾었다. 다행히 정 집사님께서 운전대를 잡으셨고, 집사님 권사님들께서 기도해주셨다. 걱정하시는 모든 분들께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이 일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분명히 무슨 뜻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경우라 할지라도 함께하시기만 하면 걱정할 것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꺾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항복하고, 하나님 은혜로만 사는 존재임을 다시 한 번 처절하게 확인시키시는 주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존재의 본질적인 차원에서 하나님께 겸손하게 항복하기를 바라시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지난 날 이것보다 더 한 것도 고치신 하나님이신데 왜 모르시겠습니까? 하나님은 결정적일 때 건져주시고 살려주시는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이런 은혜로우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몇 가지 특이한 병상체험을 했다.
(1) 암치질
병원 한번 가지 않고도 무난히 살았던 나는 1993년 어느 날부터 하혈을 했다. 변기통이 온통 빨갛게 물들 정도로 많은 피가 나왔다. 그리고 가끔씩 지속적으로 하혈을 했다. 그런데 아무런 통증도 없었고 워낙 건강했기 때문에 일 년이 지나도록 안사람에게는 한마디 말도 않고 무심하게 지냈다. 어느 날 신문에 대장암에 관한 기사가 실렸는데, 지속적으로 하혈을 하거든 의심해 보라는 말에 깜짝 놀라 아내에게 직접 보여주었다. 일 년이 넘도록 이렇게 많은 피를 쏟으며 어떻게 말도 않고 방치할 수 있느냐며 당장 병원에 데리고 갔다. 암치질이었다. 수술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의사의 진단과 함께 수술비용 견적서를 받고, 수술 날짜를 잡았다.
그때에는 나의 신앙에 변화가 있던 때였다. 어느 때 보다 병 고치는 신령한 하나님의 은사를 사모했고, 내게도 신령한 은혜의 체험을 달라고 열심히 기도할 때였다. 나는 건강에 기고만장할 정도로 자만심으로 가득했을 때 이런 어처구니없는 기도를 한 적도 있다.
“하나님! 저도 불치의 병에 한번 걸려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능하신 손으로 만져주셔서 병이 낫게 해주시고, 병 고치는 신유(神癒)의 은사를 알게 되어 하나님 일을 더 잘 하게 될 것 같습니다....” 때마침 치질이 왔을 때, “하나님 내게도 은혜의 체험을 주십시오. 치질을 고쳐 주십시오. 피가 멎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마음을 집중하기 위하여 수술비용을 모두 헌금으로 드렸다.
그 다음날 아내가 신학기를 맞아, 학교 인사이동 문제 때문에 고양시 교육청을 함께 가야 했다. 길을 걷고 있던 도중 내 몸에 이상한 징후를 느꼈다. 어느 순간 엉덩이에 불이 붙는 듯 후끈하며 뜨거운 열기 같은 것을 느꼈다. 그런데 신비로운 것은 그날부터 거짓말처럼 피가 멎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치질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다.
이는 정말 거짓말 같은 하나님의 기이한 역사였다.
내가 98년도에 심장 협심증을 앓을 때, 하나님께 고쳐 달라고 무모하리만큼 떼를 쓰게 된 것은 그 때의 체험이 근거가 된 것이기도 하다.
(2) 심장 협심증
나는 개척교회를 시작하였다가 사람 잘못 만나 돈도 잃어버리고 매우 어려운 때를 만났던 적이 있다. 설상가상 심장 협심증이 발병하였다. 무거운 것을 들거나 비탈길을 오르면 가슴이 갈라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가슴이 아프다는 말을 많이 들어 보았지만 그게 어떤 것인지 몰라 궁금했던 것이 정작 나의 문제가 되었다. 세브란스 병원의 진단 결과는 시급히 수술하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수술비용은 기본이 일천 만원이고 상태에 따라서 삼, 사천 만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결심했다. 병은 하나님도 고치시니 내게 사명(使命)이 있다면 하나님이 고쳐 쓰실 것이고, 내게 사명이 더 이상 없다면 깨끗이 죽자.... 처방해온 약을 모두 버렸다. 수술 문제를 갖고 아내와 몇 번 다투었다. 지금 빚도 많이 졌는데 병원에 갖다 줄 돈은 더 이상 없다고 맞섰다. 교회 예배드릴 처소를 잃어버린 나는 아파트 사택에서 일 년 이상 예배를 드렸다. 몇 안 되는 교인들이었지만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새벽예배는 아파트에서 드리기가 뭐해서 차를 몰고 10여분 떨어진 공릉 입구 넓은 주차장 한 구석, 차 안에서 설교하고 기도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은 천장을 두드리는 요란한 빗소리와 함께 ‘내게도 성전을 주소서 !’ 하고 부르짖었다. 지금도 번개 치며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면 그때 그 시절이 자동적으로 떠오른다. 병은 좋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나빠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에도 전혀 모르는 어떤 분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 목사님 댁 맞지요 ? 고향 친구 집에 갔다가 목사님의 딱한 얘기를 얼핏 들어서 알게 된 엄 집사입니다. (그 분의 고향 친구는 과거에 나의 아내가 근무하는 학교 근처의 아파트에 살았다)
제가 집에 가서 목사님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하는데 목사님 문제가 좀처럼 지워지지가 않습니다. 목사님을 도우라는 성령님의 감동이 와서 고향친구에게 전화번호를 알아 가지고 이렇게 저의 뜻을 전합니다.
수술비용이 얼마가 들던 제가 해결할 터이니 염려하지 마시고 빨리 수술 받으시고 건강 회복하여 하나님 일 많이 하십시오” 하며 울먹이는 것이었다. 나는 한번 만나 뵙자고 제안했고 그 분의 고향 친구 집에서 아내와 함께 그분을 만났다. “병은 하나님도 고치시는 분이시고, 저는 하나님께 맡기고 수술은 받지 않습니다. 제게 정작 필요한 것은 잃어버린 교회 전세 자금이오니 얼마가 되었든 마음에 품으신 돈을 주시면 다시 한 번 목회를 해보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그분은 울먹이며 말했다. “제가 하나님께 응답받은 것은 목사님께 수술비용을 드리라는 것이지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한번 기도해 봅시다. 언제든 마음이 바뀌면 연락주시고 속히 수술 받으세요” 집에 돌아 온 아내는 나를 많이 나무랐다. 굴러 들어온 복도 차 내 버린다는 것이다. 그때마다 나의 말은 한결 같았다. “사명이 있는 자는 죽지 않아. 내게 사명이 없다면 죽고 말지 왜 살아 ?...”
헤어진 후 두 세 번 더 전화가 걸려왔다. 그분은 안타까워했다.
“이제 그만 고집을 버리고 수술 받으시라고....”
그러나 나의 자존심은 허락치를 않았다. 서로 전화가 끊긴지 몇 개월이 흘렀다. 투병생활 만 일 년 되는 2월 어느 날 이었다. 며칠 전부터 시작된 가슴 통증이 끊이질 않았다. 구정 설 지내러 춘천에 왔다가 더 이상 통증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는 항복하고 말았다. 나는 세브란스로 급히 옮겨 달라고 요청했고, 병원 측의 특별 배려로 중환자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입원 4시간 만에 의식을 잃고 말았다. 중환자실에 있었기 때문에 다행히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심장 협심증에 의한 돌연사(突然死)라는 것이다.
99년 2월에 수술을 받았다. 소식을 듣고 그분이 문병을 오셨다.
정성스럽게 쓴 친필 격려 편지와 고급 떡과 일금 일천만원 수표를 주셨다. 그분은 누구처럼 아주 잘 사는 집이 아니다. 그분의 고향 친구 말에 의하면 그분은 그 당시에 집도 전세로 살고 계셨고,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도 최대한 근검절약하며 사치할 줄 모르는 검소한 분이라는 것이다. 그분은 내게 당부했다. 절대로 자기 이름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아 달라고. 이 땅에서 상을 다 받아 버리면 하늘 상급이 없어진다고.... 퇴원한 후에 우리 부부는 서울 일원동에 사시는 그분 집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다. 남편 되시는 서 집사는 자기가 가장 좋아 한다는 로마서 8장 28절을 말씀하시면서 위로해 주셨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하나님은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그분은 우리가 춘천에 이사 와서, 나의 큰 아들이 중학교를 입학할 때도 어떻게 알고 교복 값 일체를 보내 주셨다. 몇 개월이 지난 후에 나는 마음을 비우고 춘천 고향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마침 목회가 실패해서 폐 교회 수순을 밟고 있던 교회가 있었는데, 공교롭게도‘사명교회’라는 이름이었다. 투병생활하면서 사명이 있는 자는 죽지 않는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곤 했는데, 우연치 않게도 내가 소개받은 교회는 사명교회였던 것이다. 나는 두 말 않고 “사명 교회는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터이니 나를 보내 주시오”했다. 오늘날 그림처럼 소박하고 아름다운 전원교회를 건축하고, ‘호산나교회’라 이름 지었지만 그 뿌리는 사명교회인 것이다. 작은 지하실에서 1층 13평으로 , 또다시 3층으로 교회를 옮기면서 우여곡절 끝에 오늘에 이른 것이다. 차 지붕이 부서지기라도 하는 듯한 요란한 빗소리를 들으며 내게도 성전을 달라고 기도했지만 사실은 전혀 믿기지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과 이루시고자 뜻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는 오늘날 내게 분에 넘치는 은혜를 주셨다. 상처를 싸매시고 상심한 자를 일으키시는 하나님께서 내게 건강도 주셨고, 잃어버린 물질도 모두 채워주셨다. 채워 주시는 정도가 아니라 부요한 자가 되게 하셨다. ‘주께서 상처를 싸매시고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칠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아지리라.‘(사30:26 시147:1-3)는 말씀이 나의 말씀이 되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가능한 일을 하면 주님은 나를 위하여 불가능한 일을 해 주신다(창22:16-18)는 영적인 비밀도 조금은 알 것 같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도 체험하였다.(롬8:28)
(3) 뇌염
나는 2001년 12월 말, 목회를 하던 중 갑자기 쓰러졌다. 경희 의료원으로 실려 갔는데, 신촌 세브란스로 급히 옮겨졌다. 그곳에서 일전에 심장 협심증 수술을 했던 병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의식 상태로 중환자실에 들어간 나는 절망적인 상태였다. 소생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의사의 진단과 만일 운 좋게 살아난다 해도 눈이 멀거나 벙어리가 되거나 몸을 쓰지 못하는 불구가 된다는 것이다. M.R.I 촬영에 의하면 원인 불명의 바이러스가 뇌에 침투하여 뇌 전체를 파괴하여 못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가족이 모였다. 담당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준비를 해야 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합니다”.
그때 아내는 주치의에게 매달리며 이렇게 말했다.
“의사 선생님. 우리 목사님을 살려주십시오. 선생님은 부정적이고 절망적으로 말씀하시지만 나는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나의 머릿속에는 죽음이란 없습니다. 살리는데 목숨 걸고 기도하겠습니다. 최선을 다 해 주십시오. 하나님은 죽은 자도 살리시고, 없는 것도 있는 것처럼 불러내시는 능하신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의 뜻이 계시면 반드시 고쳐 살려주실 것입니다....”
이 세상에 기댈 곳이 아무것도 없던 나의 아내는 틈만 나면 연세대 병원에 있는 채플 실에 가서 금식하며 눈물로 기도했다. 하나님 얼굴을 바라보며 자비를 구하는 기도 외에는 나를 위해서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금식하느라 살이 빠져서 얼굴을 못 알아 볼 정도로 간절히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다. “하나님! 이렇게 죽기에는 너무 억울하고 한스럽습니다. 하나님은 자비하시고 능하신 분이시오니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한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세상 뭐라 해도 하나님의 뜻이 계시면 나을 줄로 믿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나의 아내에게 의사의 특별지시가 있었다. “상태가 너무 안 좋으니, 오늘 밤에 어디 가지 말고 곁을 지키십시오” 그 날 밤 새벽이었다. 몇 날 며칠이고 의식이 없던 내가 기적적으로 깨어난 것이다. 나는 ‘내가 왜 여기 있는가 ? 얼른 집에 가 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득하고 몽롱한 기억 같은 것이 생각나는 것이었다. 어떤 노인으로 보여지는 2,3명이 저 멀리서 내게로 와서는 ‘이제 가자!’하였다. 나는 직감적으로 '이제 죽음의 순간이 되었구나' 생각했고 아무런 반항심도 없었고, 당연히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 나의 아내가 나타나더니 안 된다고 주장했고, 아직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항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주여 나의 병든 몸을’(528장)이라는 찬송을 담대히 부르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하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자기가 뭔데 안 된다고 하는가. 천사가 가자면 가는 거지...” 이와 같은 밑도 끝도 없는 그 어떤 기억을 나는 지금도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잘 모른다. 실제로 내가 천사를 만난건지, 아니면 그 어떤 종교적인 관념 같은 것인지 단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확실하고 분명한 사실은 그 이후로 급속한 회복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과, 의사의 말과는 정 반대로 머리털 하나도 상치 않고 온전히 정상 회복 되었다는 사실이다. 내가 오랜만에 비틀거리며 걸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자주자주 채플실에 가서 이사야41장과 43장을 붙들고 하나님께 기도하고는 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사41:10, 14)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사43:1-3).
나는 2달 가까이 입원해 있으면서 내 마음이 새롭게 정화되는 것을 느꼈다. 살아도 살지 않은 것처럼, 살지 않아도 산 것처럼,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처럼,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실상은 유명한 자로서(고후6:8-10), 너그럽고 관용할 줄 아는 넓은 심정으로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생겨났다.
퇴원할 무렵 박 수철 신경내과 주치의 선생님께서 특별한 말씀을 하셨다. 입원부터 퇴원까지 시차(時差)를 두고 한번에 70만원하는 M.R.I 촬영을 4번이나 했는데, 그 사진을 모두 순차별로 죽 걸어 놓고 직접 보여주셨다. 초기의 것은 뇌가 모두 파괴되었으나 마지막 사진은 거의 정상으로 바뀌어 있었다.
“목사님의 뇌를 파괴한 바이러스가 어떤 바이러스인지 아직 의학적 규명이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짧은 기간 안에 거의 정상으로 보여 지는 것처럼 변모된다는 것은 의학적으로 설명이 안 됩니다.
그동안 내가 수많은 환자를 다루었지만 목사님 같은 경우는 처음입니다. 목사님은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목사님을 보니 하나님이 계시긴 계신 가 봅니다. 그리고 어떤 바이러스인지 규명이 안 되었으므로 목사님은 몸이 호전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병이 진행 중이라고 보아야할 것입니다. 퇴원하시더라도 몸 상태가 조금만 이상하다 싶으면 즉시 달려와야 합니다.....”
나는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사선(死線)을 넘은 후 지금까지 정상으로 활동하고 있다. 퇴원하여 집에서 요양을 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내 생명을 내가 자신할 수 있는 그 어떤 능력도 내게는 없음을 절감했다. 어느 순간 나도 의식하지 못한 채 저 세상 사람이 될 뻔 했던 경험은 한편으론 살아도 살아 있지 않은 것 같아서 나 자신을 불안하게도 했지만, 또 한편으론 '나는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는 깨달음을 주었다. 무엇에 집착하고 서로 아옹다옹 하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 어느 누구의 허물이 보일 때, 지적하고 다투는 것보다 가급적이면 넓은 아량으로 덮어주고 말없이 기도하는 것이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감사한 것은 그렇게도 소원하던 성전도 지을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나의 아버님께 성전 지을 땅을 주십사 여러 번 간청하고 설득도 해보았었지만 번 번히 거절당했던 것이다. 98년도에 심장 협심증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적이 있었는데, 그런 몸으로는 성전을 지을 수 가 없고, 지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누구 좋은 일 시키려고 성전을 짓느냐? 너는 앞으로의 운명을 장담할 수 없는 몸이니, 셋방살이 교회 하더라도 그게 네 운명이려니 해라. 솔직히 말해서 나는 내가 평생 피땀 흘려서 마련한 땅을 하나님께 바칠만한 믿음이 없다..... " 라고 말씀하셨을 때, 화가 난 나는 소리를 질렀다. "아버지! 그렇게 제 건강이 염려 된다면 성전 지을 땅을 하나님께 드리고 나서 '하나님 제가 성전을 짓도록 이만큼 성의를 보였으니 우리 아들 건강 책임져 주세요'하고 결단을 내려 보시지요. 그게 더 현명한 것 아닌가요?......"
이건 아예 설득이 아니라 협박이었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나는 목회를 하면서 떳떳한 성전이 없어서 설움을 많이 받은 편이다. 좋은 건물이 꼭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남 보기에 항상 부끄럽다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내게 성령님의 은혜가 부족했던 것은 반성하지도 않고 말이다. 아무튼 퇴원 후에 성전 지을 땅을 달라고 또 요구했는데, 이번에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네 소원대로 하거라. 이번에 허락하지 않으면 또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를 텐데 네 원하는 대로 맘대로 하거라”
퇴원 후 그 이듬해 2003년도에 '호산나 교회'라는 이름으로 그림처럼 소박하고 아름다운 성전을 지었다. '호산나'는 '주님, 제발 구원해 주옵소서'라는 뜻이다. 나는 성전건축에 얽힌 지난날의 추억을 생각하면 저절로 눈물이 난다.
(4) 두통
나는 말숨 글을 쓰기 직전까지 10년 가까이 글쓰기를 포기하며 살아왔다. 정신을 집중하여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 머리가 몹시 아파 왔고, 짜증이 나서 견디지 못했다. 그리고 지나치게 피곤해졌다.
그런데 신기한 은혜를 하나님께서 주셨다.
2008년 5월 어느 날, 어느 목사님께서 내게 건넨 말 한마디가 도전이 되어 하루 한 편씩 정직하고 진실 된 글을 써서 하나님께 올리겠다는 거룩한 결심을 했는데,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내 몸은 전과 다른 새것이 되었다. 신기하게 두통도 사라졌고, 짜증도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었고, 몇 시간씩 글을 써도 거뜬히 소화해 내는 것이었다.
나는 병을 고치는 하나님의 은혜를 몇 번 체험했지만, 이것 또한 기적 같은 은혜의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과거가 씻겨 내려가고 새로운 현재가 시작된 것만 같아 감격스런 마음으로 나 자신과 약속했던 것을 지켜낼 수 있었다.
말숨 산문집은 이러한 특별한 인연으로 쓰여지게 되었다.
2008년 5월 31일부터 매일매일 하나님을 나타내는 완성된 글 한 편씩을 써서 메일 독자들에게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글을 보내기 시작한 것이 그것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내 두통을 고쳐주신 하나님과 특별히 약속한 것이기도 하고, 무언으로 메일독자들과 한 나 자신의 약속이었기 때문에 거룩한 목적과 거룩한 열심으로 최선을 다한 결과물인 것이다. 놀랍게도 그 해가 끝나는 12월 31일까지 무려 책 너 댓 권 분량의 200편이 넘는 말숨 글을 쓰게 되었다. 이것이 독자들의 호응을 얻어 1130만원이라는 출판기금이 마련되었고, 마침내 2010년 1월에 말숨산문집 제 1권 '한 입 가득 베어 문 레마' 가 탄생하게 되었는데 지금까지 제7권 '그대 안해(安偕), 나의 어여쁜 신부여' 가 출간되기에 이르렀다. 현재 두어 권의 쓰여 진 원고가 있는데 이것도 기금이 마련되면 하나님의 이름은 어떻게든 전파되어야 한다는 목적성 때문에 반드시 출판될 것이라 믿는다. 지나놓고 보니까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혜 아니고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것 같다. 돈도 되지 않는 말숨 글 쓰는 일에 어떻게 그렇게 성실하게 집중할 수 있었는지, 어떻게 그렇게 매일 매일을 바쳐 삶의 제 1순위로 말숨 글쓰기에 열심을 낼 수 있었는지, 그리고 나같이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서 단 몇 개월 만에 너 댓 권 분량의 책을 쓰는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는지, 사실 책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이런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나는 말숨 글을 전파하는 소명(召命)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특별히 살려주셨다고 신앙고백 한다. 두 번씩이나 죽을병에서 고쳐 살려주신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데서는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5) 심장 협심증 재발
2013년 2월 14일, 이제 또 다시 재발한 무서운 질병이 소리도 없이 다가왔다. 내 생에 있어서 2월은 특별한 것 같다. 모든 잊지 못할 시련들이 2월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는 나의 특이한 병상체험을 간증형식으로 증언하고 있다. 그 이유는 어찌하든 풀지 않으면 안 될 수수께끼 같은 시련의 어두운 밤 앞에서 지나온 병상체험이 무슨 위로와 격려가 될 것 같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나를 만나주시기 위하여 때로는 시련의 어두운 밤이라는 사건들을 통해서 친히 찾아오시고 말씀하시는 주님이시다.
이 사건들을 통해서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일까?
이는 하나님과 나와의 은밀한 교제 가운데서 전적인 하나님의 은총으로만 풀리는 문제라고 믿는다. 이 글을 대하시는 독자 분들께서도 함께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사랑 합니다 여러분!
* (5) 막혔던 심장혈관이 뻥 뚫리다.
지난 2013년 2월, 또 다시 혈관이 막혀 재 시술을 해야만 했는데 1년도 못되어 또 다시 지난 11월 30일, 3차 시술을 해야만 했다.
이는 경제적으로도 부담되는 일이지만 그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목사로서 자존심이 무척 상한다는데 있다. 매일같이 건강하기를 소원하고 기도하는데 어째서 일 년에 두 번씩이나 심장 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 되나 하는 자괴감(自塊感)이 저절로 들고, 혹시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불현듯 찾아오는 것이다. 이런 감정의 변화는 이런 경우를 당해본 사람이 아니면 알기 어려울 것이다.
수술 전 한 주간은 시도 때도 없이 심장에 통증이 왔는데, 머리가 핑 돌며 어지러워 몇 번이나 넘어질 뻔 했다. 한 순간 두 번 이나 앞이 캄캄해지면서 눈앞이 흐려지고, 천천히 시력이 회복되었는데 여전히 눈이 침침하여 운전을 멈추기까지 했다.
우리 집을 짓고 계시는 오 집사님과 함께 점심을 먹던 중 이 얘기를 듣던 그는 버럭 화를 내시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목사님! 병원 안 가고 왜 여기 계십니까? 죽은 다음에 이 전원주택이 무슨 소용 있습니까? 도대체 무엇이 우선순위입니까? 이렇게 어리석고 무책임하면 안 되지요. 내가 목사님을 위하여 이런 아름다운 집을 지어드리면 무슨 소용 있습니까? 나 일 안 해도 좋고 못해도 좋습니다. 다 집어 치우겠습니다.....” 하면서 만사 제쳐놓고 자동차 키를 뺏어 강제로 세브란스 응급실로 차를 몰았다. 오 집사님은 미국에서 두 차례나 심장에 좋다는 셀레늄, 카퍼, 오메가3를 사다 주시면서 지대한 관심으로 나의 건강을 챙겨주셨고, 금번에는 마치 자기 살 집 짓듯 내가 살 집을 온 힘과 정성으로 지어 이제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던 참이었다.
중환자실로 옮겨진 나는 집중적인 검사에 들어갔다. 혈압 뿐 만 아니라 간, 콩팥 수치도 기준치를 상당히 넘어서고 있었다. 특히 심장박동 수치는 60-80은 되어야 하는데 40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빨간 불이 들어왔다 나갔다 한다. 심장이 온몸에 피를 제대로 공급해 주지 못하니까 어지러운 증세가 나타났던 것이고, 잘못되면 쓰러져 의식을 잃어버리고 목숨까지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병극 심장내과 주치의는 나의 심장 상태를 이렇게 표현했다.
“심장이 너덜너덜하다. 어떻게 전반적으로 이렇게까지 나빠질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사람에게는 굵은 관상 대동맥이 3개 있는데 좌측의 것은 아예 막혀서 폐쇄되었다. 가슴을 열고 다리 심줄을 떼어다 붙이는 우회수술도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져버렸다. 우측의 것 두 개 모두 막혀서 스턴트를 박아 혈관 확장시켜 놓았는데, 99년도에 시술했던 부위가 또 다시 막혔다. 수많은 잔가지 혈관들은 이미 딱딱하게 굳어 죽었고, 폐쇄된 쪽의 심장근육은 살아있는 것조차 느리게 움직일 뿐이다. 그러니까 온전치 못한 두 개로 세 개 역할을 감당해야 하니 수술을 해도 가슴이 깨끗지 않고 평생 고통을 짊어지고 갈 수밖에 없다. 험난한 치료가 예상된다. 절대 안정을 취하시고 극히 조심하시며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주치의 선생님의 이 말은 세상적인 방법의 한계를 거듭 확인한 것이어서 한편으론 낙심이 되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는 기회가 된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이 뜻하시고 원하시면 죽은 자도 살리시고 없는 것도 있는 것처럼 불러내실 수 있는 능하신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만이 불가능의 가능이시니 어찌되었든지 하나님만 바라보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설령 내가 지금 죽더라도 감사한 것은 구원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받으사 천국으로 인도하실 터이니 무엇이 두려워 떨 것인가. 하나님의 믿음 안에서 되어지는 모든 것,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는 수시로 이렇게 기도하기를 즐겨한다.
“하나님! 제게 뜻과 섭리가 계시다면 이를 이루시기까지 함께 하시고 살려주소서. 심장을 통째로 새 심장으로 바꾸어주십시오. 그러면 살아계신 주님을 힘 있게 간증하며 하나님 살아계심을 나타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앞이 막히고 옆이 막히고 밑이 막히고 동서남북이 막힐지라도 절망하지 않을 것은 위에 계신 영광의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과 구원의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만 하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지 않겠습니까.”
시편을 쓴 다윗도 똑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여호와여 내가 소리 내어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버리지 마시고 떠나지 마소서. 내가 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게 될 줄 확실히 믿었도다.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내가 하나님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시27:4-14 요약).
참으로 감사한 것은 3차 심혈관 시술을 통해서 다시 한 번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는 구원의 아버지 하나님’이심을 체험하고 간증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심혈관 확장 시술은 최첨단 현대 의학 장비가 만들어져서 가능해진 획기적인 방법으로서 국부마취 상태에서 카메라를 장착한 관이 대동맥을 타고 심장부위까지 들어가면서 혈관 상태를 명확히 확인할 수 있도록 조영제를 뿌려주면서 촬영을 하고 이를 토대로 막힌 혈관 부위에 ‘스턴트’를 박아 피가 원활하게 흐를 수 있도록 통로를 뚫어주는 시술이다. 99년도에 시술한 부위가 또다시 막혔지만 무사히 성공적으로 뚫었다. 그것은 일반적인 평범한 것이므로 그렇다 치자. 시술을 진행하던 김병극 주치의께서 오셔서 이렇게 말한다.
컴퓨터 화면에는 2013년 2월의 심장 화면과 지금 시술하고 있는 심장화면을 한눈에 비교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었다.
“목사님. 재미있는 일이 생겨났네요. 지난번 2013년 2월에 막혔던 혈관을 뚫은 적이 있는데, 스턴트를 박은 혈관 바로 그 위에 있는 종전의 혈관을 잘 보시지요. 보이다 안보이다 하는 이 혈관은 보시는 바와 같이 막힌 혈관이라 너무나도 가늘고 길어 시술할 수도 없는 혈관인데 지금 보고 있는 이 혈관은 굵고 길게 뻥 뚫린 건강한 혈관으로 변화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종전의 혈관인데 지금 이렇게 굵고 뻥 뚫린 혈관으로 변화되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이것이 만일 자연치유 된 것이라면 정말 재미있는 일이 생겨난 것입니다. 어쩌면 스턴트 시술로 혈류가 원활하게 되니까 위에 있던 막혔던 혈관에도 영향을 주어서 혈관 벽에 붙어있던 더럽고 탁한 찌꺼기 피를 밀어내고, 그 결과로 굵고 뻥 뚫린 새 혈관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그런 과정에서 혈관이 압박을 받아 심장 고통이 더 심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재미있는 일이 생겨난 것이지요.
어찌되었든 혈관이 이전보다 더 좋아졌습니다. 우리는 목사님께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다 했으니까 너무 걱정 마시고 마음 편히 갖으시고 몸을 잘 돌보시기 바랍니다....”
주치의 선생님은 의사로서 말할 수 있는 정당한 의학적 소견을 내놓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잘 알고 있는 나는 여기에 만족할 수 없다. 하나님이 친히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만져주신 자비하신 긍휼의 손길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때마다 일마다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이를 제대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심장시술 현장에서 “재미있는 일이 생겨났다”는 주치의 선생님의 말을 직접 우리 가족도 들었고 나도 들었지만 도무지 실감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뭐가 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방금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극심한 고통으로 수술대에 올랐는데 의사가 손을 대기도 전에 지금 당장 심장이 좋아졌다니 이건 또 무엇인가? 좋아졌다면 얼마나 어떻게 좋아졌다는 말인가.....? 하는 궁금한 마음으로 퇴원을 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병든 내 몸을 기이한 신유(神癒)의 이적(異蹟)의 손으로 친히 어루만져 주심으로 말미암아 나는 지금 15년 만에 잃어버린 가슴의 평화를 되찾았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조금만 무리해도 가슴이 편치 않고 무거운 부담을 갖았었는데 지금은 마치 바람 한 점 없는 고요한 호수 같이 평온하다.
조금만 힘들어도 늘 왼쪽 팔이 무겁고 저렸었는데 그런 증세도 감쪽같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떤 일도 할 수가 없었다. 조금 빨리 걷거나 눈이라도 오면 쓸어야 하는데 그것조차도 어려웠다. 그런 내가 새로 지은 전원주택에 3.5톤 분량의 나무들을 나 혼자서 삽과 곡갱이로 다 심었고, 채마밭을 뒤집어엎어 푸른 채소를 가꾸고 있다. 이 모든 일을 끝마칠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가슴이 아프지 않았고, 그야말로 펄펄 날아다니며 하루 종일 신나게 일을 했다. 팔 다리에 알이 배고 피곤해서 입안이 헐어 밥 먹기가 힘들지언정 가슴은 멀쩡한 것이었다. 그리고 매일 매일 1시간 이상 7Km를 걷고 뛴다. 이런 생활 자체가 기적이 아닐 수 없다.
말라기 선지자는 이렇게 말씀한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말4:2).
병든 몸에서 자유를 얻은 이 구원 사건은 하나님 살아서 역사 하시는 이적(異蹟)과 기사(奇事)와 표적(標的)이 아닐 수 없다(요4:48).
이는 몸의 건강을 회복했다는 것 그 이상을 뜻한다.
하나님의 빛의 세계를 다시 한 번 은혜로 받게 되고, 몸으로 체험하게 되어 하나님을 나타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체험으로 알게 되었다는 것은 ‘한 입 가득 베어 문 레마’(말숨 산문집 제1권 제목)의 확증이요, 최고의 기쁨이자 감사 감격이다. 나의 간증을 들은 어떤 자매 선생님은 이런 문자를 보내왔다.
“정말 감사할 일이네요. 새롭게 온전히 치유해 주십사고 기도했는데.... 아멘”. 또 어떤 목사님은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하구요. 이전보다 더 건강한 모습으로 놀랍고 재미있는 일이 많이 생길 줄 믿습니다. 빠른 회복을 기도합니다.”라고 격려 문자를 보내 주셨다.
할렐루야 아멘이다.
나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아무것도 설명할 수가 없다.
언제 어느 순간에 왜 어떻게 그런 일들이 생겨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명확하게 아는 것이 있다. 그것은 결론을 아는 것이다. 살아계신 자비하신 하나님이 나를 긍휼히 여겨주셔서 나를 특별히 만져주셨고 고쳐주셨고 살려 주셨다는 그 결론 말이다.
이것은 궁극적인 미래에 있을 천국에서의 구원을 내가 체험했다는 사실과도 연결되는 문제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하지 않던가.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살려주셨구나. 구원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나님이 도우시고 역사하신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천국의 소망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봄이 오면 마른 잎 되살아나듯이 죽은 자의 부활도 하나님이 다 그렇게 하시는 것이겠지. 내 귀에 들리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내 눈에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 그 어떤 사인이나 징후를 오관으로 느끼거나 알지 못하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하나님이 친히 오셔서 만져주시면 무슨 일이건 어떤 일이건 일어날 수 있는 것이겠지......” 하고 확증하여 믿게 해 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믿음은 이런 것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은 아무 보잘 것 없는 나로 하여금 은혜 주셔서 이런 말숨 글을 쓰게 하심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나타내게 하시려고 뜻하셨다고 나는 믿는다. 이는 나의 특별한 신앙고백이다.
나는 내 자신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 내 힘으로는 하루 밥 세끼 먹기도 버겁고 실수투성이에다가 부끄러운 자화상들만 생각나는 부족한 사람이다. 그런데 지금 내게 주어진 모든 것들을 보면 아무 부족함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분수에 넘치는 너무도 후한 대접을 해주셨다.
방 한 칸으로 신혼을 차리고 시작한 결혼생활 동안 지금까지 이런저런 이유로 이사를 15번이나 해야 했는데 지금은 꿈에나 그릴 수 있는 지역에 터를 잡고 만족스러운 집을 짓고 살게 되었다.
이는 주님께서 환경을 열어 주시고, 돕는 사람을 만나게 해주시고, 일이 되어 지도록 도와주셔서 가능해진 결과물이라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어느 순간 갑자기 되어 진 일이다. 지난 15년 동안 건강을 잃어버리고 고통 속에 살던 내가 어느 날 갑자기 건강을 되찾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6) 요로결석
내친김에 한 가지 더 간증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요로결석으로 10년 이상 고통 해야만 했다. 3-4 개월을 주기로 요로결석이 찾아왔는데 산통(産痛), 치통(齒痛)에 비견되는 그 고통은 말로 표현키가 어렵다. 이를 고쳐보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답이 없었다. 비뇨기과에서 몇 번 수술하려고 시도했으나 레이저로 쏘려고 하면 그 순간 돌이 사라져서 실패하고 돈만 낭비했다. 의사도 별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진통제를 맞고 돌이 나올 때까지 몸으로 버티는 것 외에는 별 수 없었다. 견디다 못해 새벽에 병원으로 실려 가기를 몇 번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친구가 뜸을 떠보라고 권했다. 도무지 믿기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것저것 따질 문제도 아니었다.
2013년 2월 심장 시술을 받고 집에 온 나는 뜸을 뜨고 효력을 기대하면서 기다렸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1년 하고도 5개월이 지나도록 단 한 번도 요로결석이 찾아오지 않았다. 나는 그동안 내 몸에서 나온 돌덩어리를 여러 개 큰 것만 골라서 보관하고 있는데 어떤 돌은 너무 커서 이것이 요로 관을 통해서 나왔다는 것이 신기하게 생각될 정도다. 아무튼 어느 날 갑자기 요로결석이 내 몸에서 사라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은 뜸의 효력 때문 이라기보다는 이것 역시 하나님이 만져주신 결과라고 믿는다.
아무튼 하나님은 내게 이런 식으로 은혜 베푸신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좋은 아내와 반듯한 자식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부자로 살지는 못하더라도 우리 가정은 특별한 기쁨과 특별한 행복으로 살고 있고, 내 힘만으로는 풀어나가기 어려운 생존의 문제도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은혜를 주셨다. 죽을 수밖에 없는 몸도 고쳐주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나타내는 말숨 글도 쓰게 하셨다. 글도 글 나름인데, 내가 허구의 세계를 창작해 내는 소설 같은 글을 쓰지 않고 진실무망하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나타내는 말숨 글을 쓰게 된 것에 대해 특별히 다행스럽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니라(막4:26-29)’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는데, 이는 마치 내게 일어났던 은혜의 사건들을 두고 하시는 말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 하나님이 하신 일들이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내가 한 것이라고는 하나님을 바라본 것 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살든 죽든 긍휼하신 주님 은혜를 구하고, 어찌되었든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계시면 안 되는 것도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소유한 것 밖에는 없다. 이것이 무상으로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요 구원이다.
세상천지에 하나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다.
기기묘묘(奇奇妙妙)하게 생긴 갖가지 꽃과 나무들, 끝없이 펼쳐진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들과 태고의 신비를 머금은 깊은 계곡 골짜기....
그 어느 것 한 가지 하나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다.
하나님께서 "있으라!" 말씀 하시니 그대로 되었던 것이다.
생명과 죽음까지도 하나님이 명하시고 섭리하신 결과물들이다.
봄기운은 소리도 없이 온다.
자고 일어나면 싹이 돋아나 있고 또 자고 일어나면 아기 손 같은 잎새가 달려 있고 또 자고 일어나면 꽃망울이 터져있다.
아! 조금 더 있으면 곧 꽃도 피고 열매도 맺을 것이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눈곱만큼도 안 되는 지극히 작은 마음 하나를 드린 것 뿐인데....
"다 하나님이 하셨다!" 는 영혼의 외침은 진실 된 나의 신앙고백이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시오,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오,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오, 나의 방패시오,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로다.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시18:1-3).
하나님은 누가 뭐래도 나의 산업이시오, 나의 분깃이시며, 내 잔의 소득이시다. 나는 언제부턴가 장황한 기도보다 진실이 함축된 단순하고 솔직한 한마디, 한줄 기도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이를테면, 밥 먹을 때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이 밥을 먹게 하소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이 밥을 먹게 하시고 힘을 얻게 하소서!”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고마우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도 아버지의 뜻을 위해 살게 하소서. 아버지의 뜻과 목적과 섭리를 이루어 드리는 복된 삶을 오늘도 살게 하소서.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의(義)이시오니, 하나님만을 기뻐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죽을 수 있는 용기도 주시옵소서.”하면서 백번이고 천 번이고 반복하여 되 네여 본다. 모든 영광 하나님께 돌려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문제가 있다는 것은 해답이 있다는 뜻과 같다.
하나님의 무한한 지식을 계시 받을 수 만 있다면
그 어떤 것도 풀리리라(시139:6.119:66).
* 하나님은 때때로 불가능에 도전하라 명 하신다
'네가 그것을 반드시 이루도록 도와주겠다.'고 말씀 하신다
(신33:7 시20:2 시42:11).
* 믿음의 세계는 때때로 불가능에 도전하여
마침내 성취하고야 만다.
도우시는 주님이 함께 하심을 알고
힘과 지혜를 얻기 때문이다(신33:7 시27:9 롬8:26 행26:22).
* 하나님이 도우실 수 있도록
주님 마음을 사라.
그분과 언제나 친근히 사귀고
그분 말씀을 항상 언제 어디서나 존중하라(시121:1 신10:20).
* 띠가 사람의 허리에 속함같이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여 그의 백성이 되고
그의 이름과 칭예와 영광이 됨을
최고의 가치로 알자(렘13:11)
◆ 말숨 산문집 제7권 '그대 안해 나의 어여쁜 신부여'가 출간되었습니다.
제게 문자나 메일로 답신(주소명기) 한번 주시면 보내드리겠습니다.
◆ 저는 신앙의 여정 가운데 특별한 의미의 삶과 죽음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어느 교회이든 제게 간증 설교할 기회를 주시면 기꺼이 제 자신을 헌신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말숨' 산문집 1권을 구매해 주시면 1권이 사랑의 선물로
전국 교도소, 군, 경찰, 학원, 병원에 님의 이름으로 기증됩니다.
(각권 13,000-20,000원. 전7권. 농협:301037-51-098385.
호산나교회 010-9059-403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