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_자유게시판
사랑하는 말숨 글 독자님들께.
안녕하십니까.
산수유가 꽃망울 터뜨리는 것을 보니 벌써 봄이 왔습니다.
심장 수술 후 모두가 기도해 주셔서 몸이 많이 회복되고 있습니다.
책 헌금에 동참해 주신 모든 분들께 너무나 감사합니다.
말숨 산문집 제7권 ‘그대 안해(安偕), 나의 어여쁜 신부여’는 1차
교정 중에 있습니다. 출판비가 마련되면 즉시 출간될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제1권 ‘한 입 가득 베어 문 레마’처럼 특별히 기념비적으로 독자들의 헌신에 의하여 출간되기를 원하여 뜻을 세우고 진행 중에 있습니다. 책 출간 비용이 대략 1200 만 원 정도 인데, 지금까지 절반가량이 예약구매헌금으로 모금되었습니다.
조금만 더 기도해주시고 성원해 주시면 하나님의 크신 은혜 가운데
이 작은 소원이 이루어져 새로운 간증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랑과 관심으로 많이 참여해주시기를 원합니다.
때마다 일마다 도우시는 주님의 은혜 가운데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십시오. 말숨 글 독자님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2013. 3. 22. 염동권 목사 드림.
* 말숨 문서선교회(malsum-sdm.com)에 오시면 모든 ‘말숨’ 글을
보실 수 있고 활용하실 수 있습니다.
구별된 비범성으로 사는 사람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내 아버지가 귀히 여기리라.” 말씀 하시니 세관에 앉아 있던 마태가 즉시 일어나 예수를 따랐고, 한 동네 사는 벳세다 사람 빌립과 안드레와 베드로 형제 그리고 간사함이 없던 나다니엘도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랐다고 했다(요1:43).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라고도 말씀하셨다(요12:26).
예수를 따라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 이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비범(非凡)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으로 부르심을 받은 존재이기 때문이다(마5:13-16).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 또한 그렇다(벧전2:9).
디이트리히 본훼퍼는 ‘나를 따르라. 신도의 공동생활, 옥중서신’같은 비중 있는 책을 쓴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 히틀러 암살사건에 연루되어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안타깝게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독일 고백교회의 목사이자 신학 교수였다. 그는 오늘날 교회에 ‘기독교의 비종교화(非宗敎化)’라는 풀어야할 숙제를 남겨놓았는데, 크리스챤의 제자 도(弟子道)는 구별성과 비범성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보았다.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는 예수 말씀에 동의하는 사람이 예수의 제자인데 이는 분명 평범(平凡) 이상의 것이 아닐 수 없다.
예수를 따르는 우리는 분명 세상과는 구별된 존재요, 뛰어난 자의식(自意識)을 가진 존재다. 우리 가슴에 새겨진 하나님의 홀로 뛰어나신 이름이 우리를 비범성으로 부르시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과 우리가 똑같다면 구태여 우리를 크리스챤이라 부를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반문하는 것이다.
세상을 보는 생각이 다르고 생의 가치관이 다르고, 뭔가 의식구조(意識構造) 자체가 등경 위의 등불처럼 번뜩이는 구별성과 비범성으로 드러내질 수 있을 때 크리스챤의 자기 정체성은 보다 분명해지고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자기 몫을 다하게 되는 것이다.
막시밀리안 꼴베 이야기다. 나찌 독일은 거의 전 유럽을 석권했다.
프랑스는 초반에 무너졌고 노르웨이도 나찌의 군홧발에 짓밟혔다. 나찌는 그들의 오랜 숙원이었던 ‘인간 이하’의 종족들에 대한 격리 작업에도 착수했다. 각지에 수용소가 세워졌고 유태인, 집시, 폴란드 인 등 이른바 열등한 인종으로 낙인찍은 자들과 나찌에 반대하는 정치범들은 그곳에 수용되어 혹독한 강제 노동에 시달렸다. 1940년 5월 세워진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악명이 높았다.
1941년 초, 한 명의 폴란드인 신부가 잡혀 들어왔다. 유태인들을 보호하고 폴란드 레지스탕스 신문 발행에 관여한 혐의였다. 이름은 막시밀리안 꼴베 신부다. 그런데 수용소에서 탈출 사고가 일어났다. 소식이 알려지자 수용소는 엄청난 공포 분위기에 휩싸였다. 그것은 수용소장이 누군가 탈주할 경우 무작위로 10명을 뽑아 아사(餓死) 감방에 넣겠다고 선포해 놨던 탓이다. 무정한 나찌 수용소 간수들은 열을 지어 선 수인들 가운데 10명을 무작위로 지명했다. 손가락질 하나 하나에 생사가 갈렸고 손가락 총을 맞은 이들은 그만 털썩 털썩 곳곳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차라리 총알 한 방에 머리가 뚫리는 게 낫지, 며칠일지 모를 기간 죽음 같은 기갈에 시달리다 죽어가야 하다니.
그 가운데 한 명이 발악적으로 외쳤다. “나는 아내와 어린 딸이 있다구요. 나는 죽을 수 없어요. 제발 제발 살려 주세요.” 만약 나찌 간수가 그를 살려 준다면 다른 사람이 그 지옥으로 들어가야 하므로 남은 사람들은 그를 동정하면서도 나찌 간수가 그를 동정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때 꼴베 신부가 나섰다. “저 사람 대신 내가 들어가게 해 주시오. 나는 가족이 없는 신부니까 괜찮소.” 나찌들도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신부건 무엇이건 죽음이 틀림없는 방 안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겠다는 사람이라니, 그것도 며칠 동안이 될지 모르는 죽음 이상의 고통 끝에 죽음을 맞아야 하는데 말이다. 하지만 곧 정리됐다. “마음대로 하게 하라.”
난데없이 나선 신부 때문에 죽음 직전에서 놓여 난 이의 이름은 가요비니체코였다. 그는 그 순간 꼴베 신부에게 고맙다는 말조차 하지 못했다. 멍하니 신부를 쳐다보았을 뿐이고, 꼴베 신부는 되레 환한 미소로 그와 이별했다.
아사 감방에는 완전히 발가벗겨져 속옷을 입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고, 먹을 것은 물론 물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몇 날 지나지 않아 확실히 죽는다. 살아날 희망은 조금도 없다. 인간의 존엄성은 여기서는 완전히 짓밟혀버렸다. 과연 그들에게 삶의 의미 같은 것이 있을까?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그런 가운데서도 꼴베 신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조용히 기도하며, 동료들을 격려했다. 그들의 망가진 마음을 받쳐주며, 그들에게 삶의 의미를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그들의 임종을 지켰다. 시신을 확인하려 들어온 나찌 간수들 앞에서도 꼴베 신부는 평화로운 미소를 지어 그들을 용서하고,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괴로운 신음 사이에서도 기도와 성가 소리는 끊이지 않고 울려 나왔고 아홉 명의 희생자들은 가냘프지만 든든한 신부의 배웅 속에 처참한 이승과 고별할 수 있었다. 9명이 다 죽어 나가고 신부가 최후의 한사람이 되었다. 막시밀리안 꼴베 신부의 마지막 소임을 위해, 그가 평생을 섬긴 하나님은 그에게 초인적인 생명력을 선물했다, 물도 음식도 일체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다른 젊은 희생자들이 다 죽어 나간 뒤에도 17일 동안 생명의 끈을 놓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완전히 질려 버린 것은 나찌 쪽이었다. 마지막 양심인지 아니면 성미가 급한 탓이었던지 그들은 꼴베 신부에게 독극물 주사를 놓아 안락사 시키기로 했다. 꼴베 신부는 앙상한 팔을 내밀어 나찌의 마지막 독주사를 맞고서 천국으로 떠났다. 최후의 한사람이 되어서도 그는 인간으로서의 고결함을 유지했다.
존엄을 잃어버려야할 상대가 자애로운 눈으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나치는 결국 꼴베 신부에게 결정적으로 패배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 승리의 소식은 살아남은 수인들에게 전해졌다.
\"아우슈비츠에 세상적인 희망은 전혀 없었다. 그렇지만 꼴베 신부의 사랑의 죽음을 알았을 때, 이상하게도 그들 모두에게 `살자, 끝까지 살아남자. 생명은 소중하다.` 고 하는 남모를 힘이 영혼 깊숙한 곳에서 용솟음쳐 올랐다. 그 마음의 변화를 나는 지금도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고 아우슈비츠에서 살아 돌아온 ‘아담’이라는 사람은 증언했다.
가요비니체코 씨는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그때마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리어,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오게 되었다. 그는 심한 자책에 빠졌다. \"그렇게 훌륭한 사제를 죽음으로 몰아낸 것은 나다. 내가 죽는 편이 더 좋았을 것을...\" 그렇지만, 오랜 시간 후에 그는, \"괜찮아요\"라고 말하는 듯, 말없이 미소 짓던 신부의 그 미소의 의미를 깨닫고, 긴 세월의 고뇌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그는 꼴베 신부의 그 사랑을 전하는 전달자가 되는 것이 자신의 사명임을 알게 되었다. 그는 1995년 아흔 셋의 나이로 죽었다. 적어도 그는 허무하게 죽지는 않고 살아남아 꼴베 신부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았던 것이다.
꼴베 신부가 가요비니체코씨를 구하기 위해 대신 죽겠다고 신청한 것이 아니라 신부는 사실은 아사 감방에 함께 넣어진 9명을 구하기 위해 신청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는 꼴베 기념관장 오자키 신부의 말은 그래서 적절한지도 모른다.
드물기는 하지만 세상에는 자기 생명을 내던져 다른 사람의 생명과 교환하는 비범한 사람들이 있다. 마더 테레사, 인도의 성자 다미엔,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순교자 맹의순,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 이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여준 하나님의 생생한 증인들이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씀은 쉬워 보이지만 이보다 어려운 말이 없다. 더구나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람은 없다.”는 요한복음 15장 13절 말씀에 이르면 당신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나 가능하지 인간이 어찌 그럴 수 있겠느냐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하지만 그 볼멘소리가 무색해지는 것은 그런 ‘큰 사람들’이 끊임없이 등장하는 데에 아연해지기 때문이며, 예수가 이 땅에 와서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 헛수고는 아니었구나 하는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만들어진 신’을 쓴 ‘리차드 도킨슨’은 과학, 특히 진화론의 입장에서 하나님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부정하며, 종교를 아예 없애 버려야 할 것으로 주장한다. 한마디로 \'\'종교는 정신의 바이러스‘ 라는 것이다. 그는 매우 과격하게 ‘신을 망상(妄想)’이라고 주장한다.
도킨스 자신이 직접 만들어낸 생물학적 개념들 이를테면‘이기적 유전자’등을 가지고 진화 생물학을 말하면서 ‘과학적 사고로 인간과 세상을 보라’고 외친다.
그러나 사람은 동물처럼 \"이기적 유전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는 도킨슨의 진화론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영적인 존재다. 썩어빠진 세상과는 전혀 다른 구별된 비범성을 최고의 하늘 명령으로 듣고, 이를 몸으로 실천하면서 죽은 자의 부활과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는 하나님의 사람들, 그들은 정녕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전파하는 영원불멸의 복 있는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모든 크리스챤들이 구별된 비범성을 더 이상 특별한 것이 아니라 너무도 당연한 보편적인 일상의 삶이 되고 체험들이 되는 세상이 오기를 꿈꾸고 희망한다. 참으로 하나님이 우리 삶에 오시면 그것은 더 이상 특별한 것이 아니다.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손이 모를 정도로 자연스러운 상식처럼 되어지는 것이다.
*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임을 증거 하시려고
지금 내 안에서 성령으로 행하신다
(히4:12 히7:25 살전2:13 신5:3 렘23:29).
*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며
지금도 준비된 사람을 찾으신다.
하나님의 고민은 준비된 사람을
찾을 수 없다는 데에 있다(창12:1-3 잠24:12 행13:22 딛1:15).
* 하나님은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사상을 아시니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겨야 한다.
우리가 전심으로 저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버리면 저가 우리를 영원히 버리신다(대상28:9).
* 우리 삶과 역사는 하나님의 언어다.
역사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시대는
반드시 망하게 되어있다(신4:33-36 시95:7 히3:7).
* 내 중심에서는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가?
불꽃같은 하나님의 눈에 띌만한 것이 얼마나 있는가?
평소의 삶과 생각이 하나님 받으실만한 것들이어야 한다.
(삼상16:7 시51:6 렘20:9 마18:35)
◆ 저는 신앙의 여정 가운데 특별한 의미의 삶과 죽음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어느 교회이든 제게 간증 설교할 기회를
주시면 기꺼이 제 자신을 헌신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말숨\'\' 산문집 1권을 구매해 주시면 1권이 사랑의 선물로
전국 교도소에 님의 이름으로 기증됩니다.
(각권 13,000-15,000원. 전6권. 농협:301037-51-098385.
호산나교회 010-9059-403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