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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부 성령님이 쓰시는 사명 자들:
(2)
정근모 박사가 만난 성령 하나님.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성령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 삶에 성령으로 찾아오시기만 하면 그 어떤 것이든 궁극적인 해결책이 나오게 되어있다.
저주와
죽음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전적으로 새로워질 수도 있고, 천국 영생까지 은혜의 선물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놀라운 치유를 통해서도 말씀하시고 죽음이라는 시련과 고통을 통해서도 말씀하시는 분이시다.
과기처
장관을 두 번이나 역임 하시고 명지대학교 총장도 지내신 정근모 장로님 이야기다.
그분은
집이 없는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헤비타트 사역도 하시고, 세계 과학계에서도 알아주는 정말 보배로운 분이시다. 그는 보통 천재가 아니다. 그가
초등학교 6학년 때인 1951년에 처음으로 실시된 국가고시에서 전국 1등을 했다.
그
후에 경기 중학교에 1등으로 들어가서 1등으로 졸업하고, 경기 고등학교에 수석으로 들어갔는데 공부를 너무 잘하니까 학교에서 넉 달 만에 졸업을
시켰다. 그 후에 서울대학교에서 물리학과를 마치고 미국 미시간 대학에서 석사도 거치지 않고 박사학위를 2년 만에 취득하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0년 만에 박사가 된 것이다.
박사를
취득하고서 63년에 플로리다 대학에 조교수가 되고,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64년에는 25살의 나이로 프린스톤 대학의 핵융합 연구실의 연구원이
되었다. 그리고 66년에 MIT 공대에서 핵공학 연구원이 되고 이어서 미국 정부에서 핵융합 연구소를 창설하는데 거기에 책임 연구원이 되었다.
이것이 후일 ‘스타워즈’라고 하는 우주 전략 방어를 하는 연구소가 되게 된 것이다. 미국
신문에서도 천재라고 끊임없이 보도 했다. 그러다가 우리나라에 과학 기술원을 설립했다.
지금은
카이스트(KAIST)라고 부르지만 처음에는 KAIS(한국 과학원)이라고 했는데, 이게 1971년의 일이다.
그러나
정 박사는 그 어떤 화려한 경력보다 크리스천인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그에게
크리스천 됨은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그는
자전적 신앙고백록 ‘나는 위대한 과학자보다 신실한 크리스천이고 싶다’를 국민일보사에서 출간, 자신의 인생 속에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진솔하게 간증하고 있다.
최고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탄탄대로를 걷던 그를 신앙의 깊은 세계로 인도한 것은 바로 아들이었다.
아들
진후는 그에게 말할 수 없는 역경이자 축복이었다.
그는
30대 중반까지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 자기가 너무 똑똑하고, 너무 아는 것이 많으니까, 하나님이라는 신의 존재를 믿을 수가 없었고, 또 믿음의
필요성을 자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최고 엘리트였고, 자기가 원하는 것은 다 이루었고, 누렸다.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었다.
더
이상 세상에서 필요한 것이 없었다. 정근모 박사에게 하나님은 뚱딴지같은 존재였고, 하나님은 미신의 대상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을 믿을
필요가 없었다. 하나님은 없는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미국에 있을 때 간혹 전도를 받기도 하고, 또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가까이 지내기도 하다가 그들을 따라 뉴욕교회에 몇 번 나가 예배에 참석을 했지만 하나님의 존재는 여전히 부정했다.
그런
그에게 열 살짜리 아들이 있었다. 그 아들이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신부전증으로 죽음 직전에 있다’는 진단결과가 나왔다.
정근모
박사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자기
인생에는 이런 죽음의 고통과 시련이 없을 줄 알았는데, 열 살짜리 아들을 통해 전혀 생각지도 않게, 그 죽음의 아픔이 덮쳐온 것이다. 의사가
말했다. ‘늦기는 했습니다만, 그래도 행여나 아들에게 맞는 콩팥이 있으면 수술이나 해 볼 수 있을 텐데, 참 안 됐습니다.’
정근모
박사는 의사에게 주저함 없이 ‘내 콩팥으로 수술해 주세요.’ 제의했다.
정근모
박사는 인간에게 있어 가장 귀한 존재인 아버지로서, 아들을 위해 콩팥 두 개 중에 하나를 아들을 사랑해서 아들의 생명을 구하려고 아낌없이 내어
놓은 것이다. 그런데 수술은 약물부작용으로 그 귀한 콩팥이 녹아서 물처럼 흘러내려 버려서 실패했다. 이제
더 이상 어린 아들에게 수술을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의사가
아이에 대해 마지막 선고를 했다. ‘이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정근모
박사는 비로소 ‘그 사랑하는 어린 아들의 죽음 앞에 자기가 가진 그 모든 것이 아무 소용도 없고, 세상 전부를 지금 자기가 누린다 한들 그것이
자기가 그토록 사랑했던 아들에게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닫게 되었다.
이
절망적 상황에, 이 처절한 죽음의 현장에 정 박사 부부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셨다.
그
병원에 있던 성경책이 정 박사의 눈에 보인 것이다. 성경을 보는 순간 정 박사가 평소에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했고, 당연히 믿지도
않았던 하나님이었는데, ‘하나님은 내 아들을 살려 주실 수 있지 않을까?’라고 그에게 느껴진 것이다. 그리고
정 박사가 전에 전도를 받을 때 황당하게 여기고, 귓전으로 넘겨버렸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믿으면 산다.’는 말씀이 생각 난
것이다. 생각은
났지만, 아직 믿음은 없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정 박사 부부는 병원교회에 나가 하나님께 기도했다.
두
부부가 아들을 살리기 위해 그야말로 눈물의 기도를 드리며, 신앙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두
부부는 정말 있는 힘을 다해 아들을 위하여 기도했다.
그런데
그 때 까맣게 잊고 있던, 그냥 아무 뜻도 없이 몇 번 나갔던 뉴욕교회에서 ‘교회에 중대한 일이 있어서 전 교인이 특별 기도회를 하니, 참석을
해 달라.’는 연락이 왔다. 그때
정 박사는 ‘하나님은 어디든지 계시니, 여기서 기도하면 되지, 뭐 꼭 미국에 가서 기도해야 하나’ 생각하고, 아들의 병상을 지키려고 했다.
그러나
아내는 정 박사에게 이렇게 권면했다.
“여보,
우리가 여기 있어도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잖아?
차라리
미국에 가서 교회를 위한 기도를 합시다.”
정
박사 부부는 미국 뉴욕교회에 가서 교회를 위해 목이 터져라 뜨겁게 기도했다.
또
정 박사 부부와 온 교우들이 한 마음으로 아들을 위해 생명을 걸고 간절히 기도했다.
정
박사 부부가 철야기도를 마치고 돌아왔는데, 한국에 혼자 죽음 앞에 있는 아들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병원에서
연락이 왔는데, ‘아들이 회복이 됐다’는 것이다. 할렐루야!
그
후로 정근모 박사는 더 깊은 기도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은 죽음 가운데서도 살려주시는 위대한 생명의 하나님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이심’을
믿는 확신 있는 신앙인이 되었다.
그러던
가운데 2001년 3월23일, 미국에 있던 아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병세가
악화된 아들 진후가 심한 뇌출혈을 일으켜 죽음의 문턱에 있다는 것이었다.
숱한
세월 기도 줄을 간절히 붙들고 살게 했던 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내 죽음을 축복해 주세요. 힘들고 고통스런 여행은 모두 끝났어요.
이젠
그분 곁으로 가게 됐으니 얼마나 행복한가요.
저로
인해 절대로 눈물을 흘리지 마세요”
6번의
대수술, 비관과 절망 속에 절규했던 아들은 오히려 성령 충만한 모습으로 정박사 부부를 위로했다.
평소
질병의 고통 속에서도 ‘한·일 기도모임’을 이끌고 좋은 남편과 아빠 노릇을 하며 신심을 다해 주님을 섬겼던 아들이었다. 정
박사는 지난 8월 한국에서 개최된 ‘지미 카터 특별건축사업 2001’을 준비하던 중 아들 진후를 하나님께 떠나보냈다. 그러나
아무에게도 내색하지 않고 홀로 미국으로 건너가 임종을 지켜본 뒤 이별예배를 드리고 돌아와 주변사람들의 가슴을 아리게 했다.
이
책엔 최선을 다해 자신의 길을 간 과학도, 한 아들을 극진히 사랑한 한 아버지, 그 아들로부터 하나님의 사랑과 신앙의 길을 발견하고 고난과
역경의 순간에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참된 크리스천의 모습이 감동적으로 녹아있다.
그는
지금 전 세계를 다니면서 성령의 역사를 체험한 것을 간증하며 복음을 전하고 있는데 나중에 이런 간증을 했다.
「아들이
만성 신장염으로 고생하고 있을 때에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본인이 비행기를 타고 출장을 가면 우리 부부가 함께 타지를 못했다. 만일에 비행기
사고가 나서 우리 부부가 둘 다 죽으면 아들을 뒷바라지 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울을 가도 내가 먼저 비행기를 타고 아내는 다음 비행기를 타고 이렇게 했다.
그런데
성령의 역사를 체험한 후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두려움이
없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는 둘이서 함께 비행기를 타고 다닌다.
성령의
역사는 지식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의지로 되는 것도 아니고 감정이나 이해로 되는 것도 아니다.
과학으로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성령의 역사는 영적인 하나님 체험으로 되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는 체험한 사람만이 알 수가 있고, 체험한 사람만이 말할 수가 있고, 체험한 사람만이 이해할 수가 있는 것이다.」
영국
귀족이 인도의 한 영주에게 트럭을 선사했다. 그런데 얼마 후 귀족은 영주가 사는 곳을 방문하였다가 깜짝 놀라게 되었다. 자기가 보내 준 트럭은
쓰지 않고 한쪽 구석에 세워둔 채, 여전히 소를 부려서 짐을 나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귀족은 트럭에 기름을 넣고 소들이 지고 있던 짐을 싣게 하고는 시운전을 해 보였다.
그랬더니
영주는 그제야 트럭의 용도를 알게 되었다.
트럭
한 대가 소 수십 마리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러나
트럭이 있어도 기름이 들어가야 움직이지 기름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차라도 기름이 있어야 움직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아무리 똑똑하고 능력이 많다 할지라도 성령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고 능력을 더해 주시고 지혜와 지식을 더해 주셔야,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 수 있고 하나님 앞에 충성하고 영광 돌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충만히 받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고 살아야만 가치있게 살 수 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이라는 책이 있다.
그
책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강조하는 것은 원칙이다.
원칙을
실천하느냐 못하느냐가 성공의 조건이라는 것이다.
원칙에
충실할수록 성공의 확률은 높아지고 원칙에 위배될수록 성공률은 희박하다는 것이다.
신앙생활도
그 영적인 원리에 있어서는 마찬가지다.
세상에서의
원칙을 신앙언어로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공적인
신앙생활의 영적인 원칙은 말씀을 따라 사는 삶 곧 성령을 따라 성령에 순종하는 삶이다.
우리
삶에서 그 원칙만 지켜지면 신앙생활은 잘 될 수밖에 없다.
하나님
말씀을 하나님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말씀 앞에 두려워 떨 수 있다.
말씀
앞에 자기 자신을 정직하게 세우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경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곧 하나님 자신이 내게 오시는 영이요 생명이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영 즉 성령이신데, 그 말씀이 곧 영이요 생명이라 말씀하시기 때문이다(요6:63).
예수께서는
종말의 때에 ‘내가 한 그 말이 너희를 심판하실 것’이라고 까지 말씀했다.
하나님의
성령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이 살아서 역사하신다.
영적인
신앙생활만 잘되면 다른 모든 일들은 따라서 잘되기 마련이다.
하나님
안에 있기만 하면 죽음조차도 잘되는 것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존재의 깊이에서 깨닫게 된다.
정
근모 박사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인생의
고통스러운 경험이 때로는 귀한 자산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인생의
시련이 없었더라면 나는 기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
아들의 고통이 없었더라면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련을
만나거든 기도하십시오.
가시떨기
같은 탐욕 속에 사는 우리들이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때때로
이와 같은 시련이 필요한 것이다."
이처럼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한3서 1:2) 라는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어찌되었든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
*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가 주님을 사랑하는 자인데,
그는
아버지께 사랑을 입고 예수께서 나타내주신다.
(요4:21
요14:15 요일5:3-4)
*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금보다
귀한 것을 얻을 것이다.
하나님을
직접 만나라.
가장
좋은 것 곧 하나님의 성령을 얻을 것이다.
(눅11:13
약4:7-10).
*
하나님께 은혜 볼 것을 믿으라.
강하고
담대하며 하나님의 얼굴을 항상 찾으며
여호와를
바라라(시105:4 수1:5-9).
*
여호와는 나의 힘과 방패시니
내
마음이 저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여호와는
저의 힘이시오 구원의 산성이시로다
(시28:7-9.18:1-3.46:1.
출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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