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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을 위한 행진곡
감수성이 예민했던 소년시절에 나는 독립군을 소재로 한 영화를 가장 좋아했다. 나라의 독립이라는 큰 뜻을 품고 조국을 떠나 만주벌판을 달리던 주인공이 왜놈들의 총칼에 목숨을 잃을 때면 몇날 며칠을 애석해하기도 했다. 어느 영화에선가 사랑하는 여동생을 두고 항일운동을 떠났던 주인공이 총탄에 쓰러질 때 ‘오빠생각’이라는 애달픈 동요가 구슬프게 들려질 때 눈물짓던 그 때 그 시절은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다.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때
우리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면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 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
귓들 귓들 귀뚜라미
슬피 울건만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오빠생각’은 최순애 작사, 박태준 작곡의 동요다. 이 곡은 국민가요라 할 만큼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 동요가 작곡되고 불리던 시기는 한국이 일제에 식민통치를 받던 시기다.
오빠는 조국의 광복을 위해 어린 여동생을 떠나면서 비단 구두 사가지고 오겠다는 약속을 했는데, 이제나 저제나 오빠 돌아 올 때만을 기다리는 어린 소녀의 애달픔이 있다. 오빠는 조국의 광복을, 어린 여동생은 억압받는 우리 백성을 상징한다. 슬프도록 아름답고 가슴 아픈 이 노래에 눈물짓지 않을 자 누구인가.
이 노래에 얽힌 사연은 그 뿐만이 아니다. 이 노래의 작사자 최순애는 12살 되던 1925년 11월에 방정환 선생이 만든 잡지 ‘어린이’에 발표 했는데 그 이듬해에 16살의 이 원수가 ‘고향의 봄’을 발표했다. 수원의 최순애와 마산의 이원수는 동요를 통해 서로를 발견하고 십년 펜팔 친구가 된다. 그리고 급기야는 1936년 6월 부부의 연을 맺게 된다. ‘오빠생각’과 ‘고향의 봄’의 만남이라고나 할까....
그들이 처음 만나는 날 이 원수는 독서회 사건으로 일경 앞에서 체포되어 1년 동안 옥살이를 하게 되고, 최순애는 천리 길을 마다않고 옥바라지를 했다고 한다. 이렇듯 우리의 선각자들은 순진무구 (純眞無垢)한 순정이 있었고, 대의(大義)를 향한 열정이 있었다.
그 덕택에 우리는 오늘까지 복을 누리며 살 수 있게 되었다.
삼십년 전의 5.18이 또다시 왔다. 우리 민족이 정녕 살려면 그 날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무언가를 기념해야만 한다. 그런데 작금의 세태는 어떤가. 외국에서는 5.18을 빛나는 역사로 평가해 줘도 내 나라 우리 땅에서는 빛바랜 과거로 무시당하는 것 같다고 한다.
국가보훈처는 5.18 기념식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연주하지 못하도록 한단다. 이 무슨 해괴한 발상인가.
이 명박 대통령은 2년 연속 5.18 기념식에 불참한다는데 그게 국가원수가 취할 태도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님을 위한 행진곡! 이 노래는 눈물 없이 부를 수 없는 노래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이 노래는 원래 백기완 선생의 <묏비나리>를 황석영 씨가 개사하고 김종률 씨가 작곡한 노래다.
무너져 피에 젖은 대지 위엔
먼저 간 투사들의 분에 겨운 사연들이
이슬처럼 맺히고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 들리리니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싸움은 용감했어도 깃발은 찢어져
세월은 흘러가도
구비치는 강물은 안다.
벗이여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갈대마저 일어나 소리치는 끝없는 함성
일어나라 일어나라
소리치는 피맺힌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산자여 따르라! (백기완 선생의 "묏비나리"中)
백기완 선생의 묏비나리(1980년 12월)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광주항쟁 때 시민군 대변인으로 도청에서 전사한 윤상원과 1979년 겨울 노동야학 활동 중 숨진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내용으로 하는 노래굿 [넋풀이]에서 두 남녀의 영혼이 부르는 노래로 작곡되었다. 들불야학에서 만난 전남대 선후배 사이인 두 사람은 1982년 2월 망월동 묘역에 합장되어 부부의 연을 맺었다.
우리가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라고 부르는 마지막 구절이
원래는 '앞서서 가나니'였다는 점은 이 노래의 맥락을 짐작하게 한다.
즉, 두 영혼이 "우리는 앞서서 가니, 살아 있는 자들이여, 기운을 내어 뒤를 따라라"며 독려하고 이를 통해 미래를 다짐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광주항쟁의 역사적 의미는 이미 우리 역사가 판단한 것이다.
까닭도 모르고 죽어야 했던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 지금까지도 고통받고 있는 억울한 희생자들, 극악무도한 정권 찬탈자들에 대한 역사의 단죄.... 이 모든 것들은 절대로 번복될 수 없는 우리가 겪은 아픈 역사다. 광주의 하늘은 피 눈물 없이는 절대로 볼 수 없다.
충청도 경상도 강원도 할 것 없이 우리 모두는 광주에 빚을 지고 있다. 핏빛 가득한 광주의 피울음이 들리지 않는가.
어찌 그리도 뻔뻔스러우냐? 님을 위한 행진곡이 어디 덧났더냐?
더러운 정치 선거판도에 불리하게 작용할까봐 간교한 술책이라도 쓰려는 것이냐? 보스톤 제약회사 부사장으로 있는 미국인‘데이비드 돌린저’는 30년 전 광주 항쟁의 목격자로서, 전 세계에 역사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힘썼던 사람인데, 광주를 통해서 비로서 자신이 새롭게 태어났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이 죽으면 광주에 묻히고 싶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비극적인 역사를 잊어버리면 언젠가 다시 반복되기 때문에 역사를 망각하면 안 됩니다....”
역사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면 망하는 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삶과 역사는 하나님의 성품과 뜻이 빚어지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그릇 속에 내용물을 자세히 보면 그분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다.
(신32:7대하12:14-16 대하25:25-28 신4:33-36 시95:7 히3:7)
광주의 희생은 오늘 우리 역사를 살리는 희망의 빛으로 기념될 수 있을 때, 부끄러운 우리는 최소한의 예우(禮遇)라도 갖추는 것이 될 것이다.
* 우리의 삶과 역사는
하나님의 성품과 뜻이 빚어지는 그릇이다.
그릇 속에 내용물을 자세히 보면
그분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인다.
(신32:7대하12:14-16 대하25:25-28 신4:33-36 시95:7 히3:7)
* 아버지 품속에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가 되어
십자가에 죽기까지 우리를 섬기셨다.
그 십자가의 영광이 우리의 구원의 기쁨이 되었다. (빌2:5-6)
*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이 있다 말씀하시니
지극한 위로가 된다.
하나님 아니면 누가 감히
이런 약속을 할 수 있겠는가! (마5:12 벧전3:14)
*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지만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은 형벌에 가깝다.
고난도 다 같은 성격이 아니다.
(사53:4 사48:10 마16:21빌1:29 골1:24 딤후2:3 벧전2:20. 3:14.4:19 히2:9)
* 예수님은 의인으로서
불의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셨다.(히2:9 마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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